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기독교 사상을 배우고 익힌 것은 내게 지속적인 유익이었다.
기독교 사상은 내게 성공으로 가는 기법을 추구하는 대신
내적 성품을 닦는 일과 영적 훈련으로 시선을 돌려 주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읽고 실천하려던 노력도 큰 도움이 됐다.
나는 여러 가지 가치 중에서도 '신뢰'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를 믿지 못할 만한 상황이 될 때마다 나는 '이성'보다 '신뢰'를 택했다.
삶의 모든 순간마다 이성과 신뢰는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친다.
이성은 말한다. 저 사람은 돈을 빌려 주면 갚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이성을 멈추고 신뢰의 말을 들었다. 신뢰는 다르게 말한다.
"그를 믿어. 신뢰가 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단기적으로는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단한 유익이다.
신뢰는 내적 성품이다. 최신 방법론으로 단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장거리 경주이기에 신뢰와 같은 내적 성품을 지닌 자가
결국에는 만족스러운 인생을 살게 된다.
물론, 신뢰 없이도 많은 모임에서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다양한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할 수 있고 친밀해질 수 있다.
문제는 그들의 영향력이 주로 단기적인 관계에서만 발휘된다는 점이다.
내적 성품 없이는 직장 동료, 부모님이나 배우자, 자녀와의 관계, 친구 관계 등
모든 종류의 장기적 대인관계에서 문제릉 일으키게 된다.
내면의 동기와 내적 성품을 영원히 감출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직업 세계에서는 성공했지만 개인적인 삶과 대인관계에서는 불행하다면,
지금 당장 자신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문해 볼 일이다.
'나는 내적 성품의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알면서도 간과해왔던 것은 아닌가?'
자신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하는 대상인지 아닌지는 금방 알 수 있다.
일전에 유행했던 개그콘서트의 '독한놈들'라는 코너의 주인공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자기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일에서의 성공보다 많이 뒤쳐진다면, 백프로임다."
당신께서 포함된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시라.
우리는 많은 이들이 포함될 수 밖에 없는 문화를 살고 있으니.
자신에 대한 현실 인식은 가슴 아프지만,
그것이야말로 변화의 가능성이요 희망이니까.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신뢰'에 해당되는 글 5건
- 2010/02/26 성품의 중요성
- 2009/05/24 [추모 ①] 당신은 믿을 만한 분이었습니다. (9)
- 2008/11/22 실수를 괴로워하지 마세요~ (6)
- 2008/07/08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품고 살아가기 (14)
- 2008/06/07 시간 약속은 15분 전에 도착하라! (6)
나는 슬픕니다. 눈물이 납니다.
온 몸을 바쳐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따라
살아 온 훌륭한 정치인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늘 믿을 만한 분을 찾았습니다.
한 사람이 늘 옳은 행동만을 하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러기가 쉽지 않겠지요.
그렇기에, 저는 어떤 한 사람이 스스로 옳다고 믿는 신념에 따라 살 때면
"바로 이 길입니다. 여러분 이 길을 함께 갑시다"라고 말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잠시 스스로의 신념을 놓치었을 때에는
"제 불찰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잘못했으니 제가 다시 제 길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혹, 제가 영원히 길을 되찾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저를 잊어버리십시오."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자신의 신념을 따라 어려운 길을 선택했습니다.
92년에는 민주당을 적으로 두어 부산에 출마하는 것을 시작하여
네 차례에 걸쳐 지역 감정에 정면으로 맞섰습니다.
이 때, '바보 노무현'이라는 이야기를 들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따랐습니다.
본인도 힘겨운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2000년 16대 총선 부산 지역 유세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 한번 어려운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에 자신의 정치 인생을 던진 이후, 줄곧 한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토론이나 논쟁을 하다 보면,
서로 다른 생각에 무조건 격앙된 감정으로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서로 다르다는 그 이유 덕분에 토론과 논쟁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얼마든지 즐겁게 논쟁할 수 있지만,
내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면 전혀 즐거운 논쟁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통합의 리더십을 통해 시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일관된 말과 행동이 없으면 함께 논쟁을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는 모르는 것을 안다고 하거나, 진솔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자신의 신념을 따라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분을 찾았던 것입니다.
