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신이 허락한 5대 의사

카잔 2014. 2. 17. 14:24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 생산성이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10분, 20분의 짧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은 효율적인 것입니다. 이를테면, 책상 정리나 간단한 아티클을 읽는 것입니다.  반면 3시간, 4시간이 만들어내는 생산성은 다른 차원입니다. 그것은 효율성이 아닌 창조성입니다. 삶에 대한 생각이 여물거나 글의 소재를 착상하거나 중요한 원고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식입니다.

 

일요일 밤부터 월요일 오후까지 꼬박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더니 창조적인 생산성을 만끽했습니다. 신간의 프롤로그를 탈고했고, 나의 계획을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아래와 같은 단상들도 많이 떠올랐습니다. 1번부터 5번까지를 작성했는데, 길이 길어 본 포스트엔 3번까지, 나머지는 다른 포스트(세대별 핵심 화두)로 올렸습니다. 그저 단상입니다.

 

 

1.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행복하지 않다. 깊은 내면의 만족으로부터 행복을 끌어오기보다는 자기기만으로 행복을 조장하기 쉽기 때문이다. 당신이 큰 실수를 했다고 치자.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를 합리화하기가 쉽지 실수에 직면하여 스스로를 개선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선에는 고통이 따르고, 고통을 지속적으로 견디기란 어렵다. '그래도 이만하면 됐지, 뭐' 하면서 고통을 덮는다. 이런 식의 자기합리화를 통해 만들어진 행복은 솜털 같아서 작은 바람이라도 불면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깊은 인생으로부터 진한 행복이 만들어진다. 이리 말할 수도 있겠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행복은 공부 순이다. 토익 성적을 올리기가 쉬운가. 진짜 영어실력을 올리기가 쉬운가. 공부가 어렵다. 행복은 어렵다. (성적과 공부는 예로 든 것일 뿐) 행복하기 위해 공부를 더해야 된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공부를 덜하고 더 많이 발견하고 더 자주 느껴야 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자기가 생각하는 만큼 불행하지도 않다. 사람들은 자신의 불행을 곧잘 과장하거나 슬픔을 음미한다. 혹은 곧 나아질 상황을 내다보지 못해 지나치게 괴로워한다. 자신의 감정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쁠 땐 웃고, 슬픈 땐 울고), 자주 자신의 비극적 감정을 즐겨서는 곤란하다. 불행의 감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 받으려고 하거나 과장된 미소로 환심을 사려고 한다. 이것은 모두 자기 감정을 무시하는 처사다. 불행한가? 진실은 이것이다. 당신의 생각만큼 당신은 불행하지 않다.

 

2.

병원에만 의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도심을 벗어나면 있고, 세월의 흐름 뒤에 있다. 어머니의 손길에 있고, 우리의 태도에도 있다. 자연과 시간과 사랑은 신이 내린 의사들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의사는 우리의 의지다. 어쩌면 의술을 익힌 의사는 가장 직접적인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가장 빈약한 의술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의사, 자연, 시간, 사랑, 의지.

우주에 존재하는 인간의 치유자들.

 

3. 

존재 자체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리 생각했다면 착각일 것이다.) 오직 어머니의 사랑만이 얼마간 가능할 뿐이다. 존재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절묘한 관계로 서로 이익을 주고 받고 있거나 서로를 위해 끊임없이 상호 노력한 결과를 신중히 헤아리기 못했기에 드는 드는 감정이다. 

 

위대한 자연도 시간 앞에는 변하고 만다. 변하기 쉬운 사람의 마음이야 말할 것도 없다.존재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착각이 들 때마다 서로가 노력해 온 사실을 발견하여 감사하고 잘 맺어진 기브 앤 테이크의 이번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 그런 관계가 흔들릴 때 다시 노력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