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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을 전염시켜 준 선생님

카잔 2010. 8. 5. 10:49

강연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카페 데 베르에 온다.
7시 30분에서 8시 30분 사이에 도착하여 오전을 이곳에서 보낸다.
3년 8개월째 이곳에 출근했으니 나에게 이 곳은 사무실인 셈이다.

얼마 전부터 이곳에 매일 출근하는 이가 생겼다. 두 달 정도 되었으려나.
8시 30분 경에 나타나는 그녀는 대상 웰라이프 판매사원이다.
들고 다니는 가방이나 끌고 다니는 손수레에 적혀 있는 바에 의한 것이니 맞으리라.

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카페 데 베르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카페 데 베르 바깥 적당한 곳에 손수레를 놓아두고 가방만을 들고
한 시간 정도 근처의 빌딩에 녹즙이나 카모렐라를 배달하는 듯 하다.

손수레는 놓이는 곳은 내가 매일 앉는 자리에서 불과 1m 떨어진 곳이다.
그녀와 나는 통유리를 사이에 둔 채, 매일 30초 정도 만나는 게다.
젊은 그녀가 대견한 것은 그녀에게서 삶의 열심을 보기 때문이다.
 
눈 한 번 마주친 적 없지만, 나는 그녀의 걸음걸이에서 삶의 열심을 본다.
멀리 사라지는 그녀의 손에는 손수레 손잡이가 있고,
그녀의 가슴에는 삶의 열정과 자신만의 꿈이 있으리라.

내가 숫기가 있었더라면, 친구 하자고 말이라도 걸었을 텐데...
그러지는 못한다. 다만, 마음 속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그녀가 다녀 간 다음에는 잠시나마 나도 더욱 열심히 일하기에.

어제는 『토익달인 정상의 영어공부법』이라는 책을 조금 읽었다.
영어에 관한 내용이지만, 그의 삶에 대한 열심과 강사로서의 전문성에 관심이 갔다.
책을 쓴 '정상' 씨는 영어에 대한 열정과 성실이 과연 '정상'급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지독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어에 매달렸단다.
자신의 책에 이렇게 썼다. "난 정말 죽어라 영어공부를 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에게 이런 적이 있던가? 죽어라고 열심을 냈던...'

2005년, B2B 팀원이 되어 기업 영업을 할 때가 떠올랐다.
그 때는 회사, 집, 교회 만이 내 삶이었다. 주일에도 예배 후 회사에 가서 일했다.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고, 삶의 90%는 회사에서 일했다. 참 열심히 일한 순간이었다.

열심을 내었던 순간이 떠오른 것은 다행이지만,
아쉬운 것은 더 이상 다른 장면이 떠오르지는 않는다는 게다.
죽어라 열심을 내었던 순간은 2005년~2006년의 회사생활이 전부였다.

'죽어라' 영어공부를 한 결과, '토익강사 정상'은 토익 강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강사가 되었다.
2010년 상반기 현재, 총 46회 토익 만점에다 두번의 11회 연속 토익 만점이라니!
국내 최단기 최다 토익만점 강사라는 타이틀이 그의 이름을 빛나게 한다.

글을 쓰는 지금 막, 카페 창문 너머로 할머니 한 분이 보인다.
편안한 옷차림에 미끄럼 방지용 녹색 고무칠을 해 둔 장갑을 낀 청소 아주머니시다.
오십 대 중후반은 되어 보이시는 아주머니를 잠시 동안 바라본다.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다. 참 열심히, 참 꼼꼼히 쓰레기통을 닦아 내신다.
눈물이 날 뻔할 정도로 (사실, 이렇게 자주 감동하긴 하지만)
열심을 내시는 아주머니께 얼른 오렌지 주스를 하나 사다 드렸다.

이것은 동정이 아니라, 고마움인데 어떻게 전해 드릴 수 있을까?
를 고민하다가 마지막 쓰레기통 청소를 마치고 가시는 아주머니께 다소 황급히 건네드렸다.
음료를 건네며 전해 드린 말은 "고마워서요." 정도가 고작이었다.

실수도 했다. 내내 우리 할머니를 생각하느라
첫마디를 "할머니 이것 하나 드시지요."라고 건넨 것이다.
어머니 뻘인데, 그렇게 말한 것이 돌아와 글을 쓰는 지금에도 마음에 걸린다.

20대 여성 판매사원도, 걸출한 토익 강사도, 50대 청소부 아주머니도
오늘의 내게 감동적인 교훈을 주는 인생의 선생님이시다.
그들은 말이 아닌 삶으로 내게 열심을 전염시켜 주었다.
 

열심은 아름다운 것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보는 이를 전율케 한다.


그들이 가르쳐 준 교훈이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세 분께 인사를 전한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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