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탈고를 앞둔 막바지 고민

카잔 2015. 8. 14. 11:59

최근 인문학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출간 되기 전이니 '원고'라고 해야겠군요. 집필은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글을 쓰면서 짜릿했고, 감격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날들입니다. 보름 후면 탈고를 마치고 출판사로 보낼 것 같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말이죠. 예정을 방해할 요소는 많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고, 제가 사고를 당할 수도 있죠. 개연성이 낮은 일들이니 헛소리라 치부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의 인생사는 개연성이 아닌 필연성으로 벌어집니다. 우리의 생로병사는 그 필연성 중에서도 확연한 사실입니다.

 

그렇더라도 높은 개연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 합리적 인생살이라는 점에서, 출간의 실제적인 장애물을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저의 완벽주의입니다. 이번 원고는 꽤 흡족합니다. '내가 다시 글을 쓰는구나' 하는 느낌 만으로도 제게는 기쁨이었고요. 하지만 이제 탈고를 2주 앞두고 보니 이런저런 불안감이 듭니다. '이게 과연 필요한 책인가' '비슷한 문제제기가 있어왔지 않나' 와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제 책의 마지막 대목에 인문학에 입문하기에 적절한(?) 책을 소개하려고 며칠 동안 몇 권의 책을 읽다보니 든 생각들입니다.

 

방금 『불온의 인문학』을 읽었습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비판'의 인문학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책 뒷표지에는 "사유의 불온성, 사상의 전복성, 비판의 급진성! 이것이 인문학이다." 라는 문구가 쓰여 있네요. 수유너머 연구원 여섯 명이 공동 집필한 책입니다. 1장 "우리시대 인문학은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는 제 책의 일부와 문제의식이 꼭 같아, 해당 부분을 덜어내야 하나 고민하며 읽었습니다. 먼저 출간된 책에게 "이 부분이 제 문제의식과 겹치네요. 덜어내 주세요." 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요.

 

'꼭 새로운 문제의식, 새로운 내용을 출간해야 하나?' 이런 질문도 가질 수 있겠죠.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한 권의 책 내용이 온전히 새로울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완벽주의자인 겁니다. 완벽주의라는 용어가 나를 제대로 표현해 주는지도 의문입니다. 저는 완벽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제 부족함이 끊임없이 눈에 보이는 까닭에 자신감이 사라지고 더 공부해겠다고 결론내리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탄생하지 못한 『어떻게 자기답게 사는가』의 비운은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고요. 

 

『불온의 인문학』 1장 얘기로 돌아가죠. 책의 필자와 나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인문학은 인문학답지 않은 방식, 요구, 결과물로 소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필자에 따르면, 인문학이 부활했고, 인문학은 돈을 버는 데에 실용적이고, 자아 성찰을 위해서는 인문학을 해야 한다는 말은 모두 인문학과는 별개의 '소문'이고, 이런 상황으로부터 인문학의 위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독자들은 자기계발서를 읽듯이 인문서를 읽는다고 아쉬워합니다. 이런 문제의식에 저도 동감합니다. 다만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와 나는 생각이 다릅니다. 같은 문제의식, 다른 결론인 셈인데 저자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인문학 강의를 들은 이유를 밝힙니다.

 

"내가 (인문학) 강좌를 듣기 시작한 것은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함이었다.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살아버려야지' 하는 방종이 아니라 '세상이 왜 이 모양이야' 하고 골방에서 불평불만을 하는 것도 아니라,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가볍게 춤을 출 수 있도록 우리의 감각을 바꿔줄 때 인문학이라는 낡은 이름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p.51)

 

아! 아쉽습니다. 나는 이 결론이 아쉽습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닙니다. 동지에게 느끼는 우호적 감정입니다. 필자가 인문학 강좌를 듣게 된 원인은 일상을 바꿔보기 위함이라는데, 이것은 자기계발 독자들이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와 같습니다. 그들 역시 일상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는 '일상의 변혁'을 모토로 삼은 이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일상의 재편을 중요하게 여기죠. 저는 일상의 재편은 인문학만의 고유함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의 결론은 자신이 비판해 왔던 비인문적 독서 방식으로 환원해버린 느낌입니다. 

