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카잔 2014. 9. 26. 15:46

 

1.

어떤 예술은 생활의 고민뿐만 아니라 생존적 고통마저 이겨내도록 돕는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 말이다. 그러한 작품을 만나 치유 받고 싶어서 요즘 그림에 기웃거린다. 아름다운 가치나 비범한 철학은 생존을 돕는다. 내가 책장을 뒤적이는 이유도 위대한 사상을 만나기 위해서다. 지금 나는... 위.대.한. 것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2.

2014년 9월 26일 금요일 오후 1시 58분, 전화가 왔다. "의뢰하신 SSD는 복구가 불가능하네요." 그래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가요?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마음 편하실 거예요." 통화는 짧게 끝났다. 무엇이 편하다는 걸까? 희망 고문에 시달리지 말라는 뜻이라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희망을 걸었었나 보다. 통화가 끝나고 나니 기운이 빠졌다. 어떤 막강한 존재가 거대한 주사기를 내 허벅지에 찔러 넣어 온 몸의 에너지를 모조리 뽑아버린 것 같았다.

 

나는 늦은 점심을 ‘신이지앙’ 베이커리에서 빵으로 때우던 중이었다. 먹던 빵을 내려놓고 거리로 나왔다. 갈 곳은 없었다. 노트북만 있으면 카페로 가서 일할 텐데…. 오전 강연까지 있는 날이라 피곤했다. 아직 일정이 두 개나 남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이 일을 어쩌지, 이제 뭐하며 살지, 노트북을 팔아버릴까, 어딘가로 떠나버릴까, 참 힘겨운 올해구나 등 온갖 생각이 난리법석을 떨었다. 어떻게든 <인문주의를 권함>은 출간해야 한다, 고 다짐하기도 했다. 신천역 먹자골목을 이리저리 거닐다가 결국 ‘탐앤탐스’ 카페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 글을 쓴다. 나를 위로하려고.

 

3.

천국에 엄마가 계시지 않고 친구마저 없다면, 그곳은 내게 무슨 의미일까. 친구가 세상을 떠난 후, 줄곧 나를 따라다니며 혼란스럽게 만든 질문이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 삶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살아있다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러니 모든 걸 잃었다는 것은 내 느낌이지 사실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부단히 인지시킨 말이지만, 너무 많은 것을 상실했다는 사실은 인생살이를 겁나게 만들었다. 자아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린 이 느낌을 어찌 할까.

 

 

※ 이 글을 쓰고서 비공개 상태로 두었다가, 거의 두 달이 지나고서야 포스팅 합니다. 저는 한 달이 넘는 동안, 노트북을 열지 못했습니다. 5박 6일 와우그랜드투어를 떠날 때에도 노트북은 작업실에 두고 떠났지요. 자주 글을 끼적이는 제게는 낯선 일입니다. 카메라도 놓아두고 갔습니다. 노트북은 꼴도 보기 싫고 사진 찍기도 싫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한 일 중 작업실에서 영화 <군도>를 본 것이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멍하니 TV를 보거나, 거리를 쏘다니거나, 눈물을 흘렸습니다. 월요일 마음편지는 무려 7주 만에 보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는 일 외에는 허망하게 지냈습니다.

 

힘을 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지만... 절망감이 다짐을 뭉개버렸고, 몇 번이고 마음속에 새로운 계획을 세웠지만... 눈물이 그 계획을 지워버렸습니다. 이 포스팅을 어찌 맺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나는 지금 제가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창밖을 내다봅니다. 차들과 시내버스가 끊임없이 동교동 차도를 달립니다. 가로등 기둥에서 이름 모를 깃발이 펄럭입니다. 모든 차들이 멈춰 섰습니다. 신호 대기 중입니다. 저와 비슷해 보입니다. 지금 제 인생도 신호 대기 중일 테니까요. 어떠한 신호일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알게 될 날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