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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창수 : 형, 지금 제가 하는 일은 제 소명이 아닌 것 같아요.
믿음의 형제 : 창수야, 네가 있는 지금 그 곳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고 하나님을 섬기듯 일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수님을 전할 수 있으면 어디서든 네가 잘 할 수 있어. 
                   그럼, 주님께서도 기뻐하시고 거기서 소명을 발견할지도 몰라. 

믿음의 형제에게 창수 대신 이런 말을 해 주고 싶다.
"그럼 당신이 하시죠. 그 일을."

(이런 과격함은 가끔 명료함을 준다.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은 정의이지 예의가 아니니까.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언어 폭력이고.)


하나님은 분명 우리에게 상황을 넘어서는 믿음을 주셨다.
믿음으로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고, (성경에 의하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여 우리의 반응을 바꾸어 낸다.
믿음의 형제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옳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함께 주신 것은 고유함이다.
각기 다른 재능과 기질을 주셨다. 각기 다른 삶을 살도록 계획하셨다.
재능으로 우리는 삶의 재미를 만끽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을 제대로 섬길 수 있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재능과 직업이 맞지 않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그도 옳다. 부분적으로.

저들이 저런 이야기를 한 까닭은 마음 속 품은 생각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창수는 이직을 원하고, 형제는 머물기를 바랬다.
둘 다 옳다고 결론 내리면, 둘다 틀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다.

자기경영의 지혜는 모순된 것들을 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삶에 통합시키는 법을 배울 때 얻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이해하는 데에도
인생을 이해하는 데에도 잘못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저들은 각기 다른 개념으로 소명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부르심(소명)이다.
1차 소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이것은 형제의 입장이다.
무엇을 위해, 어디로 부름 받은 것인가보다는
하나님께 의해 부름 받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직업적 소명이라 해도 좋을 2차 소명은
어디로, 혹은 무엇을 위해 부름받았냐는 질문을 다룬다.
자신의 재능과 기질에 맞는 직업으로의 부르심이다.
성실한 창수는 자기 일이 도무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일차적 소명과 이차적 소명 사이의 구별은 중요한 교훈을 준다.
먼저는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하는 것이다.
소명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첫째 것이 첫째 자리를 지키도록,
즉 일차적인 소명이 항상 이차적인 소명 앞에 오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일차적인 소명이 이차적인 소명으로 연결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차적인 사명을 받지 못했다고 하여 아무 것도 행하지 않은 소극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 부르심에 반응함으로써 자신의 (이차적인) 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이다.”

일차적 소명에 몰입하고 헌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이차적 소명이 발견된다는 것은
오늘의 의미를 일깨우는 동시에, 미래를 꿈꾸게 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저작자 표시 비영리
Posted by 보보
"소유에 집착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소유물의 상실을 의미한다.
반면 존재를 지향하면서 사는 사람에게 나눔과 소비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나누면서 충족을 체험하며, 자신이 가진 힘을 쓰면서 힘이 더욱 자라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 『내가 에리히 프롬에게 배운 것들』中에서

이번 주는 강연을 제외하고 10번의 약속이 있었다.
주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와우팀원도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2번은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이처럼 직업상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다.
글을 통해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만나자고 얘기를 건네 온 사람이다.

나는 꽤 열심히 산다.
누군가를 만날 때에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서는 홀로 있을 때에 성실을 발휘하여야 한다.
3시간의 여유로운 만남을 보내기 위해 이른 오전부터 일을 한다.
부지런히, 메일 회신을 하고 와우팀원들의 글과 과제를 읽는다. 가끔 책을 읽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늘 집안 일이 밀린다. 장도 봐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는데.. ^^

때로는 해야 할 일이 넘칠 때도 싶지만 만나자는 메일에 꽤 흔쾌히 "yes"라고 답한다.
만약 내가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용기와 절절함 때문이기는 하지만 내가 도움이 될 때가 더러 있다.
이것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조금씩 실현하는 것이다.
대신 넘치는 일을 끝내기 위해 더욱 열심히 내야 한다.

이렇게 나는 한 사람을 만난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다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최근 『한국의 글쟁이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내가 그들과 똑같이 살 수는 없음을 깨달았다.
그들은 글을 쓰는 것이 소명이었고, 그것을 위해 모든 삶을 재편했다. 글쓰기에 맞도록.
나는 글쟁이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모양으로 태어났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글쟁이가 아니다. 소통하기 좋아하고 나누기를 좋아하다 보니 '글'을 수단으로 선택한 것일 뿐.

나는 만남쟁이다. 만난다고 지치지 않는다.
나는 만남 이후의 별도의 휴식 시간이 필요치 않다.
홀로 있으면 생산적이던 한 시간.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또 다른 시간이 된다.
내 일에 대해서는 생산적이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와 나, 우리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나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만한 작은 일 하나는 했다며 주님께 자랑한다.

