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들

카잔 2016. 6. 22. 17:22

"모든 음은 연주가 끝나면 허공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그것을 잡을 수 없다." 재즈 뮤지션 디지 길레스피의 말이다. 지나고 나면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어디 재즈의 음 뿐이겠는가. 그러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모든 순간은 지나고 나면 허공으로 사라지고 다시는 그것을 붙잡을 수 없다." 이에 공감하는 나는 다음과 같이 다짐하고 싶다. '순간순간마다 오롯이 현재를 붙잡으며 살아야지! 과거를 붙잡을 수는 없으니까!'


<사진출처 : 해든 블로그>


* 거제 장승포항 인근에 소재한 <예이제게장백반>은 다시 가고 싶은 맛집이다. 2012년 머니투데이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는 등 언론에도 여러 차례 소개되었다. 식당 내에는 연예인, 정치인들의 싸인도 많다. (싸인을 볼 때마다 유명한 식당, 병원들은 마케팅에 능함을 새삼 느낀다.) 처음 갔을 때, 손님들이 많았고 음식도 맛났다. 친구들과 나는 몹시 만족했다. (어느 블로그를 검색하니, 내가 처음 갔을 때처럼 손님들이 많다.)


두번째로 갔을 때에는 평일 저녁이어서인지 한산했고, 맛은 평범했다. 식당에 들어서기 전, "맛있다"를 남발했던 나의 추천사는 무색해졌다. 무엇이 달라졌던 걸까. 확실한 것은 감탄하며 즐겼던 지난 식사는 '순간'이었고, 그 순간은 즉시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세번째로 방문했을 때 다시 맛나게 식사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때는 이미 첫번째, 두번째와는 다른 방문이 될 것이다. 내 나이도, 동행도, 기분도 모두 달라질 테니까.


* 와우들과 해남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땅끝마을탑비를 향해 가는 산책길을 걷노라면 남해 바다의 절경이 펼쳐진다. 우리는 물비늘이 반짝이는 환상적인 풍광에 잠시 걸음을 멈춰 한참을 쉬었다. 함께 바라보다가 서로 자리를 잡고 말없이 한동안 바라보았다. 명상에 잠기기도 했고, 바다의 손길에 머리를 내어놓기도 했으리라. 자리를 뜨면서 와우들에게 말했다. "이것도 잠깐일 걸! 기념탑 다녀올 때에는 태양의 위치가 바뀌어 물비늘이 없어질 지도 몰라." 땅끝바다는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앉았던 곳에 다시 들렀다. 태양은 서쪽으로 저만치 나아갔고, 반짝이는 물비늘도 없었다.


모든 순간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만다. 맛집은 다시 찾아가면 되고, 내일도 태양이 뜬다고 생각하며 위로하지 말자. 맛집을 다시 찾을 때면 분위기나 동행이 달라지고 심지어는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맛도, 동행도 똑같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연령이 달라진다. 재방문은 엄연히 다른 순간이라는 말이다. 내일도 태양이 떠오를 테지만, 오늘이 아닌 내일의 태양이다. 의심쩍으면 달력을 보라. 날짜가 달라졌을 테니까.


낭만주의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순간이 있다. 밤을 좋아하거나, 비오는 날을 좋아하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카페타임을 사랑한다. 그들이 일상으로부터의 도피자인 것만은 아니다. 시험을 잘 치르고 싶어하고, 가족들을 위한 식사 준비를 사랑하는 낭만주의자들도 많다. 낭만주의자는 종종 시간에 대한 이상적인 관점을 취한다. 그들은 중요한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지나치게 아쉬워한다. 이상이 높기 때문에 아쉬움도 크다.


순간을 붙잡으려는 그들의 노력 자체가 헛된 것은 아니다. 다만 순간을 붙잡는 수준이 다를 뿐이다. 평범한 감상주의자는 현재를 붙잡지 못한 아쉬움을 훗날을 기약함으로 달랜다. 이를 테면, 여행지에서 충분히 즐기지 못한 아쉬움을 "다음에 이곳에 다시 와야겠어"라는 결심으로 달래거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시원찮은 결과를 받았을 때 '다음에 잘하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서둘러 달랜다. '다음에 또 와야겠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여행자의 마음은 위로는 받는 대신 헤이해지고 만다. '다음에 잘하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쉬움을 떨칠 수 있지만, 시원찮은 결과를 반성할 기회는 놓친다.  


위대한 감상주의자만이 현실을 인식하고 자기를 기만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행지마다 '이곳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여행한다. 지나간 순간은 다시는 붙잡을 수 없음을 알고 현재에 몰입한다. 그들이 실제로 재방문을 꺼리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그들 또한 같은 여행지를 재방문하지만, 그것은 첫째 방문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첫째 방문 위에 덧칠해진 방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완전히 새로운 두 개의 경험을 갖는 것이다. 재방문이라는 현상은 같지만, 재방문을 시도한 목적이 다르다. 그들에게 두번째 방문은 '지난 순간의 붙잡음'이 아니라, '새로운 순간의 경험'이다. 


모든 현재를 붙잡아, 순간마다 새롭게 경험하기! 이것이 궁극의 자기경영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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