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리버럴 아츠

하버드를 넘어선 교양수업

카잔 2015. 12. 28. 09:46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2015년 최고대학순위에서 예일과 하버드는 나란히 5, 6위를 차지했습니다. 1, 2위에 오른 학교는 낯설게 느껴지실 겁니다. 1위는 포모나 칼리지(Pomona College), 2위는 윌리엄스 칼리지(Williams College)인데 두 대학 모두 종합대학(University)이 아닌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s College)입니다.

 

존 듀이는 『민주주의와 교육』이라는 책에서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하고 영위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육이 어떻게 자유롭고 가치 있는 삶을 이끄는지 보여주는 역저입니다. 교육과 삶의 관계를 존 듀이가 가장 먼저 파악한 것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폭넓은 교육이 필요함을 인식했으니까요. 소크라테스의 후예는 철학적 진리를 추구했고, 이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은 실용적인 기술을 중시했습니다.

 

수세기 후, 고대 로마인들이 자유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Liberal Education이라 불렀습니다. 우리말로는 ‘자유교육’이 되겠습니다. 라틴어 본뜻으로는 ‘자유인의, 자유인에 관련된 교육’이 되는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는 수많은 노예가 있었음을 감안하면 왜 자유교육이라 불렀는지 가늠하게 됩니다. 법적으로 노예제도가 금지된 현대에서는 Liberal Education을 ‘교양교육’이라 부르고 있고요.

 

리버럴 아츠(자유과목 또는 교양과목)란, 문자 그대로 교양교육을 위한 교과목입니다. 흔히 인문학으로 번역되는데, 인문학과 리버럴 아츠는 차이가 있습니다. 교양교육의 전통은 실용성과 이론 모두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교양교육의 중심에는 인문학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이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은 리버럴 아츠와 테크놀로지의 교차점에 있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인문학과 기술의 교차점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리버럴 아츠의 본뜻을 가장 살리는 번역어는 ‘기초학문’입니다.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이란 당대의 필수적인 기초학문을 폭넓게 공부하는 것입니다. 교양교육의 전통을 계승한 20세기의 주역 중 한 명인 모티머 애들러는 교양교육의 본질을 두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하나는 생각하고 학습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교과들을 공부하며 지혜와 지식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19세기에 활동한 영국의 뉴먼 추기경은 ‘지식의 위대한 뼈대를 파악하기 위해’ 교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015년 교양교육을 옹호하는 책을 펴낸 파리드 자카리아는 19세기 교양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예일보고서를 소개합니다. 예일보고서에 따르면, 교양교육의 본질은 “어떤 직업 하나에 특별히 관련된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떤 직업에나 공통된 기초를 놓는 것”입니다. 직업을 위한 기능 교육과 연구 중심으로만 대학교육을 구성하고 있다면 위대한 교양교육의 전통을 빗겨가는 셈이 됩니다.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투지가 넘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소심하고 길을 잃고 지적 호기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목표의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만,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공부의 배신』 10쪽에 나오는 말입니다. 책의 부제는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입니다.

 

리버럴 아츠 칼리지는 대학원 과정이 없습니다. 전문 지식을 쌓기에 앞서 기초학문에 대한 전반적 소양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대학이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는 리버럴 아츠 칼리지가 20세기 내내 파편화된 지식을 추구해 온 고등 교육 시스템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1년 싱가포르 최고의 국립대학 NUS는 예일대학교와 연합하여 예일-NUS 리버럴 아츠 칼리지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도 서둘러야겠습니다.

 

21세기 교양교육의 커리큘럼부터 새롭게 확립해야겠지요. 시대마다 기초학문의 구성은 조금씩 달라져왔습니다. 고대와 중세에는 자유칠과(Seven Liberal Arts)가 있었습니다. 자유칠과는 두 부문으로 분할되어 문법, 논리, 수사학이 먼저 가르쳐졌고, 산술, 기하, 음악, 천문이 나중에 가르쳐졌고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자유교과(Several Liberal Arts)는 무엇일까요? 과목이 여섯 개든 일곱 개든, 가치 있고 자유로운 삶을 위한 공부라면 나는 마다하지 않을 겁니다.(연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