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해결을 위해 한번에 하나씩

카잔 2014. 10. 20. 11:26

 

1.

드디어 10월 20일이다. 며칠동안 이 날을 기다렸다. 더 이상 지난 한 달처럼 무의미하게 보내지 않기로 한 날, 어떻게든 예전처럼 활기찬 일상을 살기로 한 날, SSD와 함께 날아가버린 글쓰는 일상을 다시 되찾기로 한 날! 내일도, 모레도 그렇게 살려면 지금의 부정적 모멘텀을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 결정적 전환을 이루려는 날이 바로 10월 20일이다. 나의 목표는 오직 하나다.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것!

 

2.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다. 세상을 떠난 친구는 되돌아올 줄을 모르고, 돌연사한 SSD는 여전히 내게 허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아니 문제는 좀 더 심각해졌다. 좀처럼 완치되기 힘들다는 눈병을 앓게 되었으니까. 이 놈으로 인해 휴일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17시간 동안이나 누워 지냈다. 오늘 아침, 오랜만에 노트북을 열었더니, SSD 상실의 절망감이 나를 엄습했다. 고통은 여전하다.  

 

(* SSD는 '하드디스크를 대체하는 고속의 보조기억장치'다. 가격이 비싸다는 걸 제외하면 하드디스크보다 모든 점에서 우수하다. 훨씬 안전하다는 점이 매력적이나, 내 노트북의 SSD는 어느 날 갑자기 내 모든 자료를 안고서 세상을 떠났다. 떠난 곳이 지구상의 어딘가라면, 나는 당장 쫓아갈 테지만 광활한 우주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떠남'이 아닌 '소멸'이다.)

 

3.

한달동안 부단히도 나를 자책했다. 백업용 도시바 외장하드를 사서 노트북 폴더를 정리하던 중 사고가 일어났다. 백업보다 폴더 정리를 우선시한 나의 무모함이 부끄럽고 미웠다. 상실을 잊기 위해 TV를 봤고 쇼핑을 했고 거리를 쏘다녔다.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보려고 애썼지만, 나는 SSD 사고를 조금도 이겨내지 못했다. 겨우 사람들을 만났고, 가까스로 서너 번의 강연을 마쳤다. 그렇게 한달을 보냈다.

 

4.

"왜 이렇게 힘없이 걸어와?" 두 달 만에 만난 지인의 첫마디였다. 나더러 항상 힘차게 걷는다고 말하던 그였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강연할 때마다 겁이 났다. 역동성과는 거리가 먼 강연이 되진 않을까, 나도 모르게 염세적인 말을 하지는 않을까 염려혀며 강연을 했었다. 기우가 아니었다. 한달을 힘없이 살았다. 그저 무기력했을 뿐, 몸이 아픈 건 아니었다. 무기력을 남들도 쉬이 알아차릴 정도라니...   

 

5.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에만 힘쓸 것," 영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 나오는 문구다. 후회해봐야 정신 건강만 헤칠 뿐이고, 문제 발생 이전의 날들을 그리워하는 것 역시 부질없다. 아직은 '해결'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무엇을,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모르겠다. 우선 딱 하나만 붙잡자. 이번 주에는 각막염 치료에 최선을 다해 보자. 엉킨 내 삶을 풀기 위해 한번에 하나씩 노력해 보자.

 

 

* 10월 20일을 D day로 잡았을 때에만 해도 OO성 각막염 진단을 받기 전이었다. 인생은 나를 시험하기라도 하듯이 19일 하루종일 내 눈을 괴롭혔다. 20일 아침을 맞을 때에도 눈이 아팠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약해졌다. D day를 늦출까? 갈등은 잠시, 결정은 빨랐다. 온 몸이 아픈 게 아니니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았다. 블로그 포스팅, 와우카페 인사, 마음편지 발송, 충분한 휴식, 앞으로의 계획 수립 등등.

 

막상 노트북을 여니, 당장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번의 갈등 후에 포스팅을 완성하여 올린다. 이 글은 가장 올리기 힘든 포스팅 중 하나였다. 당분간은 작은 일 하나도 이런 식이 될 것이다. 약해지지 말고, 한번에 하나씩 헤쳐나가야겠다. 다행한 것은 하나를 하고 나니 다른 하나에 대한 에너지가 조금 생겨났다는 점이다. 엄살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고군분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