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이 인간도 멋진 인간들처럼

카잔 2015. 12. 14. 11:04


부모를 잃은 사람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 행복한 순간마다 나의 잘됨을 가장 기뻐해 줄 엄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힘겨운 순간에 버팀목이 되어 줄 가족이 없다는 사실로 외로운 밤을 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 부모의 존재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표현이 좀 불경스럽지만) 부모의 가치에 대해 몸으로 알고, 한번뿐인 인생을 부모 없이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해 삶으로 안다.


그들이 효자라는 말은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효자가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어떤 이성을 사랑한다는 것과 그의 연인이 되는 것이 별개이듯이. (짝사랑을 떠올려 보라.) 효자가 되려면 누군가의 자녀이어야 한다. 더 핵심적인 사안도 있다. 부모의 부재로 효심을 키웠던 이들도 실제로 부모와 함께 살면 그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아니 부모의 존재를 당연하듯 여길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얼치기 부모가 많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그들, 나는 나’ 식으로 생각한다.)


아래위의 이가 서로 맞물리면 효과적으로 음식물을 씹을 수 있다. 음식물이 들어오면 아래위의 이는 키스를 하고, 침샘은 애액(愛液)을 분비하고, 혀는 음식을 애무한다. 손발이 착착 맞다. 인생살이는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일보다는 어렵다. 세상에는 교합이 어긋난 것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효심 가득한 고아뿐만이 아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수재, 행복을 놓친 부자들, 좋은 선생을 만나지 못한 열정적인 학생, 열심히 살지만 삶의 목적을 모르는 이들...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 인간을 예찬했다. "인간이란 참으로 걸작품이 아닌가! 이성은 얼마나 고귀하고, 능력은 얼마나 무한하며, 생김새와 움직임은 얼마나 깔끔하고 놀라우며, 행동은 얼마나 천사 같고, 이해력은 얼마나 신 같은가! 이 지상의 아름다움이요 동물들의 귀감이지.” 과연 우리가 그럴 때가 있다. 고아들이 독립심을 키우고, 세상이 몰라주어도 실력을 연마하고, 불리한 환경에도 포기하지 않으며, 삶의 목적을 몰라도 일상을 열심히 사는 이들이 존재한다.


“헌데,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이어지는 햄릿의 말이다. 그가 인간 예찬과 더불어 고뇌의 발언을 한 상황은 이렇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어느 날 아버지가 죽는 비극을 맞는다. 범인은 형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악행을 저지른 햄릿의 삼촌이다. 어느 날 햄릿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왕위에 앉은 삼촌이 범인임을 알게 된다. 언급한 대사는 이러한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후의 햄릿이 아직 행동하기 전에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서 나온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관과 햄릿이 처한 비참한 상황의 대비로, 나는 햄릿의 고뇌가 느껴졌다. 시대정신은 인간을 예찬하나, 자기 눈앞에 있는 인간은 괴물로 보였을 것이다. 과연 셰익스피어다. 아, 인간(들)이여! 세상에는 불운의 환경과 어려운 상황을 극복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결국 인류사란 위대한 ‘인간들’의 명장면들로 채워진 열전이다. 멋진 인생을 만든 ‘인간들’과 나라는 ‘인간’은 과연 같은 종이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분명 우리 모두는 인간들이다.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살고, 먹어야 생을 유지할 수 있으며, 일하고 사랑해야 온전해지는 인간들!


똑같은 면이 있는가 하면, 전혀 다른 점도 많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도 다르게 반응하고, 같은 문제를 다른 태도로 임할 것이다. 생각의 크기도 다를 테고, 똑같은 하루 24시간을 전혀 다르게 보내며 사는지도 모른다. 한쪽은 일어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인터넷 가십을 검색하고 다른 한쪽은 스트레칭과 함께 명상을 하거나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면, 이것은 작지만 분명한 차이다. 혹시 이런 ‘차이들’이 쌓여 삶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인간’과 ‘인간들’의 차이는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 건 아닐까. 


나는 어린 시절엔 효자가 아니었고, 십대 시절에 부모님을 여의었다. 어긋남의 시작이었다. 내 삶의 전반부는 이런저런 것들을 잃어온 삶이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것들을 잃었다. 수년 동안 허송세월한 적도 있지만 평생을 그리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윽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었다. 나는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려고 노력했다. 작은 변화를 쌓기, 이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잃어버리고서야 유실물의 가치를 더욱 이해하는 법이다. 나는 상실한 것들에 관해 느낀 바가 많다. 이제 느낀 대로 살아보려고 한다. 작은 차이지만, 쌓이면 작지 않을 것이다.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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