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현대미술, 정리정돈, 가방끈

카잔 2014. 9. 21. 17:09

 

1.

어제 포스팅한 <가을은 낭만의 계절>을 읽은 블로그 독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생기가 가득 전해져서 좋았단다. 친구와의 사별 이후 모처럼만에 기분 좋게 글을 쓴 것 같다고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정말 기분이 좋은 토요일 저녁이었고 7월 6일(친구의 사망일) 이후 최고의 기분이었던 것도 같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야 그럭저럭 슬픔을 잊지만 홀로 있을 때 느낀 오래만의 즐거움이었음을 인식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보다 더욱 민감하게 변화를 캐치해 준 그 독자에게 고마웠다.

 

2.

미술평론가 임근준의 현대미술을 다룬 책을 읽었다.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손톱만큼 생겨났고, 현대미술을 둘러싼 미예술적인 역학 관계에 대해서도 감을 잡았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그림 하나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저녁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떤 화지에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작업 기간을 얼마동안 해야 할지 등이 모두 결정되어 얼른 내일 날이 밝으면 화방에라도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를 자극한 이는 '로만 오팔카'라는 폴란드의 개념주의 예술가다. 올해 말이면 그림은 완성될 것이고, 작품은 내 작업실에 걸어둘 예정이다.

 

3.

주말 동안 작업실 정리정돈에 시간을 많이 썼다. 작업실 이전 후, 정신도 기력도 없었는데 이제는 정말 활력이 생겨나고 있나보다. 깔끔하게 정돈된 작업실과 깨끗한 책상을 바라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번 원고의 탈고가 끝나면 지난 주에 구입한 도시바 외장하드에 노트북 폴더 정리도 할 계획이다. 우연히 구입한 브랜드인데, 어제 TV를 보다가 성능 좋은 외장하드라고 소개되어 기분이 좋다. 살다보면 운이 좋은 날을 만난다. 그럴 때 감사할 줄 아는 이는 드물지만 나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4.

대학원에 다니는 J의 논문 작업을 도왔다. 대학원 논문 작성을 다섯번재 돕는 것 같은데, 이럴 때마다 내가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더불어 대학원 진학을 하는 이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는 사실도 거듭 확인한다. 학위가 필요한 사람, 인적 네트워크를 원하는 사람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 학위나 네트워크를 위해 대학원을 다니는 이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그들은 제언도, 가설도 심지어 주제 선정에서도 심하게 헤맨다. 공부하는 두 친구는 나중에 내게 검은색 표지의 책자를 건넸다. "부끄럽지만 읽어 주셔. 논문에 언급은 못했지만, 도와줘서 고마워." 

 

나는 가방끈이 짧다. (그래서 가방 욕심이 있는 건가? 집에 가방은 많다.) 대학교를 중퇴했지만 평생 공부할 생각이고, 실제로 항상 공부한다. 늘 무언가를 읽고, 매일 지식을 정리하거나 글을 쓴다. 대학원을 다녔더라면 대학 수업의 기회가 왔을까? 종종 궁금하다. 대학 수업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서다. J의 논문 작업을 도와주며 다시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언젠가 제도권에서 공부할 기회가 왔을 때 학위 때문에 차단당하는 일이 없도록 학사 학위는 받자는 생각으로 한양사이버대학교 경영학과를 다녔다. 내용이 너무 쉬워서 도중에 포기했다. 내가 이렇다. 학위를 위해 참을 줄을 모른다. J는 공부하는 사람은 아니다. 필요한 요령을 발휘하여 얼른 학위를 취득하기를 친구로서 응원한다.

 

5.

수첩 하나를 골랐다. 새로 산 게 아니라 집에 있는 여러 개의 수첩 중에 들고 다닐 녀석을 고른 것이다. 아주 오래된 수첩이다. 교보문고 강남점에서 친구에게, 글 열심히 쓰라는 격려와 함께 받은 선물이다. 지금까지는 인문수첩, 자기경영수첩, 유니컨 수업노트 등 여러 권으로 나눠썼지만 이제 한 권에다 통합해서 써 볼 생각이다. 분류해서 쓰는 것, 통합해서 쓰는 것 중 어느 쪽이 내게 더 효과적인지 가늠해 볼 요량인데, 늘 이렇게 더 나은 방식을 고심하는 건 나의 타고난 성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