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변산반도 가족여행

 

우리 가족은 10월의 마지막 이틀을 부안 변산반도에서 보냈다. 2014년 가족 여행이었다. 대구에서 변산반도는 왕복 9시간 동안 차를 달려야 하는 먼 곳이다. 할머니까지 모시고 가기엔 퍽이나 장거리 여행이었지만, 가족들이 국립공원다운 변산반도의 풍광들을 좋아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확신은 깨졌다. 가족끼리 공유할 수 있는 추억 하나가 쌓였지만 꽤나 아쉬웠던 여행이었다. 그 날을 더듬어 본다.

 

 

1.

가족 모두가 만족스러워하는 여행 다녀오기, 와우투어처럼! 올해 가족여행의 목표였다. 와우투어는 어떻단 말인가. 최근 여행은 10월 3일부터 7일까지 전주, 대전, 부안으로 이어졌던 2014년 와우그랜드투어였다. 와우들은 음식, 분위기, 풍광에 만족했고, 나는 그네들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흡족했다. 이튿날 전주 한옥마을에서의 음식들은 우리 입을 행복하게 만들었고, 변산반도의 풍광들은 환상적이었다. 지금까지와는 한 차원 다른, 최고의 가족 여행을 만들어보자! 이것이 여행을 준비한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2.

변산반도는 고민을 거듭하여 결정된 여행지다. 부안은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여행했던 곳이다. 최근 방문은 10월 초, 정확히는 23일 전의 일이다. 새로운 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꼼꼼히 준비하지 못하면 크고 작은 실수를 하게 될 테고 그럴 때마다 가족 모두가 약간의 고생(?)을 하거나 시간 손실이 생기게 되니, 선정 기준 1순위는 '내가 잘 아는 곳'이었다.

 

안동, 영주, 거제, 전주, 제주, 영월, 속초, 양양, 평창, 담양은 내가 여러 번 다녀온 곳들이다. 담양은 한번은 다녀왔지만 그런대로 준비를 해서 간 여행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이들 중 안동, 영주, 전주를 제외했다. 역사와 문화 명소보다는 '자연절경과 멋진 풍광'을 지닌 곳이 선정의 2순위였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가족의 여행 취향을 반영한 것이다. 3번째 기준은 '가족 모두 가 보지 못한 곳'이다. 나는 가고 또 가기를 개의치 않지만, 대부분은 새로운 곳을 좋아한다.

 

변산반도의 이러한 기준을 통과한 여행지다. 사찰로 이어지는 전나무 숲 뿐만 아니라 아담한 경내도 아름다운 내소사, 호주 애들레이드 근교의 환상적인 바닷가 윌룽가를 닮은 적벽강, 세월의 흔적과 휴양지의 흥겨움이 모두 품고 있는 채석강과 격포 해수욕장, 부안의 작은 진주 모항 해수욕장, 크로아티아 스플리트가 떠오르는 직소보의 절경, 산 속에 숨었다가 반갑게 만나게 되는 직소폭포! 삼촌 숙모께선 전라도 여행은 처음이라 하시니, 부안은 세 가지 기준을 거뜬히 충족했다.

 

 

3.

여행 전, 두 번에 걸쳐 동생에게 메일을 보냈다. 여행 준비를 위한 내용을 담았다. 내가 전달해야 하는 정보와 가족들이 결정해야 한 안건도 건넸다. 서울에 거주한 내게는 본가와의 의사소통 채널이 필요했다. 동생이 그 역할을 맡아 주었고, 메일이 수단이 되었다. 첫번째 메일을 주고받으며 동선, 숙소의 객실, 식사 메뉴가 결정되었다. 두 번째 메일로는 복장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했다.

 

최근 다녀온 곳이라 동선과 식당이 눈에 훤했다. 할머니께서 힘드실 경우, 어디에서 쉴 것인지, 차를 어디에 주차하면 도보 거리가 가장 짧은지, 휴식은 어디서 취할 것인지 등의 세부사항도 체크해 두었다. 둘째날에 방문할 직소폭포는 도보로 왕복 90분 거리다. 그때 먹을 군것질거리를 준비했고, 간식거리를 담을 작은 배낭도 챙겼다.

 

4.

