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은 노력하지 않는 자들의 핑계일 뿐이다."
이 말은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지만, 인간의 한계를 간과해 버리게 되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
물론,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도전 정신은 아름답다.
여기서의 한계는 자신의 한계이지, 인간의 한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한계란 말은 게으름,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주저함을 말한다.
이것으로 인해 도약을 시도하지 않았던 지난 날을 아쉬워하며 오늘의 진보를 꿈꾸며 도전하라.
이것이 청춘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가짐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되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며 살아서는 안 된다.
인간의 한계란 우리의 유한함을 말한다. 우리는 영원 속에서 한없이 유한한 존재다.
우리는 역사를 완성하는 존재가 아니라, 역사에 참여하는 존재다.
인간의 한계를 무시하여 안식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수 개월 이상을 쉬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빛에는 피로감이 떠나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안스러움을 준다.
이들은 모처럼 만의 휴가가 주어져도 안식과 여유, 여가를 통한 행복을 누리지 못한다.
견디다 못한 그들의 육체가 긴장이 풀린 그들을 단잠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하늘이 그들에게 피로를 주는 것은 편안히 안식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휴가 때의 잠을 물리쳐서는 안 될 일이다.
오히려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여 곤한 잠을 청해야 한다.
대신, 안식을 모르는 고약한 행동주의를 물리칠 일이다.
미국에서 흘러 들어온 프런티어 정신은 안식의 기쁨과 유익을 알지 못한다.
안식은 은퇴한 사람이나 바쁘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안식은 체력이 나약한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균형 있는 삶을 위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당신의 삶에 활력을 주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안식과 쉼을 누리기 위해 노력하라.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안식이 아닌 시간에서의 활동에 열심을 내야 한다.
해야 하는 일들을 모두 마쳐 두어야 한다. 집안 일과 잡무를 과감하게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
야근이 일상화된 사람들은 저녁 시간의 안식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야근을 하는 모든 이들의 생산성이 높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퇴근 후에 밤에 일하면 되지, 라는 생각은 근무 시간에서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못 다한 일은 주말에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일주일 동안에서의 집중력이 떨어진다.
가능한 한 모든 일들은 근무 시간에, 주중에 끝내야 한다. 그래야 주말을 안식의 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
일상의 게으름으로 인해 우리의 여가와 휴식 시간까지 일하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는 11시가 되면 잠을 청하려고 노력한다. 나의 에너지와 열정을 생각하면 너무나 이른 시각이다.
너무 늦게까지 일하는 것이 열심인지, 하루 동안의 게으름으로 인해 밀린 업무의 연장인지 따진다.
혹은 내가 해낼 수 없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거절하지 못해 일감바구니가 넘쳐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나는 나의 한계(게으름)를 넘어서기 위해 열심을 내고 하루에 부지런함을 조각하려 노력한다.
동시에, 한없이 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묵상하며 다소 이르다고 생각하는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때로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건강한 삶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당신의 건강은 어떠한가? 아침에 일어나는 당신의 기분은 상쾌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활기에 넘치는가?
그렇지 않다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열심이 아니라, 안식이다.
안식이 뒤쳐짐이 아님을, 무위가 게으름이 아님을, 휴식이 정체가 아님을 체험하시길 바란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