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여자의 내숭보다 센 남자의 허풍

카잔 2014. 3. 4. 23:50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허풍이 심한 남자라는 말을, 언젠가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를 싫어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허풍쟁이니까. 멀쩡하다가도 여자들 앞에선 허풍이 심해지는 남자들도 많다. 내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해가 되실 거다. 그는 나보다 농구를 못한다. 누가 봐도 그리 인정한다. (내가 농구를 쬐금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 친구와 나 그리고 친구의 여자친구랑 이렇게 셋이서 대화를 했던 적이 있다. 어쩌다가 농구 얘기가 나왔는데, 여자애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나보다 훨씬 농구를 잘 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내 친구는 엄청난 농구 실력자였다. 자기 여친이 그렇게 말할 때의 친구의 얼굴을 놓친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도 자기보다는 내가 농구를 더 잘 한다고 인정하니깐. 내 친구가 거짓말이나 일삼는 친구는 아니다. 그는 매너 좋은 의리있는 남자다. 그저 여자들 앞에서 자신을 부풀려 말하기를 즐길 뿐.

 

앞서 말한 속설에 따르면, 여자들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 나는 허풍이 심하지 않으니까. 저명한 작가나 명저를 칭찬할 때엔 흥분하고 오버하여 과찬하는 경우가 있긴 해도, (여자들이 싫어하는 허풍이라고 할 때의 허풍은 자기자신을 향한 것일 터) 나에 대해 허풍을 떠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나는 항상 진솔함을 택하는 편이었다. 나는 낭만적인 무드 속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말 한 마디 "사랑해"를 할 줄 몰랐다. 아니 하기 싫었다. 나는 아직 사랑을 모른다고 생각했거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사랑의 순간 속에서도 철학적인 문제로 사유하는 것은 센스없는 허풍 만큼이나 관계엔 도움 안 된다. 나와 다른 종자의 남자들은 "사랑해"를 남발하여 여자를 울렸다면, 나는 "사랑해"를 너무 아껴 여자의 감성의 메마르게 하는 쪽이었다. 사랑의 센스를 따지자면 허풍 떠는 남자 진솔한 남자는 모두 꽝이다. 진솔함에도 센스가, 허풍에도 센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세상을 떠도는 대부분의 관념은 지나친 단순화, 참을 수 없는 피상성의 결과물이다.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자가 허풍이 심한 남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허풍이 거의 없는 남자인 나를 많은 여자들이 좋아해야 하지만 특정한 여인들만 나를 좋아해왔다. 대다수의 여자들은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도 다양하다. 못 생겨서(겸손이 아니라 실제로 못 생겼다), 스타일이 세련되지 못해서(외모에 치장할 시간과 돈을 아까워한다), 헤어스타일이 덥수룩해서(헤어샵 가기를 싫어하고 그래서 종종 지나칠 정도로 머리를 지저분할 정도로 기른다), 성깔이 더러워서(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하나둘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등이다. 우리 가족이 내세울 것도 없고 돈도 없는 집안이라는 것보다 방금 언급한 사실들이 여인들에게 선택받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이리라. (연애 경험이 전무하진 않다. 아니, 오히려 연애기간도 길고, 경험도 많다. 그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오겠지.) 

 

여자들은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한다. 이말을 들은 여인들은 자기는 아니라고들 하나, 그건 모두가 장동건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 '자기 눈'에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이는 남자를 좋아하기 마련이다. 여자들에게 잘 생김의 기준은 만국 표준이 아니라, 절대적 주관이라는 점이 나를 포함한 세상 모든 못생긴 남자들에게 복음이리라. (이건 여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일 테고.) 공평한 연애를 위해 인간은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신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사람들을 잘 생겼다고 여기는 '고유한 눈'을 주셨다. 잘 생겨보이게 만드는 특징들을 두고, 사람들은 매력이라고들 부르기도 한다.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매력이 있는가 하면 다른 매력도 많다. 육체적 매력(섹시함), 지적 매력, 건강함에서 오는 매력, 그리고 (교회에서 종종 발견되는) 영적 매력도 있다. 매력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사실이 참 좋다. 난 지적 매력은 좀 있지 않나 싶은데, 사실 갖고 싶은 것은 육체적 매력이다. 쿨럭.

 

나는 피부가 참 좋다. 지금껏 나의 속살을 만져 본 이들은 모두 말한다. 피부결이 곱다고. 억울한 일이다. 보이지 않는 속살의 피부는 좋지만, 밖으로 보이는 얼굴 피부는 엉망이니. 내 얼굴의 약점은 그 외에도 여럿이다. 어색한 덧니, 자라다 만 눈썹, 작은 눈...! 게다가 마른 체형이다. 최근엔 탈모도 진행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을 밝은 미소만으로 무마하기는 불가능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는 어두운 표정으로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애로사항을 느끼며 사는 것은 아니다. 신은 나를 '내면의 만족'을 추구하는 기질로 만들었다. 다행이다. 보기만 해도 속상한 얼굴과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기질로 태어나는 이들을 적잖이 괴로울 테니까. 나의 약점을 만을 나열했지만, 물론 나의 외모에도 봐 줄 곳은 있다. 그나마 키는 크다.