여행 일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날>

09:00 대구 출발

13:00 점심식사

14:00 내소사

16:00 모항 해수욕장

17:00 체크인

17:40 일몰 관람

18:30 저녁식사

 

<둘째날>

10:00 호텔 출발

10:30 적벽강

12:00 점심식사

13:30 직소폭포

16:00 부안 출발

20:00 대구 도착

 

여행 첫날. 새벽 5시에 눈을 떠, 전날 챙겨 둔 가방을 들고 차에 앉으니 5시 30분이었다. 양평 서재에 들렀다가 대구에 도착한 시각이 9시 05분. 식구들이 나오는데 15분이 걸렸고 우리는 9시 20분에 출발했다. 양호한 시간 준수였다.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복병이었다. 편도 1차선의 고속도로라니! 앞에 트럭이 달릴 때면 속도를 줄여 추월 차선이 나올 때까지 트럭 꽁무니를 따라가야 했고, 공사 구간이 많아 정체가 심해지기 일쑤였다.

 

대구에서 전남으로 향하는 도로는 열악했다. 모든 지방 도시와의 교통이 편리한 서울과는 확연히 달랐다. 고속도로 주변의 정돈되지 못한 풍광들과 놀랄만큼 간소한 휴게소를 보니, 시대를 거슬러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삼촌과 영호남 지역 격차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열악한 고속도로로 점심식사가 한 시간 가량 늦어진 것을 제외하면, 다행하게도 다음 일정부터는 예정대로 착착 진행되었다.

 

 

5.

가족은 내소사의 아기자기한 모습과 모항 해수욕장과 채석강의 풍광을 즐겼지만, 그날 풍광은 나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흐린 날씨가 아쉬웠다. 바다는 하늘 빛깔을 반영한다. 와우그랜드투어 때의 화창했던 하늘은 모항의 바다 빛깔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었는데, 가족 여행 때에는 우중충한 잿빛 바다를 보여줄 뿐이었다. 볼만 했지만, 더 좋은 풍광이 아니라 속상했다. 우리 가족은 감탄에 능한 편도 아니다. 모두 전형적인 경상도 사람들이다.

 

채석강에서는 일몰을 보기를 바랐다. 일몰시각은 오후 5시 40분이었다. 채석강에 도착하여 둘러보고 바닷가에 앉은 시간이 5시 10분이었다. 만약 일몰이 지고 있었더라면, 낙조를 바라보는 환상적인 30분을 보냈을 텐데... 그날의 하늘은 무심했다. 최적의 타이밍에 도착했지만, 구름은 태양을 꼭꼭 숨겼다.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을 본 적 없는 식구들이기에, 몹시 아쉬웠다.

 

 

첫째 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튿날은 비가 왔다. "가을비가 오면 얼마나 오겠노" 하셨던 숙모의 예상과는 달리, 많은 양의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적벽강에서 잠시나마 빗줄기가 가늘었던 게 고마울 정도였다. 우천에 대한 대안은 실내 여행지를 방문하는 것이었다. 신석정문학관, 신재생에너지체험관 그리고 고려청자박물관과 미술관 등이 있었지만, 가족은 예술 쪽엔 관심 없었다. 아! 얄미운 날씨.

 

6.

삼촌과 동생은 '새만금 방조제'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는 대구로 돌아갈 경로로 대전을 경유한 경부고속도로를 선택했기에 부안에서 군산까지 이어지는 새만금 방조제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달렸다. 방조제에 진입하기 전, 새만금홍보관에 들러 방조제에 대한 기본 정보도 얻었다. 바닷길이 무려 34km였다. 홍보관이 실내였다는 점도 고마웠다.

 

예정했던 직소보와 직소폭포 여행은 물 건너 갔고, ‘수성당’ 관람은 차를 몰고 주차장까지 갔었지만 "비오니까 그냥 가자"는 말씀에 무산되었다. '새만금' 관광이 여행 일정을 채워 주고 홍보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정작 새만금 방조제를 달릴 때에는 동생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잠들긴 했지만.

 

 

7.

결론! 올해 가족 여행은 나의 기대를 충족하진 못했다. 궂은 날씨를 대비한 대안 일정을 마련하지 못한 불찰 탓이 컸다. 숙모 휴가에 맞춰 한 달 전에 결정된 날짜 탓을 할 순 없다. 가족여행에 대해 내가 다소 부담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편안한 마음가짐으로 떠날 수도 있을 테지만, 나는 매년 아름다운 여행 추억을 선사해 드리고 싶었다.

 

가족이 함께 했다는 사실 만이라도 추억이 되지만, 여행마다 잊지 못할 순간을 만나고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본다는 더욱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와우투어든, 가족여행이든 소중한 시간을 내어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나는 게으를 수가 없다. 첫째 날 밤 삼촌 숙모와 나눈 진솔한 대화, 할머니의 웃음 등 의미 있는 순간도 있었지만, 궂은 날씨로 인해 만나지 못한 풍광들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