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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TEC-C>라는 펜이 있다.
볼펜찌꺼기가 없고 잘 번지지도 않는 좋은 펜이다.
이런 녀석이 저렴하면 참 좋으련만 역시 비싸다.
얼마 전부터 딱 이 펜이 필요할 일이 있어 집을 뒤졌는데도 없다.
오늘 아침, 잠시 사무실을 나왔다. 펜을 사려고.
삼색볼펜도 아닌 놈을 1,600원이나 주고 사야 하지만 필요하니 어쩔 수 없다.

얼마예요? 잔돈을 챙겨갔기에 문구마트 캐시어에게 금액을 물었다.
2,200원이요. 예? 이거 예전엔 1,600원이었는데요, 라고 속으로 되물었다.
사실, 조금 큰 문구마트라 저렴하게 팔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었는데
웬걸,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금액보다 600원이나 비쌌다.
녀석의 가치가 37%나 뛰어오른 것이다.

문구점을 나오면서, 녀석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녀석은 그 동안 정체되어 있지 않았다. 값이 올랐다.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의 가치는 변하고 있었다. 오르거나 내려가거나.
테헤란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서 <던힐>이라는 담배를 사서 나가던 남성이 담배를 피는 모습도 보인다.

저들의 연봉이라는 시장 가치가 해마다 오르기를 빌어 본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연봉과 그들의 존재 가치는 전혀 무관함을 마음 속으로 전한다.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도 그저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리라고 격려한다.
나의 인격은 너무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점점 늘어나는 나의 사회적 관계 속으로 들어온 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진 않은지.
다짐과 염려가 뒤섞인 채 나는 <파리바게뜨>에 들렀다. 소보루 빵을 사려고.

*

<파리바게뜨>의 샌드위치는 신선하고 맛있다. 
한 가지 흠은 역시 가격이 비싸다는 거다. 4,800원.
(내가 주로 방문하는 지점은 다른 곳보다 몇 백원이 더 비싸다.)
들어서면서 소보루빵만 살 것인가, 샌드위치까지 살 것인지를 두고
잠시 고민하다가 건강해지기 위한 기간임을 기억하여 모두 사기로 했다.

헉, 겨우 결심을 했더니 소보루빵이 없다.
아직 굽지 않은 것인지, 벌써 다 팔린 것인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 때는 소심하여 그냥 포기한 것인데, 지금 생각하니 나도 납득이 안 간다.
매장을 세 바퀴 돌며, 소보루빵을 찾았으나 없다. 결국 다른 빵을 찾아야했다. 
계산을 하고 나왔다. 내 손엔 콘소보루빵과 샌드위치가 들렸다.

콘소보루빵은 자신의 매니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나는 본의 아니게 새로운 맛의 빵을 맛볼 위험을 택해야 했다.
그에게는 기회이고, 나에게는 하나의 도전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소보루빵이 제1인자이고, 나머지 빵들은 2인자다.
2인자들에게 기회는 좀처럼 가지 않는다. 오더라도 갑자기 찾아온다.

만약, 콘소보루 빵이 나의 입맛을 사로 잡는다면 나는 또 구입할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이 녀석은 다른 주인을 찾아가야겠지.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2인자들의 삶에 애정이 간다.
사람들은 1등 기업의 제품, 1인자들의 창조물을 즐긴다.
2인자들의 어려움이고, 진짜 실력 있는 2인자들의 서러움이다.

얼마 전, 평화방송 <북콘서트>에 갔었는데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의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다.
세 팀 중, 두 팀은 그저 잊혀져갔고 한 명이 기억에 남아 있다.
동행했던 와우팀원도 그 가수의 노래가 계속 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1인자들의 활약이 눈부신 시장에서 틈새를 찾아 나서는 2인자들.

우연한 기회에 2인자들을 찾아 온 관객들 혹은 고객들.
단 한 번에 그들을 사로 잡을 수 있는 실력을 가다듬은 이들은
그 '단 한 번의 기회'를 잡아 몇 명의 팬 혹은 잠재적 팬을 만들어낸다.
결국, 행운은 준비된 이가 기회를 만날 때에 탄생하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이가 기회를 잡는 경우는 드물다. 기회가 보이지도 않는 경우가 많다.

분명한 것은 세상에 기회는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늘 찾던 빵이 조기 품절될 수도, 1인자가 아파 대타로 나서야 할 수도 있다.
다만, 평소에 묵묵히 준비를 해 두지 못하여 행운이 탄생하지 않을 뿐이다.
모든 2인자들의 열정과 꿈을 응원한다. 바로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행운으로 만들어낸다. 우리 모두 힘을 내자.