나는 남들보다 시간의 소중함을 더 절실히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잘 내어준다는 것은 참 다행이다.
때로는 밥값까지 내면서 그를 원망않는 순간은 내 영혼이 자라는 순간이다.
이 모든 동기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님은 축복이다.
거절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게 만남이 자연스럽기에 만난다. 이것은 행복하다.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명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다.
물질이든 지식이든 체력이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때에는 탈진이 없다.
가진 것은 퍼 내어도 새롭게 샘솟기 때문이다.
탈진은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없는 것을 주려다가 만나는 불청객이다.
그 불청객은 우리 삶의 친절한 안내자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라는 조언을 주는 지혜자다.

나누면서도 새롭게 채워지는 충족을 경험하는 비결,
자신이 가진 힘을 쓰면서도 더욱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비결,
그 비결은 자신의 타고난 빛을 더욱 밝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가진 것을 발견하여 그것을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이다.
융의 말처럼 나는 선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온전함은 무엇인가? 아직은 다 알지 못하지만, 몇 가지 조각을 알고 있다.
홀로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
카페에서 음악을 듣거나 홀로 노래를 흥얼거릴 때 아주 행복해진다는 것,
누군가와의 진솔한 만남을 통해 의미 있는 관계로 맺어질 때 행복해진다는 것,
아! 이 조각이 너무 적다.
나에 대한 이 조각이 조금 더 많이 모아지면 나에 대한 큰 그림 퍼즐을 모두 맞출 수 있을 테지.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1. 흔들림 = 살아있음

영혼이 살아 있는 어느 청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얼마 전, 강연에 참석했던 청년이었고 크리스천이었다.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나의 의견을 물었다. 열정적이었지만, 방법을 모르는 청년이었다.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지 문제해결에 대한 조언이 필요한지 물었다. 그는 정서적으로 지원해 주는 친구는 많다고 말하며 후자를 원했다. 나는 마음껏 이야기를 했다. 그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나는 들려줄 이야기가 많았다. 전화를 끊을 때의 기운은 전화를 시작할 때와는 달랐다. 우리는 함께 기분이 좋았고, 다음의 통화를 기약했다. 그는 불확실한 상황과 불안 속에서 조바심을 느끼고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곧 그가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절절히 깨닫고 살아있음을 만끽하는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힘내렴!

나는 그에게 다음과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이것은 다른 비전 청년들에게도 해당되리라.

#2. 하나님의 뜻

"이 길인가 저 길인가를 고민하며 오늘 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의 태도와 존재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겠다는 태도와 거룩한 삶의 존재 방식을 선택한다면 어느 길을 가든 승리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동행하기를 결심했다면, 당신의 마음이 이끄는 길로 당당히, 그리고 자유롭게 걸어가라. 주어진 모든 기회와 자신이 가진 자원을 하나님을 위하여 선용하라.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묻느라 오늘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뜻을 깨닫기 위해 몇 달, 몇 주를 소비하며 고민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바로 오늘을 하나님을 위해 성실히 일상에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공부,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을,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성실히 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성실을 발휘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현재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3. 나의 소명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말들을 하며 하나님께 더욱 민감해짐을 느낀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조금 더 뜨거워짐을 느낀다. 바로 이 지점이다. 세상의 필요와 나의 재능이 만나는 지점 말이다. 그는 나에게서 도움을 받기만 한 것 같다며 미안해했다. 이제 나도 도움을 받았음을 말해야겠다. 그는 나의 소명에 접근한 것이고 나를 하나님께로 더욱 다가가게 했다. 내가 언제 가장 하나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준 것이다.
그는, 자신이 나의 재능을 더욱 예리하게 만들어 주었음을 모르고 있다. 나는 그에게 이 글을 읽게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그는 내가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도록 도와 주었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기뻐하기를.

#4. 다시 시작할 일들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나는 공부는 너무 적게 했고 강연은 너무 많이 했다. 인기 있는 강사라는 말이 아니라, 강연 횟수에 비하여 공부량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지금은 다시 공부하고 기도해야 할 시기다. 어느 학교에 들어가거나 학원에 다니겠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지금 독서대학에 다니고 있다. 졸업은 곧 나의 죽는 순간이 될 것이니 평생 학습과정이다. 최근 여러 가지로 지성 연마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정체된 것 같다. 객관적 지식도, 주관적 체험도 정지 단계에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지라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정지는 곧 퇴보다. 세상은 죄의 경향성을 지녀 힘차게 진보하지 않으면 떠내려가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귀기에 힘쓰고, 공부에 열심을 내자. 그리고 주어진 강연을 성실하게 준비하자.