 

일상을 바꾸기 위한 책읽기라고 하면, 기실 목적이 너무 광범위해져 버립니다. 그것을 위하지 않은 책읽기를 하는 분야가 어디 있을까요? 인문학, 실용서, 사회과학 모두 우리가 속한 소시민적 일상이든, 거대 조직이든 작은 부분을 바꾸기 위한 책이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쉽습니다. 인문학만의 목적을 꽉 붙잡지 못하고 헐겁게 지칭하는 '일상의 변혁'이라는 표현 말입니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일상의 변화와 자기계발 독자들의 일상의 변화가 지칭하는 속 내용물이 다를 겁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문학을 표방하는 글에서는 그 내용을 정확히 지칭하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여전합니다.

 

내가 이 글을 읽고 조금의 두려움, 또는 얼마간의 답답함을 느낀 것은 기실 다른 대목입니다. 필자는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두고 말합니다. "이렇게 당연한 소리를 하는 책이 베스트셀러 1위라는 사실이 놀랍다." 비판적 의식을 지닌 식자들이 얼마나 자주 했던 말입니까. 사실 인문학 쪽에서보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이들의 비판을 더 많이 받은 책입니다. 문제를 개인보다는 사회 구조적 차원으로 돌리는 그들에게는 이 책이 나이브할 뿐이고, 그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나약한 정신 상태를 가진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독자들이 감탄하고 열광하는 반응에 놀라워하는 저들의 빈약한 인간이해가 아쉽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인 동시에 자신만의 의식과 마음을 지닌 개인적 존재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당연히 개인적 문제와 사회구조적 문제의 합작품일 겁니다. 제 눈에도 김난도 교수의 책이 대단한 인식을 담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 책이 100만부를 돌파한 데에는 책이 가진 저력 이외의 여러 가지 요인에 힘입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들 중 상당 비율의 사람들은 마음의 위로를 받는 것 만으로도 힘을 냅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면 인간을 늘 반쪽만 이해하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단순화시켜 말하면,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마음의 힘을 키워준 고마운 도서입니다. 저는 그 독자들이 이 책만을 인생 최고의 책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두 권 중 하나로 여겨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한 개인의 마음이 아무리 강해져도 그를 능가하는 사회 구조적 부조리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두 권을 최고의 책으로 꼽아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한 손에는 개인적 주도성을 키워주는 책을, 다른 한 손에는 사회의식을 함양시켜 주는 책을 말이죠.

 

사실 저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다가 덮었습니다. 제게는 불필요한 책이더라고요. 그렇지만 그 책이 불러온 현상을 면밀히 살피니 실제로 어떤 개인은 도움을 얻었더라고요. 그 도움이 자기기만이 아닌 실제라면 간과하지 말고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굉장히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별로인 책인데, 누군가는 도움을 얻는 경우 말입니다. 이때, 비판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나는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있는가? 인식의 수준에서부터 기질의 차이까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식을 함양시켜주는 아주 쉬운 책으로는 뭐가 있을까요? 아,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떠오르네요. 지금 제가 하는 주장은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는 독자들이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독자들을 시시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독서하는 이유와 책읽기의 결실을 면밀히 관찰하여 이해하는 것 그리고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독자들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의 독자들을 쓸데없다 생각하지 않고 저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과 사회구조의 영향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정은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이것 또한 시대정신의 한 단면입니다. 학문은 수십년 동안 분화되어 왔고, 일각에서 학제 간 연구(일명 통섭적 학문하기)를 주장하지만 여전히 학문 분과 간의 괴리는 큽니다. 제 첫 책에서 인용했던 구절이기도 한데, 도정일 교수의 말이 죽비소리처럼 들리는 듯 합니다.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쳐 놓은 학문의 울타리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죠. 학문의 경계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그어 놓은 거니까요. 진리는 학문의 국경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음대로 넘나드는데 우리 대부분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골방에 쭈그리고 앉아 창틈으로 세어 들어오는 가는 빗줄기만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지 않습니까?"

