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아름다운 명랑인생

월든의 달

카잔 2010. 12. 6. 12:17


어젯밤부터,『월든』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눈이 편안한 누런 빛깔의 독자카드가 꽂혀 있었다. '우편요금 수취인후납부담'의 엽서다. 우표를 붙이지 않고 우체통에 넣어도 출판사로 날아간다. 독자의 의견이라면 자기들의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도서출판 이레! 생각해 보니, 이레에는 좋은 책들이 많다. 『인생수업』,『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불안』은 언제 어디서도 자신있게 권하는 책들이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은 많지 않다. 책이 훌륭해도 독자와의 적합성을 생각해야 하니까.) 이레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와 헨리 데이비드 소로,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여러 권 출간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어서 그런가? 독자카드에 작은 글씨의 글귀가 인상 깊은 진정성으로 다가 온다.

이레의 책을 구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한 권 한 권 삶의 빛이 되는 책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독자카드를 보내 주시면 더 나은 출판을 위한
소중한 자료로 사용하겠습니다.

내가 카드를 출판사로 보내려면 우표를 붙여야 한다. 발송유효기간이 7년이나 지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구입한 직후, 카드에 적힌 질문에 답변을 달아 놓은 듯하다. 아마도 독자카드를 보내려고 적었다가 어떤 이유로 행하지 않았나 보다. '생각만 하다가 만 일'은 비일비재하니, 굳이 어떤 이유였는지 따져 보고 싶진 않다. 다만, 훌쩍 지나간 9년이라는 세월에, 그 속도감에 잠시 놀랐을 뿐이다.

구입하신 책 제목 : 월든(Walden)
구입하신 날짜 : 2001. 9
구입 방법 : 서점
구입동기 : 초월주의자들의 사상을 알고 싶어서
책에 관한 느낌과 이레에 바라는 점 : (여기는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2001년 가을에 나는 초월주의에 '잠시' 관심을 가졌나 보다. 방점은 '잠시'라는 단어에 찍힌다. 초월주의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채 곧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 갔으니까. 초절주의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초월주의는, 19세기 미국에서 형성된 문명비판의 입장을 취한 이상주의적인 관념론이다. 관념론이니 당연히 물질보다 정신에 우위를 둔 사상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을 예찬하여 아름다운 삶의 전형 하나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상주의다.

2009년, 에머슨의 책을 읽으며 초월주의와 초절주의라는 말 중에서 어떤 것을 쓸까를 고민하면서 다시 한 번 초월주의에 대해 생각했었다. 그 때, 내가 관념론자일 수 밖에 없음을 느끼기도 했고,1) 문명 사회의 거짓 문화에 길들여져가면서 삶의 여유, 인간의 존엄성,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 희미해질 때 초월주의가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단순하게 살라! 자기에게 충실하라! 자연과 벗하라!


『월든』의 핵심 메시지들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 책을 뻔한 내용이라 오해하실까 봐 두렵다. 익숙한 단어들로 감동을 만들어내는 것은 훌륭한 작가의 특성 중 하나다. 익숙하여 식상하기까지 한 가치를 들고 독자의 가슴 속에 치고 들어갈 수 있는 힘은 삶의 깊이에서 나온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삶으로 구현한 작가는, 그 가치의 유익에 대해서, 가치를 추구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그 가치를 경시하는 사람들과의 차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런 작가의 메시지는 살아있고, 구체적이며, 섬세하다.

『월든』도 그런 책이다. 살아왔던 대로 또 하루를 살아가는 이에게 잠시 쉼표를 찍고 생각하게 한다. 경제적인 생각만 하던 이에게 철학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다. 소로우는 말했다. 부자가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거의 아무 것도 원하는 않는 것이라고, 대중의 평가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내리는 평가보다 가혹하지 않다고, 여가는 사업만큼 중요하다고. 첫째 메시지를 제외하고는 조금씩 실천해왔다. 그러니, 이제 나는 부자가 되는 일에 힘껏 도전해 보려고 한다.