 

여자들은 말한다. 남자들은 여자의 내숭을 구분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자기들은 척 보면 안다고. 그 말은 곧, 나도 내숭을 떨어봐서 내숭 떠는 여자를 단박에 알아보는 거라는 말이다. 한편, 내숭 여자 떠는 여자를 구분하지 못하겠더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있다. 십중 팔구 그들의 DNA에는 내숭이라는 코드가 없다. 내숭을 잘 떠는 여자들이 내숭을 잘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결국 사람들은 자기 내면에 가진 것들을 외부 세계에서 발견할 때 포착해내는 것이다. 남자들더러 왜 여자의 내숭을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타박하는 여인들에게 나는 이리 화답하고 싶다. 여자들도 남자의 허풍을 잘 모른다고. 저것 다 허풍인데, 어찌 그리 잘들 그 허황된 속삭임에 잘도 넘어가냐고 묻고 싶다. 물론 남자들은 척 보면 안다. 허풍인지, 진실인지. 구분하는 힘은 두 가지다. 자기 안에 허풍 코드가 있거나 아니면 세상과 사람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인간이해가 깊어졌거나. 나는 후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간이해'는 내 필생의 전공으로 삼아 공부하는 주제이니, 내 공부의 깊이는 차치하고서 조금은 남다른 인간이해를 지녔을 거라고 믿어주시라.

 

남자들의 속성 하나를 알 수 있는 일화를 고백한다. (마치 내 일처럼 고백이라 표현한 것은 남자들만의 세계를 염치없이 생각없이 털어놓는 건 아닌가 싶어서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니라 영리한 여인네들은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순진한 여인들은 여전히 남자의 세계를 모른다. 영리한 여인들도 속기는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그래도 자기 남자는 아니라고 믿는 영리한 여인들 말이다. 각설하고,)  S는 엘리트다. 핸섬하고, 매너 좋고, 좋은 직장을 다닌다. 그는 회사 행사 때 특이한 상을 하나 수상했다. 최고의 프로포즈상! 직원들이 각자 자신의 배우자와 결혼했던 프로포즈를 공개하여 가장 환상적인 프로포즈를 한 이에게 주는 상이었다. S의 프로포즈를 들었지만 기억이 가물하다. 하지만 S의 실체는 오랫동안 기억했고, 내가 남자라는 존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와 노래방에 갔던 적이 있다. 우리는 도우미들과 놀았다. (당연히 2차를 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옷을 벗고 놀지도 않았다. 손잡고 춤을 추는 등의 가벼운 스킨십만 있을 뿐이었다.) 모두들 즐겁게 놀았고 노래방을 나와 각자들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 줄로 알았다. 하지만 훗날 S를 만난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도우미 아줌마와 함께 2차를 갔고, 그 이후 여러 번 만났단다. (만나서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거나 그러진 않았다. 상상에 맡긴다.) 모든 로맨티스트가 S 같진 않지만, 나는 달콤한 말을 할 줄 아는 로맨티스트의 상당수가 S와 같은 부류라고 생각한다. 그를 파렴치하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그는 매너 좋고, 로맨틱한 남자다. 그리고 실력도 출중하다. 그는 다소 허풍쟁이다. 그래도 여러 여자들이 그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았다.

 

여자들이 허풍이 심한 남자를 싫어한다는 말을 뒤짚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그러니 저 명제는 이리 고쳐야 한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은 허풍이 심한 남자가 아니라 센스가 없거나 머리회전이 둔하여 허풍을 들켜버리는 남자라고. S처럼 영리하고 센스 있는 허풍에 걸려들면 십중팔구 여자들은 넘어간다. 아! 나도 저런 허풍의 기술을 살짝이라도 가졌어야 했는데... 아니면, 잘 생긴 얼굴로 태어났거나 세련된 옷차림에 능하거나, 눈썹이라도 마저 자랐거나, 얼굴 피부라도 좋았어야 했는데... 아쉬운 일이다. (물론 아쉽다는 말의 절반만 진실이다.) 다행스러운 일은 내가 이런 내 모습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사실 못마땅한 구석도 있지만 어쩌겠나, 이리 태어난 걸. 이건 자조도 아니고 합리화도 아니다. 아모르 파티, 내가 태어난 숙명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인생은 숙명의 터 위에 자유의 집을 여정이다. 하지만 또 다른 생을 산다면 다른 숙명으로 태어나고 싶다. 다른 얼굴, 다른 국적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이다. 그건 지금의 모습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고 묻지 마시라. 그것 역시 그 때의 삶을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