 

길이 길지요? 긴 글은 블로그 포스팅에는 어울리지 않은 방식인 것도 같아 여러분께 미안하면서도... 진정 미안하면서도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문학적인 사유는 이것저것 검토하고 개념을 정확하게 살피는 과정이기에 간단한 표어나 지식의 갈무리 방식으로는 인문적 글쓰기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이드에 따르면, “인문주의적 저항은 조금 더 긴 형태로, 좀 더 긴 글로, 좀 더 오랜 숙고를 거쳐 나올 필요가 있다.” 

 

인문학의 독자 역시 실용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책을 대해야겠지요. 사유의 수고 없이 간편하게 지식 캡슐을 입에 털어넣는 식의 독서는 사실 인문학다운 방식은 아닙니다. 물론 인문학의 대중화를 위해 끊임없이 인문학이 문턱을 낮추고 쉽게 쓰여지고 최대한 간결해져야하겠지만 말이죠. 인문주의자는 인문학다움이 소멸되기 직전까지 글을 간결하고 쉽게 쓰고, 인문학 독자는 조금 수고스럽더라도 머리를 돌려가며 글을 읽어야겠지요. 편안한 지식 습득에서 사유로 전환되는 그 임계점까지만을 요구하는 겁니다.

 

내 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쓴 포스팅입니다. 제 책은 3부로 구성된 책인데 인문학의 개념와 범주 정의, 인문학다운 본질에 대한 탐구 그리고 베스트셀러 인문서들이 인문학적인지는 묻는 장으로 끝납니다.2015년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인데, 저는 이 책을 비판적으로 다뤘습니다. 제 고민의 핵심은 이렇습니다. '과연 나는 이 책의 독자들을 이해하고 있는가?' 사실 책의 마지막 장 "나의 비판은 합리적인가"에서 이 문제를 다루긴 했지만, '과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거듭 내게 묻는 중입니다.

 

이 책으로 독서토론회를 해야겠다 생각하곤 했는데... 이 글을 올렸으니 어렵게 된 건지도 모르겠군요. 의도적으로 보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정말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유익을 알고 싶은 마음입니다. 비평가로서 그 장점을 놓치고 싶지 않거든요. 이런 마음이니 독서토론을 해도 괜찮을 겁니다. 우선 인터넷 서점에서 독자리뷰를 모조리 읽어야겠습니다. 제 원고에서도 이 책의 장점을 나열해 놓기는 했지만 제가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 책은 총 21개 장인데, 한 두 개의 장이 나를 고민케 만들거라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이 깊어지긴 하네요. 어떤 분들에겐 제가 소심하거나 용기 없음으로 비춰지겠죠. 사실 그것은 저에 대한 온전한 이해는 아닐 겁니다. 저는 용기 있는 고민을 하는 중이거든요. 온전히 이해받지 못해도 슬프거나 서운하지 않습니다. 오해는 인생살이에서 피할 수 없고, 길가의 사람들만큼이나 세상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소중한 이로부터의 오해는 또 다르고요.) 중요한 것은 오해받고 있음을 알고도 입과 마음을 닫지 않고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태도입니다. 오해를 받고 있지 않다면, 아마 그것은 사실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가 당신에 대해 말을 안 하고 있거나 당신을 이해하는 척 하는 중일지도 모르죠. 

 

나는 계속 고민할 겁니다. 저도 고민할 때에는 괴롭고 게다가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제가 딱 고민했던 문제에 대해 물어왔을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놀랐습니다. 제가 어떤 결론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여러 가지 사례와 의견을 그에게 들려주고 있더라고요. '아! 이것이 고민의 힘이구나. 정작 고민하는 동안에는 모르지만, 오래 고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기 전과는 다른 인식에 다다르고 고민하기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게 되는구나.' 제게는 소중한 깨달음이었죠. 그리고 바랍니다. 고민하다가 어느 날, 제 원고 파일을 열었을 때 문득 글이 술술 풀려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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