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허탈, 허망, 괴로움의 10월

카잔 2014. 10. 31. 20:49

1.

한 달이 지났다. 어떤 때보다 힘들었던 날들이었다. 절친한 우정을 상실했던 7월이 잔인했다면, 지나간 자아를 잃어버린 듯한 10월은 괴로웠다. 몹시 허탈했고 많은 것들이 억울했다. 내게 일어난 일들이 허망하여 믿을 수가 없었다. 가끔은 믿을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나는 게 인생이다.

 

종종 곽진언의 ‘후회’를 들었다. 처음 들었던 때처럼 종종 눈물을 흘려가며 들었다. 잠깐이나마 위로를 얻었다. 떠나간 우리 엄마를 다시 볼 수 없다고 노래한 대목은, 곽진언의 어머니 작품이란다. 그 어머니를 찾아뵈어 손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 어머니의 엄마는 어떤 분이셨는지 듣고 싶었다.

 

 

 

2.

결국, 한달 동안 『인문주의를 권함』 원고는 전혀 만지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런 날도 있는 거라며 조바심 갖지 말라는데, 이건 조바심의 문제가 아니라 나약함의 문제인 것 같아 못마땅하다. 11월에는 강인하게 지내게 될까? 궁금하다. 내 삶에 느긋함을 넘어선 나태함은 허용할 수 있지만, 나약함은 달갑지 않다.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공생의 지혜다. 다른 이들에게 의존하는 것은 나약한 처사다. 둘을 구분하여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내 영혼은 그걸 구분하는 것 같다. 스스로에게 떳떳해야 한다. 

 

3. 

한 달 넘게 읽은 책이 없다. 독서와 글쓰기를 멀리하면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나도 놀라는 중이다. 와우그랜드투어를 떠날 때에는 노트북도 카메라도 들고 가지 않았다. 카페에 갈 때에도 수첩만 들고 나섰고, 차를 마시다 시간이 나면 비치된 잡지나 뒤적였다. 결국 <조르바의 서점산책> 10월 편은 쓰지 못했다. 서점에 가서 보아둔 책들은 있으니 다음 달에라도 쓸 생각인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도 강연과 만남을 취소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10월말이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렇게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

 

4.

허탈함과 억울함이 나의 정서였다. 암담한 현실에 허탈했고 무상했다. 억울함은 다소 복합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책 구입을 제외하면, 난 검소한 사람이다. 지난 해 부터, 돈을 아끼지 않은 품목으로 와인이 더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모든 살림살이에 절약이 습관화된 사람이었다. 식사 후 입을 닦을 땐 휴지 한 칸만 쓰고, 손을 닦을 때에도 1회 사용량의 절반만 사용했다. 수입의 대부분은 공부, 특히 책 구입에 투자되었다. 공부의 결실은 글, 기록, 사진, 수업자료 등의 아웃풋을 낳았는데, 그 아웃풋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 아끼고 절약해 온 삶의 결과가 허망하게 날아간 것 같아, 한 달 동안 그간 아꼈던 옷과 생필품을 대거 구입했다. 10월은, 억울해서 내질렀던, 쇼핑의 한 달이었다. 

 

5.

와우들과 블로거 독자들의 존재가 힘이 되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머잖아 힘을 내야겠다는 의지, 다시 글을 써야 한다는 염원을 갖게 된다. (사실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일에 너무 허우적대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유난을 떠는 중이 아님을 스스로 알고 있으니 포스팅을 할 때마다 용기를 내는 중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는 블로그 독자들을 위한 작은 행사라도 하나 마련해 볼 생각인데, 실천해낼지 나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