$5. 구체적인 계획

- 5월 말까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 4장과 5장 읽고 토론 문제 풀기
- 시간관리 도둑 제거하기에 대한 국내 문헌 조사하여 정리하기 (6월 20일한)
- 베트남 여행에 대한 자료 조사를 통한 성실한 준비
- 현대경제연구원 [작심삼일] 원고를 위한 자료 조사와 독서
- 6월의 필독서 : 『인생수업』, 『자신감』, 『포트폴리오 인생』, 『타임전략』, 『4시간』
- 7H 워크숍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한 스팟 연구하고 익히기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사용자 삽입 이미지

<inho73@hanfos.com님의 그림입니다>


밤 11시 30분. 잠들려 할 때쯤 낯선 남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받지 않으려다가 왠지 모르게 받게 된 전화. 전화를 건 사람은 낯선 남자가 아니라 그 날 있었던 강연에 참석했던 분이었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씩씩했고, 나는 잠들고 싶었던 순간인지라 힘이 없었나 보다.
주무셨나요?
막 자려던 참이었어요. 급한 일이 아니시면 내일 오전에 통화해도 될까요?
그렇게 끊었다. 다음 날 오전, 전화가 오면 그 때 얘기하자. 이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잠들었다.

이틀 후 밤. 10시가 넘은 귀가길... 또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며칠 전 모여고에서 강연을 했는데, 그 때 참석했던 학생이란다. 400명이 참가했으니 누구인지 내가 알지는 못했다.
응 안녕? 반갑다. 라고 인사하고 나니, 그 녀석은 고민있는데 얘기해도 되냐고 말했다.
그 놈이 털어놓은 이야기는 이랬다. 시험 7일 전인데 의욕이 없고 공부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어떡하면 좋냐고 나에게 물었다. 당황했다. 모든 일에 의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는 몇 가지를 물었다. 그리고 그 녀석의 답변을 들었다. 얘기를 듣다 보니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 올라 그 녀석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남은 기간이 일주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니 늦지 않았음을 알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했다.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지 않냐고 되묻는 그녀에게서 순진함이 엿보였다. 모든 학생들이 비슷한 조급함을 느끼고 있을테니 힘을 내면 결코 늦지 않을 거라 말했다. 뻔한 얘기지만, 아직 어린 그에게는 도움이 되었나 보다. 그 놈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나의 어떤 말이 도움을 주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전화를 하기 전보다는 기분이 조금 달라졌음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의 어떤 말이 아니라, 나의 애정과 태도가 그에게 힘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성을 다하여 들었고, 통화 중 걸려오는 두 통의 전화를 받지 않고 그 학생에게만 집중했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의 말을 끊지 않았고, 내가 아는 어떤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해결책도 필요하겠지만, 이해와 공감이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학생이기에 나의 작은 말 한 마디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단어 선택에 신경을 썼다.
아마도 이런 마음이 그에게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사랑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곁에 있어 주는 것임을 수차례 경험했기에 나는 그 학생이 '아무도 나의 고민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것만큼은 막고 싶었던 것이다.

문득, 그저께 밤중에 전화했던 남자분이 떠올랐다. 전화를 주시겠지, 하며 그냥 넘어갔는데 다시 전화할 만한 용기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다.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문자를 남겼다. 이렇게 한 이유는 어느 날 문득 강연을 통해 만난 잘 알지도 모르는 강사에게 전화 한 통을 거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니라 대단한 시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을 내밀어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하고, 괜한 피해를 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떨쳐내야 한다. 나 역시 이런 두려움과 염려로 사랑을 전하지 못한 경우도 있고,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경우는 더욱 많다.

교육 참가자로부터 전화가 오는 경우는 그리 많지는 않다. 그 중에는 고마움을 전하는 전화가 도움을 요청하는 전화보다 많다. 그 남자분도 그저 고마움을 전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은 그에게 전화를 다시 걸만한 시간과 여유가 있다.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게 되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줄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내가 선해질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나는 참 못난 놈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건 노력이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도 하다. 소명은 재능과 봉사가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프레데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했다. 소명을 발견한 사람은 바로 이 지점에 서게 된다. 이것은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고 싶어서 자신을 꾸며내는 행위가 아니라, 참으로 자연스러운 자기 기쁨의 원천을 캐는 행위다.

자신이 가진 것을, 풍성하게 가진 것을 나눠줄 때 지치거나 탈진하는 법이 없다. 처음으로 강연을 했던 것이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2007년 1월부터는 아예 직업으로 삼았다. 강사로서의 삶, 와우팀장으로서의 삶이 정말 진짜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면 평생 이렇게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런 목적'으로 세상에 왔다. 나는 그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른다. 그것을 알아가기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100% 몰입할 것이다. 100%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Posted by 보보


고린도전서 15:1~11
하나님을 향한 수고로 하루를 채우자!

