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조바심과 여유가 공존한 하루

카잔 2013. 3. 21. 18:58


1. 

급하게 달려와 롯데시네마 매표소 앞에 섰다. 파바로티 하나 주세요. 직원이 되묻는다. 파파로티요? (파바로티 아닌가?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네. 파파로티요. 나는 표를 받아 들고 상영관으로 향했다. 티켓에 적힌 제목을 보니 <파파로티>였다. (영화를 보고서 검색하니, 파바로티가 맞았다. 비싼 저작권 때문에 영화제목을 파파로티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화장실에 들렀다가 영화관 좌석에 앉아 시간을 확인하니 9:54분이었다. 사무실에서 9:45분에 나왔으니 9분 만에 이동한 셈이다. 영화 상영 전 광고를 보며 '잘 왔다' 하고 생각했다. 번개처럼 서둘러 온 연유는 이렇다. 매주 월요일 아침엔 조조영화를 보기로 마음 먹었었다. 그 첫 시작이 이번 주였지만, 일하느라 실천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요일로 미뤘었다. 


오늘 수요일 아침, 나는 조조영화 시작 시간을 확인했다. 9:50분 <파파로티>로 결정하고 일을 시작했다. 영화 시작 시간까지는 2시간 남짓 남았다. 2시간을 일하고 나니 갈등이 되었다. 나는 다시 영화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러다가 영화 시작 5분 전에 마음을 바꿨다. 조바심을 줄이고 여유를 누리며 살자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우들과의 약속이 생기거나 당일치기 여행 리노투어를 떠날 때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 일정에 집중한다. 영화관을 향해 달려가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를 위해서도 덩어리 시간을 주고 그 시간에 홀로 풍덩 빠져들고 싶다고.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듯이 나를 위해서도 그리 해야겠다는 생각은 내게 많은 자극과 도움이 된다.  


2.

어젯밤 양평 서재에 왔다. 이곳의 시간은 서울보다 느리게 흐른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해야 할 일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요즘 나는 조바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일을 하지 않고 쉴 때마다 불안하다. 어떨 때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

 

최근 1년 사이 생긴 증상이다. 오늘은 핸드폰을 들고 오지 못했다. 무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이다. 사무실에 놓고 왔음을 알면서도 되돌아가지 않고 그냥 왔다. 핸드폰이 없으니 마음이 후련하다. 11시 즈음에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직 컴컴한데도 정신이 맑아져왔다. 상쾌한 공기 덕분인가? 창을 열어놓지도 않았으니 그렇지는 않을 테지만, 잠이 달아났다.

 

시계를 확인하 새벽 2시였다. 나는 주섬주섬 책들을 정리했다. 책을 이리저리 옮기고 정리하는 것은 서재에서의 주요 일과다. 공간이 좁아 새로 사들인 책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즐겁고 공부도 되는 일이다. 책을 정리하고 있노라면 마냥 이곳에 머물러 책을 정리하고 읽으며 살고 싶어진다. 나의 희망이다. 언젠가 이뤄내고 말.


한 시간여가 지났을까? 시계를 보니 여전히 새벽 2시다. 이크. 시계가 멈춰있다. 배터리가 다 되었나 보다. 갈아넣지는 않았다. 이곳은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5시 30분이다. 그랬구나. 적잖이 잤구나. 나는 오전 내내, 책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3. 

점심 식사는 양수역 근처의 카페 <사계>에서 홀로 즐겼다. 혼자라 미안했기에 조금은 비싼 걸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서 디저트를 즐기며 책을 읽을 요량이었다. 맛난 음식을 먹었고 다음 주 독서대학에서 다룰 책을 읽었다.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졌다. 에고! 큰일이다. 일을 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 증상을 어찌할꼬.


2시간 30분을 머물고 나니 일어서야 했다. 손님도 하나둘 사라졌고, 노트북으로 작업하기엔 조금 머쓱한 곳이었다. 사무실로 돌아갈까 하고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내게 7천원을 더 투자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무실에서 일하면 줄일 수 있는 비용이라 잠시 고민했지만 오랜만에 근사한 곳에서 글을 쓰고 싶기도 했다. 서종면 문호리에 있는 하버 커피에 갔다. 


3시간 동안 머물며 글을 쓰기도 하고 가만히 창밖을 내다보기도 했다. 북한강에 내리쬐는 햇빛을 보면서는 내 인생도 따스하고 찬란하기를 바랐고,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서산을 넘어가는 석양을 보면서는 내 삶도 저리 아름답게 저물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예전만큼 즐기지 못하는 내가 어서 마음의 여유를 찾기를 염원하며 시를 지었다.

 

<깊은 밤, 바람을 따라>

 

하늘이 서서히 눈을 감으니

하루가 저물었다.

 

밤은 세상을 어루만진다.

휴식과 감성으로.

 

하루만치 쌓인 고단을 잠재우

빛을 불러내어 새날을 만든다.

 

머물렀던 카페를 나서니

따순 어둠이 날 반긴다.

 

앉았던 자리에 슬며시 떼어놓고 왔다.

여유도 낭만도 모르는 조바심을.

 

북한강변을 달리는 운전자의 곁에

어느새 조바심이 따라와 앉았다.

 

······ .

운전자도, 조바심도 말이 없다.

 

시계를 보며 달려온 삶이었다.

이젠 바람을 따라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