혹, 1인자가 되지 못할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아주 오랫동안 장수하는 1인자를 만날 수도 있고,
자신의 재능과 기질이 리더보다는 참모에 더욱 적합할 수도 있다.
그러니 1인자와 2인자를 가르는 세상의 기준을 뛰어 넘어
자신만의 기준과 의미로 우리네 삶을 바라보자.

합리화하자는 것이 아니라, 행복하자는 말이다.
혹시 워렌 베니스의 『위대한 이인자들』이 도움이 될까?
모를 일이다. 모든 상황이 다르고 몸담고 있는 업종이 다르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참으로 놀라운 만큼 다양하지 않은가.
묵묵히 오늘 하루를 살자. 묵묵하지만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의 열심은 내자.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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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보

"1965년경에 시작된 지금의 전환기는 아마도 2020년 혹은 2030년경까지 계속될 것이다. 더구나 2030년 이후의 안정기라 해도 지식이 중심이 된 사회니까 변화는 늘 가까이 잇는 것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독자 여러분은 전환기밖에 모르는 희한한 세대 전환기에 태어나 전환기를 얻고, 그 후로도 지속되는 변화의 시대까지 활동해야 하는 전대미문의 세대가 되는 셈이다.
그것은 괴로운 것인가? 아니 당연히 재미있는 일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드라마를 매일 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덤으로 역할까지 주어져 있다. 더구나 인터넷 시대이므로 각자가 주역이다."

- 우에다 아츠오 『피터 드러커 다시 읽기』 p.55


인간 역사의 의미에 대한 견해들은 다양합니다. 기독교 유신론자들에게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시켜 가는 의미있는 사건들의 연속입니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자연주의자들에게 역사란, 인과율에 의해 연결된 사건들의 연속이지만 목적성은 없습니다. 세계관이 다르면 이렇듯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도 서로 다릅니다. 역사에 대한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역사의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얼마간의 합의된 지점이 있습니다. 역사는 2C의 과정을 반복하며 진행됩니다. 2C는 계속(Continue)과 변혁(Change)의 균형을 말합니다. 변혁은 기존 제도의 과격한 파괴가 아닙니다. 더 나은(혹은 또 다른) ‘계속’을 위한 창조적인 파괴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 지속된 ‘계속의 시대’는 1965년경에 끝났다는 것이 드러커의 관점입니다.

드러커는 역사의 크나큰 단절을 보았을 것입니다. ‘계속의 시대‘가 끝나고 ’변혁의 시대‘가 시작된 지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 경계는 1965년이고, 이 단절의 시대를 구성하는 키워드는 세계화, 다원화, 지식, 기업가 정신이라 생각했습니다. 1969년에 출간된 『단절의 시대』는 변혁의 시대로 돌입하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이러한 시대의 본질을 밝히는 책입니다. 단절의 시대 이전은 200년간 계속된 경제지상주의 시대였습니다. 돈이 중심이었던 사회였고, 정부가 사회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했던 시대였습니다. 드러커의 견해대로라면, 1965년부터 시작된 단절의 시대는 앞으로 10~20년 더 지속될 것입니다. 그 이후에는 돈이 아닌 지식이 중심이 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 말합니다. ’변혁‘의 기간을 거쳐 도래한 지식사회는 한동안 ’계속‘되겠지요.

이것은 “돈을 벌고 싶다”는 소원이 “지식을 얻고 싶다”는 소원으로 대체되는 사회가 된다는 의미일까요? 재테크만큼이나 지(知)테크가 인기있는 화두가 될까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미래 사회가 어떠할지는 모르지만, 드러커의 관심이 미래 예측에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단절의 시대』 서문에서 드러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은 미래를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이 책을 오늘날의 현실들을 면밀히 검토한다. 이 책은 ‘미래의 모습은 어떨까?’ 하고 질문하지 않는다. 그 대신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하고 질문한다.”

과거로부터의 단절은 새로운 기회이며, 새로운 시작입니다. 우에다 아츠오는 우리 모두가 주역이라고 말합니다. 주역이 되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드러커의 저서를 읽으며 이 질문의 답변을 모색하려 합니다. 지식사회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이는 드러커이고 그 용어가 처음 등장한 책이 『단절의 시대』입니다. 드러커에 대한 여러 입문서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우에다 아츠오의 『피터 드러커 다시 읽기』입니다. 두 권을 읽으며 고민할 것입니다. 고민의 진행 상황을 나누겠습니다. 누군가의 사색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 바라며.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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