2000년 4월 13일, 총선 개표가 진행되고 있던 그 날 밤에
노무현 前 대통령은 링컨의 두번째 취임연설문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감동으로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소감문을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승리니 패배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누구와도 싸운 일이 없습니다. 상대 후보와 싸운 일도 없고 부산 시민들과 싸운 일도 없습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추구해야 할 목표에 도전했다가 실패했을 뿐입니다. 저 역시 투표 하루 전 날만 해도 선거를 승부로 생각했고 승리를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개표하는 날 저녁, 심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링컨의 연설문을 읽는 동안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의 승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한 취임사에서 승리니 패배니 하는 말을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남부를 적으로 몰아 세우지도 않았고, 정의니 불의니 하는 말이나, 선이니 악이니 하는 말로 남과 북을 갈라 치지도 않았습니다. 화해와 사랑을 이야기했습니다. '같은 성경으로 같은 하느님을 섬기면서 제각기 상대방을 응징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어느 쪽의 기도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라는 구절에서는 참으로 미국의 역사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부산으로 왔느냐고 묻습니다. ……
감히 말씀드리면 저는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여 부산으로 갔습니다. 지난날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에서 정치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내세워 집단 간의 불신과 적대감을 부추겨서 벌린 일 치고 그 집단에게 불행을 가져오지 않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뒷날 역사가 오늘날 우리 나라의 상황을 그런 역사의 하나로 쓰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치인은 그런 역사 속에서 겪어야 할 우리 민족의 불행을 막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이 글이 노 前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누구라도 감동적인 글을 읽은 후에는 일시적인 훌륭함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 前 대통령의 소감문은 링컨의 글에 취한 일시적인 감상과 다짐이 아니라
그의 오랜 신념이 더욱 뜨거워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지역주의를 타파하려는 그의 소신은 이미 10여 년에 가까운 길을 걸어왔고,
이후로도 원칙과 소신을 향한 일관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 前 대통령은 검찰 소환조사를 받게 된
3번째로 역대 대통령이 되던 날, 봉하마을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 가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내가 믿는 것 한 가지는
"면목 없습니다"라는 말은 죄를 지은 자가 스스로 뉘우칠 때 하는 말이거나
자신이 죄를 짓지 않았더라도 높은 도덕성과 책임감으로 자신만을 탓하는 말이라는 점입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검찰에 소환되며 "면목 없습니다"라고 거듭 말하였지요.
나는 이 말 속에 담긴 그 분의 뜻이 의롭다고 믿습니다.
노 前 대통령은 지난 달, 이런 말로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의 폐쇄를 원했습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적어도 한 발 물러서서 새로운 관점으로 저를 평가해 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저는 이 글을 노 前 대통령이 서거하신 후에야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의 정치적 무관심에 혀를 차게 됩니다.
노 前 대통령이 이 글을 쓰신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저 역시도 아름다운 가치들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일부의 가치들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대목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나는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아름답지 못한 대목이 점점 많아져서, 혹은 그런 대목이 모두 드러나서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게 된다면, 저 역시도 노 前 대통령과 비슷한 말을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언제나 이 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제가 아닌 다른 선생을 쫓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기쁜 삶을 살지 못할 때에는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신실한 믿음을 누리지 못할 때에는 '신앙'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제가 성장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자기 계발'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언제라도 제가 선생 답지 못한 삶을 산다면 저를 버리시라고 말할 것입니다.
이것은 가르침에 대한 소극적인 마음이 아니라, 온전한 삶에 대한 저의 적극적인 소원입니다.
다만, 완벽한 사람은 없기에 부분적 영역에서의 선생 노릇까지 져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를 버리시라는 노 前 대통령의 말을 '고해성사'로 보고
그를 죄인으로 몰고 가며 몰락의 과정을 지켜보겠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은 반쪽짜리(혹은 그 이하의)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노 前 대통령은 자신이 믿었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치 인생 전부를 던졌던 분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스스로를 성찰하기 마련입니다.
법에 어긋나지 않은 정도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고결한 가치를 지키지 못한 것이라면 스스로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보다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나무라기 때문입니다.
나는 노 前 대통령의 '나를 버리셔야 한다'라는 말을
'고해성사 + (혹독한) 자기 비판' 의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가 모든 키워드라고 주장하기에는 내가 아는 것이 너무나 짧습니다.
두 키워드의 적합한 비율도 알지 못합니다. 그저 내가 믿는 신념에 따라 기술한 것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은 믿을 만한 분이셨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따라 살려고 애쓴 소신 있는 정치인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지역감정 타파를 위해,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노력한 그의 일관된 삶이 믿음직합니다.
거기에다 자신의 과오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면목없다는 말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믿음을 스스로 내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 살겠다던 16대 대통령 노무현은
이제 정말 자연 속으로 돌아가게 되어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소신 있는 정치인, 고결한 도덕성을 추구하던 공직자를 한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또.... 자꾸만 눈물이 흐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의 깊은 슬픔에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그러지 말아야 할 자리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참아야 할 순간에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낼 수도 있습니다.
정성을 다했던 일을 순간의 착각으로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실수에 의한 것이라면, 정말 괜찮습니다.
사람과의 신뢰는 실수로 무너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뢰는 정직성과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람을 향한 믿음을 갖고 정직을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실수는 당신의 신뢰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실수를 괴로워하지 마세요. 실수로 슬퍼하지 마세요.
실수는 부주의로 인한 과실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잘못이지요.
정말 의도하지 않은 실수라면 상대방의 이해가 뒤따를 것입니다.
누구나 선한 의도를 가지고서도 실수를 할 때가 있으니까요.
허나, 나의 실수가 모든 사람에게 이해될 거라 기대하진 말아야겠지요.
