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미안한 일이 많은 요즘이다

카잔 2014. 9. 11. 22:15

 

1.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다. 명절엔 고향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외할아버지 묘소에, 다른 하루는 엄마 묘소에 다녀왔다. 경찰공무원 시험에 낙방한 동생과 장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상경하는 날, 무리한 일정은 아닌데 눈병이 도졌다. 요즘 조금만 피곤하면 오른쪽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난다. 편안하게 살라는 인생의 속삭임일까? 아니면, 마음의 고단함을 알리는 몸의 신호일까? 참 고맙고 애정어린 인생이다. 이리도 살갑게 자기 주인을 챙기다니!

 

2.

오랜만에 핸드폰을 집에 두고 외출했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는 없었다. 핸드폰 없이 나왔음을 이내 알았지만,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 달 쯤은 핸드폰 없이 살아도 되는데...' 새로운 생활 방식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도, 잃어버린 집중력을 되찾을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도 긍정적인 일이 되리라. 다시 핸드폰 기피증이 도지려는 건가? 아닐 것이다. 머릿 속에서는 부재 중 전화의 주인공들에게 내일 아침 일찍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3.

미안한 일이 많은 요즘이다. 가족에게는 결혼 안 하는 내 삶이 눈물나게 미안하고, 떠나버린 친구에게는 우정을 못다한 것 같아 괴롭도록 미안하다. 눈물과 괴로움은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떠나기 전, 나는 방에서 눈물을 쏟았다. 친구에 대한 미안함 탓인지 내 마음이 반영됐을 법한 꿈을 꾸었다. 미안한 이들은 또 있다. 와우들에겐 몇달 째 리더 노릇을 못하고 있다. 미안함의 목록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가슴에 새기고 미안함을 덜어낼 행동을 해야겠다.

 

4.

할 일도 많다. 이삿짐을 정리한다고 박스를 모두 열어두었지, 사물함 정리한다고 내용물을 책상 위에다 쏟아 두었지, 방을 좀 꾸며 보겠다고 그림을 사다 두었지... 하나도 제대로 마무리 된 일은 없다. 원고 쓴다고 미뤄둔 이런저런 일도 해야 하고, 읽어야 할 책들도 여러 권이다. 가장 급한 책은 16일 마감해야 하는 원고에 필요한 『21세기 자본』이다. 9월 강연이나 독서토론을 위해 읽을 책도 최소한 세 권이다. 할 일이 많다는 건 생생히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리 믿으련다.

 

5.

"인문주의는 인간 존엄과 가치 그리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조다. ‘르네상스’라 불리는 14세기 중반부터 16세기에 유럽을 풍미한 시대정신이었다. 르네상스인들이 탐구한 것은 신에 맞설 만한 탁월한 인간성이 아니라 덧없고 죽음 앞에 무력한 인간성이었다. 다만 종교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인간, 인간다운 것을 자각하는 인간이었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가장 인간다운 것, 인간으로서 최고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이 인문주의자들의 정신이었다." 새 원고 중 일부다. 나의 꿈, 인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