2절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말씀을 굳게 붙들고 제대로 믿고 있는가?
머리로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접하는 손과 복음을 전하는 발을 가졌는가?
도덕적, 정신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는가?

하나님의 빛을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죄 많은 인생인지 알게 된다.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심각한 죄도 하나님의 빛 앞에서는 숨길 곳이 없다.
오늘 아침은 헛되이 믿는다는 말에 나의 신앙을 돌아보게 된다.

10절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헌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이 되지 않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하나님의 감당치 못할 은혜로 인해 참으로 감사하고 기쁠 즈음 이런 생각에 잠기게 된다.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큰 은혜를 주신 것일까?'
이것은 곧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묵상케 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계획하심에 동참한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명으로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다.
이 동참은 사도 바울의 고백을 따라야 한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는 신실함의 고백,
"그 모든 수고는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는 겸손함의 고백!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보다는 주님을 위한 수고와 헌신하는 것에 관심을 갖자.
하나님의 일을 위한 수고로 하루를 채울 때는 감격과 기쁨이 넘친다. 이 기쁨을 기억하자.
최고, 최대를 향한 목표는 달성했을 때에 공허하고 깊은 기쁨가 없다.
영원과 의미를 향한 목표를 향하여 전진하자.

[적용]
1. 하인들을 위한 수고 : 메일보내기, 성경공부 준비하기, 모임 위한 기도하기
2. '주님의 영웅들'에게 기도제목 메일 보내기
3. 현규와 정환에게 편지쓰기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나 같이 연약한 죄인이 어찌 강연을 한단 말인가?
내가 어찌 믿음의 사람들 앞에서 전한 말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오직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는 깨끗치 못한 그릇까지 털어내어 사용하시는가?
그렇다면 내가 깨끗한 그릇이 되면 얼마나 즐겨 쓰시게 될까?

Posted by 보보
 

"하루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생활고나 가난 때문이 아니다.
즐길 수 있는 자신의 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中에서

나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하여 이런 작업들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단어 12개를 선정해 보았다.
재즈, 책, 사람들, 꿈, 열정, 도전, 여행, 성령 충만, 사랑, 리더십, 행복, 건강!
금방 떠오른 것이 15개였고, 10개로 줄이기 위해 노력해 보니 3개는 버릴 수 있었다.
이것은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재료들이다.
이 단어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정말 좋아하는 단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글로 이야기하는 과정 자체도 즐겁고,
그로 인해 이 단어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도 저절로 알게 된다.
(나만의 단어 선정에 대한 구체적인 작업은 [보보의 드림레터] 8편에 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나는 직업과 소명을 하나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몇 년 전부터 해 왔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새벽에 일어나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했다.
무료 강연을 기획했고, 그 강연을 열심히 준비했다.
원고 청탁을 받지도 않은 글을 열심히 썼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이었다. 다만, 나의 영혼이 갈망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수년을 지내오다 보니 그 일들은 이제 나의 직업이 되었다.
소명을 직업으로 가지면 삶이 자연스러워진다. 살아지는 모양이 직업이 되니까.

경제적 자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것이 현실 감각이든, 투자든.
언젠가는 내가 할 일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근거없는 낙관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을 할 나이에 놀고 있는 것은 깊은 성찰을 한다는 목적 이외에는 사치다.
눈높이를 낮추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
일은 (모든 것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로운) 사람을 더욱 성장시키는 묘한 힘이 있다.
첫번째 직업이 자신의 소명과 연결되기는 무척 어렵다.
심사숙고하여 첫번째 직업을 선택해야겠지만,
첫 직장에서 자신의 소명을 성취하리라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그보다는 직장 일을 열심히 하는 가운데 자신을 더욱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적이다.
자신만의 세계 구축을 위해서 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자립은 필요하다.
자립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다.
빚이 있다면 어서 열심히 일하여 갚아야 할 것이다.
나는 현실 감각을 갖든, 펀드투자를 하든, 자신에게 투자하든 경제적 자립을 위해 애써왔다.

그리고, 용기를 가졌다.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용기를 읺지 않았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할 틈이 없도록 자신감을 더욱 굳건히 쌓았다.
가장 편하다 싶을 때, 변화를 선택하려 애써 왔고, 한 두 번은 실천하기도 했다.
변화는 지금도 여전히 두렵다. 한창 젊은 나이인데도 도전이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중년들의 도전에 관한 얘기를 들으면 그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게 된다.
그들에게 감사하기도 하다. 도전에 대한 용기를 전염시켜 주시니 말이다.
내가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것도 '용기의 전염성' 때문이다.
나의 도전이 누군가에게 용기를 전염시켰으면 좋겠다. 분명, 용기는 전염된다.
한 사람이 일어서면 옆에 있던 다른 사람도 일어설 수 있다.
여전히 두렵지만, 일어서야 하는 일이라면 먼저 일어서고 싶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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