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그리움이 짙어지는 날

카잔 2016. 4. 13. 17:56

4월은 그리움이 짙어지는 달이다. 밤에 감상하는 벚꽃은 영락없이 선생님을 떠올리게 한다. 2013년 4월 15일,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밤, 벚꽃나무를 만났다. 봄바람이 불었고 벚꽃잎이 흩날렸다. '언젠가 내 인생의 꽃도 선생님처럼, 저 벚꽃처럼 떨어지는 날이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그날 밤의 인상이 선명하다. 1992년 4월, 청명했던 하늘 아래에서 어미를 잃고 울부짖었던 열다섯짜리 중학생의 기억이 희미해진 것과 대조적이다.


4월을 조금은 쓸쓸하게 보내게 된다. 얼마간은 가슴 아리게 보내기도 한다. 어찌할 수 없는 내 인생이다. 두 분과 관계 없는 별개의 작은 슬픔이 선생님이나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질 때도 있다. (4월에만 유독 그런 걸까? 모르겠다.) 선생님 사진 폴더를 열어 클릭했다. 연구원들과 함께 크로아티아를 다녀온 해가 2009년임에 놀란다. 벌써 7년이나 지났구나! 직접 찍은 선생님 사진 중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랐다. 내게는 '나는 자유다'라고 말씀하시는 듯 포즈다.


2009년, 크로아티아 스플릿에서.


요즘 자주 선생님의 책을 읽는다. 전작을 읽으며 선생님의 모습을 요모저모로 추억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여태 그런 시간을 내지 못했다. 자주 손에 드는 책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과 『낯선 곳에서의 아침』이다. "선생님의 책은 완독하기가 힘들다. 한 문단만 읽어도 책을 덮어 생각하게 되고 하루를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서의 아침』 203쪽에 적힌 메모다. 과연 나는 선생님의 책 몇 페이지만 읽어도 가슴이 뛴다. 영감을 얻는다. 내겐 영원한 스승이다.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쥐고 있는 개인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졌다는 것은 변명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의 변화에 관대한 이유는 자신과 싸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적당한 휴전과 휴식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 구본형, 『낯선 곳에서의 아침』, p.203


지난 주 토요일은 추모제가 열렸다. 봉안당의 선생님 사진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오후 늦게 방문했더니 '부활의 집'에 아무도 없다. 선생님께 기도를 올리고, 한참을 쪼그려 앉아 선생님의 흔적이 깃든 곳을 쳐다봤다. 마음 속에 선생님의 음성이 들리거나 삶을 향한 결심이 떠오르는 등의 드라마는 펼쳐지지 않았다. 실내는 조용했고 나는 멍했다. 선생님 책을 읽고 싶었지만 빈 손이었다. 뵙고 싶어서 왔지만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이 나를 감싸돌았다.

 

 

3년 전 오늘(4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다가 선생님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3일 동안, 선생님의 잠드신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영면에 든 선생님의 얼굴은 근엄했다. 이튿날 화장과 분쇄가 진행되는 과정도 보았다. 어제는 '사람'이었는데, 몇 분 전에는 '유골'이었다가 눈 앞에 보이는 것은 하얀 '가루'였다. 현실감을 느낄 수 없었던 장면이었다. 사람이 뼈로 남고 재로 변하는 과정, 나는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심오한 통찰이나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저 내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대한 언어 표현일 뿐! 

절망이나 비관 또한 아니었다. 명랑함이 줄긴 했어도 나는 여전히 삶을 예찬한다.


덧. 선생님이 떠나신 이듬해, 가장 소중한 친구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임종을 지키고 난 이후, 나는 오랫동안 삶의 의미와 기쁨을 잃은 채로 살았다. 아직 두 분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내 삶을 바라보며, 이것은 탁월한 자기여행자의 모습이 아니라는 생각에 젖는다. 흠뻑 젖기 전에 삶을 추스려야겠다. 외부 세계가 아닌, 가장 깊은 나의 내면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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