그저 스스로를 이해하고 괴로워하지 말 입니다.
만약, 나의 실수와 상대방의 이해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다면
실수가 잦아서 상대가 화가 난 것은 아닌지 살피며 부주의를 줄여야 합니다.
실수를 줄이면 그 간격도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이제 이 글의 결론을 말하려 합니다.
누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수를 합니다.
그러니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히 살아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한 주가 마무리되는 주말입니다.
한 주간을 돌아보시다 혹 실수가 떠오를지라도 괴로워하지 않으시길 바라며 쓴 글입니다.
여러분의 여유롭고 행복한 주말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늘 우리의 현재를 앗아가 버리니까요. ^^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한 질문 한 가지를 마음 속에 품고 살아가면,
언젠가 그 질문의 답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와 만나게 될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중요한 물음표 하나에 느낌표 가득한 삶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
요즘 보보의 삶에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질문 하나.
"신뢰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예비 남편으로서, 와우팀장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질문을 품으니 해답이 보이기 시작한다.
해답이 보이니 내 삶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다.
그 희망에 나는 오늘 하루를 던질 것이다.
글 : 한국성과향상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
[보보의 시간관리 Tip] 시간 약속은 15분 일찍 도착하기
'정시 도착 시나리오'부터 던져 버려라
시간 관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약속 시간에 딱 맞추어 도착하기를 시도한다. 정시보다 일찍 도착하면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에서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이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럴 만한 원인이 있다.
그들은 좀처럼 일찍 준비하지 않는다. 정시도착 시나리오에 따르면,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데에는 이동시간 40분, 준비시간 20분이면 충분하다. 그들은 딱 50분 전에 준비하기 시작한다. 문제는 정시도착 시나리오는 항상 불청객으로 인해 변경된다는 사실이다.
꼭 들고 나가야 하는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보내거나, 드라이기가 고장나 머리 말리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통화 때문에 5분을 보내고 만다. 이쯤되면 마음이 바빠진다. 대안이 필요하다.
'택시를 타야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약간의 여유가 생긴다. 하지만 택시로 벌어들인 여유 시간이 불완전한 시나리오를 완성시켜줄 정도는 아니다. 늦게 출발하게 된 그는 마음의 여유가 없다. 약속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을지 초조해하면 시계만 들여다본다.
시간 약속이 있으면 15분 전에 도착하도록 한다.
시간관리의 실패다. 이런 상황을 날려 보내는 방법은 약속 시간 15분 전에 도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지각대장이라면 30분전에 도착하는 것으로 목표를 설정해야 비로소 1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찍 도착하기의 유익은 많다.
이동하는 시간에 바깥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고,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있다. 늦을 때에는 변명을 생각하느라 여념없던 이동시간이 자신만의 업무 시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숨을 헐떡이거나 약속에 늦은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
15분 일찍 도착했다면, 기다리는 동안 수첩을 꺼내 오늘의 일정을 체크하거나, 미리 작성해 둔 자기만의 ‘15분 업무’를 하며 생산적으로 시간을 관리할 수도 있다. 오늘의 만남을 위한 작은 이벤트를 준비할 수도 있다.
보보의 5분 업무 : 엽서쓰기, 책읽기, 플래너 정리, 간단한 메일 회신 보내기, 노래 흥얼거리기,
서점에서 유머책읽기, 신문 기사 읽기, 간단한 스트레칭, 새로운 단어 습득하기
보보의 15분 업무 : 스크랩 해 둔 기사 읽기, 책읽기, 서점 둘러 보기(신간 확인),
영어 독해 지문 하나 읽기, 낮잠으로 휴식하기, window shopping
모든 약속에는 15분 일찍 도착하라. 차가 밀려 늦을 수도 있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약속 시간에 정시에 도착하려는 엉터리 시나리오를 짰을 가능성이 높다. 시간 약속 지키기를 방해하는 모든 훼방꾼을 제치고 약속 시간을 지킬 때마다 당신에 대한 신뢰가 쌓일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늦었을 때에는 이렇게...
약속시간이 되기 전에 ‘늦는다’는 말을 전하라. 그냥 늦겠다가 아니라 ‘몇 분 정도 늦는다’고 말하며 상대방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언제 올지 모른 채 나를 기다리며 세워두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실례다.
미안하고 조급한 마음에 도착 시간을 빠듯하게 말함으로 스스로를 굴레에 묶어버리는 실수를 하지 마라. 무리한 시간을 말했다가 그 시간보다 또 늦게 되면 상대방을 두 번 괴롭히는 일이다. 10분 정도 늦을 것 같으면, 15분 늦을 것 같다고 말하라.
이런 말을 전함으로 인해 상대방은 나의 지각을 대처하며 조금이라도 유용하게 시간을 활용할 것이다. 예상 시각보다 일찍 도착한 당신을 보며 이해의 마음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약속 시각에 늦지 않는 것이다.
글: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컨설턴트 ceo@younico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