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나, 다시 돌아갈래!

카잔 2016. 5. 23. 13:07

플라잉 요가 강사가 TV에 나와 만성피로를 풀어주는 동작 서너 가지를 알려주었다. 어깨와 목에 통증을 자주 느끼는 터라 유심히 보았다. 서른 살 전후로 보이는 여성 강사가 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자세를 선보였다. 카메라가 그녀의 전신 모습을 잡았다. 발뒤꿈치의 굳은살과 발바닥의 못박힘(길게 패인 굳은살)이 내 눈에 들어왔다.


‘몸매는 관리해도 발 관리에는 관심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 내 머릿속엔 태아의 발 이미지가 떠올랐다. 한 살, 두 살 배기 아가들의 발은 내게 하나의 '경이'다. ‘나도 어릴 적에는 굳은살 하나 없이 저리도 매끄러웠겠지. 누구나 어렸을 적에는 마찬가지였을 테고.’ 내게 아가의 발은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수'의 상징이다.

 

살면서 아가들의 발이 떠오를 때가 있다. 길을 걷다가 비만형에 속할 법한 중, 고등학생들을 본다. ‘저 아이들도 십 수 년 전에는 다른 모습이겠지?’ 십대만 되어도 어린 시절의 모습을 잃어간다는 사실에 인생살이의 실존을 느낀다. 노화는 25살 전후로 시작된다고 하지만, 그 이전에도 아가의 매끄러운 발과 정상적인 몸무게로부터는 조금씩 멀어져간다.


"우리는 다소 늦은 시점에야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살아야겠다! 내 인생은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야!’ 라며 한 발을 디뎌보려고 하는 순간, 생각보다 스스로를 제약하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 뇌리를 스친다. 내가 처한 환경, 주위 사람들, 지금껏 내가 해온 일들, 내가 속한 사회, 어떤 조직 등등. 갓난아기처럼 모든 걸 새롭게 하나씩 시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다."


쉬운 에세이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미국 작가 앤 라모트의 말이다. (앤은 ‘처음으로’라는 단어를 덧붙였지만) 나는 종종 앤과 같은 생각을 한다. 더 잘 살고 싶을 때, 후회스러운 행동을 했을 때, 친구나 엄마가 그리울 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고 싶지만,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새 술’과 ‘헌 부대’다. 내면에서 신선한 와인을 제조해도, 허접한 병에 담아야 한다. 그것이 삶이다.


삶을 바꾸고 싶은 이들이 첫 번째로 넘어서야 하는 장애물은 ‘새로운 결심’에 전혀 걸맞지 않은 ‘진부하고 시시한 환경’에 실망하지 않은 일이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머리숱은 조금씩 더 휑해질 테고, 자신감은 점점 사라져 자격지심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은 결심과 열정 뿐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마저 희미해질 지도.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면, 가장 개선하기 어려운 점보다는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낫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작은 개선'은 우리에게 성취감과 에너지를 안겨다준다.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자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키우자는 말이다. 마라톤도 100m부터 달려야 한다.


요즘 영화 <박하사탕>이 자주 떠오른다. 주인공 영호는 순수했던 영혼이었다. 삶은 그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도 사랑도 점진적으로 그르치거나 엇나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호는 절규하며 달려오는 열차를 맞는다. “나 다시 돌아갈래!” 나 스스로 고통을 키웠을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다. 삶을 제대로 담아낸 영화는 훌륭하지만, 현실에서의 삶은 이따금씩 너무 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