물론 『월든』의 메시지를 그대로 따르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돈 없이 살기'가 매우 힘든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소로우처럼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고 구체적인 사실을 끌어모으는데 익숙한 현실주의자는 가능성을 추구하고 직관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상주의자들보다 소로우의 삶을 실천하기가 힘들다. 『월든』의 메시지는 이상주의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들릴 것이고, 이들이 실천하기가 더욱 쉽다. 하지만, 현실주의자에게도 월든의 메시지는 중요하다. 물질주의와의 건강한 균형 관계를 돕기 때문이다. 관념론자에게 마르크스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나는 월든의 메시지를 힘껏 쫓아 보련다. 핸드폰 없이 살아보기,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 살아보기는 불쑥 불쑥 떠오르는 욕망이다. 실현해 보려고 몸을 움직여 보기도 했다. 그 때마다 사람들의 조언이 나를 주저하게 했다. 아직 젊으니 도시에서의 삶이 더 잘 어울릴 것이라는, 한 번 도심에서 나가면 다시 도심으로 들어오기가 힘들 것이라는, 교통이 불편하면 오가는 데에 지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들 말이다. 나는 여태껏 실천하지 못했다. 그런 조언의 내용이 염려되기보다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런 일반적인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겨웠기 때문이다. 핸드폰 없이 살아보기는 두 번 시도했다가 좌초에 걸려 중단했다. 지금 다시 시도하려던 기회를 노리던 찰나에 『월든』을 읽기 시작한 게다.

꼭 그래야만 하니? 라는 말을 들으면, 내가 극단적인 것 같아서 또 주저하게 된다. 꼭 그렇게 해야만 내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내 식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마음 속에 간절한 소원이 내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알기 위해서는 실천해 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을까?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뛰어나다면, 관찰과 경청은 경험에 버금가는 체험을 주니까. 관찰과 사색하고 나서도 나는 한 번 시도해 보고 싶다. 딱 1년만이라도 홀로, 자유롭게, 천천히 살고 싶다. 올해 하반기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글귀를 읽었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한번 내 식대로 살아 보기 위해서였다.
즉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여 인생이 가르치고자 한 것을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해서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 소로우


월든 호숫가에 있는 소로우의 오두막 터의 널빤지에 적힌 글이라 한다. 같은 생각을 했던 인생의 선배를 만난 것은 전율이요, 기쁨이다. 내 안에 있던 생각과 똑같은 분을 만나면 반갑다. 하지만, 나의 생각을 삶으로 구현한 분을 만나면 전율한다.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세상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목격했기 때문이고, 그에게서 용기를 한 아름 얻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그 분의 위대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생각과 실천 사이의 거리는 천지처럼 멀다. 사유의 지평을 넓혀 준 분들에게 대한 고마워 할 줄 안다면, 관념의 세계에서 행동의 세계로 이끌어 준 분에게는 고마움과 찬탄의 마음을 지녀야 할 것이다.

요즘 나는 11월 초 하조대에서 생각했던 일을 실천하던 중이었다. 12월에는 바쁘게 보내기! 이것이 나의 12월 모토였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일을 벌여서 바쁜 것이 아니라, 나를 만나기 일에, 여유를 누리는 일에 바쁘고 싶었다. 이번 한 달은 홀로 바쁘게 보내고 싶었던 게다. 나는 이렇게 보내는 한 달을 '월든의 달'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연간 4번 정도는 '월든의 달'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3월, 6월, 9월, 12월.

오랫동안 품었던 생각을 실천할 용기를 얻은 오늘은.... 참 좋은 날이다.


1) 내가 관념론자 임에 대해 쓴 글은 개인적으로 중요한 글이다. 지금도 여전히 풋내기 지식인이지만, 사상이 형성되기 시작한 나에 대해서 사유한 글이기 때문이다. 자기 철학을 만들어가고 싶은 분들이 있을지 몰라, 아래 링크로 연결해 둔다. 주의사항 : 도움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 삶을 위한 철학 http://www.yesmydream.net/765]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실현전문가 이희석 와우스토리연구소 대표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