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짧은소설 긴여운

상업과비평사

카잔 2015. 6. 18. 12:11

 

[짧은 소설] 우신경은 국내 굴지의 문학상은 물론 해외 문학상까지 수상한 일급의 소설가다. 그녀의 대표작 문학을 부탁해15개 언어로 번역됐고 국내에서는 문단을 대표하는 출판사 상업과비평사에서 출간됐다. 찬란한 인생에 변고가 생겼다. 우신경의 소설에 표절이 의심되는 대목을 조목조목 밝힌 T의 글이 세상에 알려졌다. 표절 시비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문예지가 아닌 온라인 매체를 통해 발표된 글이라는 점과 대상이 문단의 대표 주자라는 점 탓인지 논란은 삽시간에 번졌다. 우신경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문제되는 작품을 모른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표절을 전면 부인했다. 상업과비평사도 우신경을 옹호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일상적 소재이고 작품을 좌우할 독창적 묘사도 아니고 비중도 크지 않다. 이를 근거로 한 표절 논란은 문제가 있다.” T는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믿고 기대한다며 표절 시비를 밝히고자 애쓴 자신의 글을 꼼꼼하게 읽어 주기를 당부했지만, 대다수 독자들은 글을 다시 읽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반응했다. 어떤 이는 누구를 믿고 어떻게 한국 문학을 읽겠냐고 했고 다른 이는 상업과비평사에 애정을 쏟았는데 실망과 슬픔이 크다고 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한국 문학의 종언 또는 쇠락을 외치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진실에 무감각한 작가와 상업 논리에 휘둘린 출판사 그리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대중들 속에서 표절이라는 창작의 동반자는 정체성과 방향성을 잃고 헤매었다. 헤매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혼탁한 와중에도 시대정신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려는 작가들의 위대한 분투는 멈추지 않았다. 소수의 독자들도 감정적으로 처신하는 대신 진실과 지혜를 쫓았다. ()

   

 

[사족]

 

1) 표절은 걸작에게 보내는 경의이자 일종의 찬사다. 피에르 바야르가 예상표절에서 한 말이다. 경의와 찬사를 보내는 아름다운 행위가 어찌하여 파렴치한 행위로 전락했을까. 욕심과 무감각 탓일까? 경의와 찬사의 자리에 앉고 싶은 욕심 그리고 그것을 손쉽게 얻고자 하는 조바심이 불러온 도덕적 무감각.

 

2) 메르스 사태의 교훈은 초기 대응의 중요성이다. 작가는 숙고했어야 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라는 말은 논쟁의 중심을 박살내는 언사였다. 진실이야말로 시비와 논란의 향방을 가르는 핵심이기에 때로는 상처를 받더라도 자신을 진실 앞에 세워야 한다. 출판사도 신중했어야 했다. 상업의 논리보다 중요한 것이 있기에.

 

3) 독자는 작가와 출판사를 버려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어떤 작가, 어떤 출판사도 완전할 수 없다. 무엇이든 결점이 있기 마련이라는 절대명제로 그들의 비도덕과 무감각을 비호하고자 함이 아니다. 사과 한쪽이 썩었다고 사과를 버리는 일로 확대하지 말자는 얘기다. 버리지 말고 공과를 가려 따져 잘 벼리어 내야 한다. 공적으로 과실을 덮지도 말고, 과실로 공적을 내치지도 않으면서.

 

4) 많이 썩어서 사과 하나를 버리더라도 과일 전체를 불신할 필요는 없다. 한국 문단의 종언을 논하는 것은 비약이다. 이 땅에는 표절이라고는 모른 채 예술정신 하나로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다. 문학 침체의 원인을 만연된 표절로만 환원하는 것도 비논리다. 표절은 문학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항상 표절이 있었지만, 문학은 꿋꿋이 발전해왔다. (발전이 없었다면) 최소한 다양하게 변모해왔다.

 

5) 독자는 수용의 지혜를 발휘하고, 작가는 창작의 윤리학을 엄수해야 한다. 썩으면 도려내면 된다는 명제는 독자 쪽 명제일 뿐, 작가는 작품에 비도덕이 스며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행여 실수를 범했다면, 정직하게 사과하고 단호하게 과오를 도려내야 한다. 성장은 종종 진실과의 직면 그리고 개혁의 단행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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