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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나들이로 챙긴 문장들

카잔 2011. 11. 16. 09:09

이외수 ①
때로는 목탁 잘 치는 스님보다 뻥 잘 치는 스님이 더 법력이 있어 보입니다. 고수의 눈에는 하수가 보이는 법이지만, 하수의 눈에는 고수가 보이지 않는 법이지요. 기러기 떼지어 날아간 초겨울 하늘, 빈혈을 앓으며 떠 있는 낮달 하나.

이외수 ②
남을 위해 콩 반쪽 나누어 먹는 일도 꺼리던 사람들이 기부나 봉사에 앞장서시는 분들을 씹는 모습은 정말 비열하고 추해 보입니다. 그런 분들께는 철 지난 유행어 한 마디를 헌사해 드리고 싶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님 좀 썅인 듯.

해학과 통찰이 넘치는 이외수 선생의 말씀. 거듭 생각해도 님은 정말 짱인 듯. 나는 이외수 선생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쓰고 나니 자랑처럼 느껴지지만, 자책이다. 나를 괴롭히는 자책은 아니다. 나의 현실을 직면한 깨달음에 가까운 성찰이다. 꾸준하게 게으른 나의 독서생활에 칼을 들이대야 한다. 이외수 선생의 말만 빌려 올 게 아니라, 자신에게 너무나도 치열한 그의 정신을 닮기 위해.

이외수 ③
하루살이에게는 내일을 말하지 않는 편이 이롭고, 잠자리에게는 내년을 말하지 않는 편이 이롭습니다. 각자 체험의 범주가 달라서 이해의 범주 또한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그대의 진실은 그대에 대한 불신만을 조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삶은 해석을 돕는다. 예전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책들이 지금에 와서 이해되는 까닭은 책의 내용이 자기 체험의 범주 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좋은 삶이 탁월한 해석을 낳는다. 자기 체험의 범주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김탁환 ①
책을 읽자마자 이 책 때문에 삶이 바뀌었다는 소리도 나는 믿지 않는다. 책이 삶 속에 스며들어 익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훗날 그 책이 삶을 바꾸는 첫 걸음이 되었다고 회상할 수는 있겠지만, 책 목록을 미리 제시하며 삶이 바뀐다고 떠들면, 역겹다.

학습은 배우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단어다. 배우고(學) 익혀야(習) 학습이 된다. 피터 센게는 학습을 명쾌하게 정의했다. 학습은 생각과 행동을 통합시키는 과정이라고. 이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배움(學)이 변화의 시작을 돕긴 하지만, 익힘(習)이 있어야 변화가 완성된다. 생각과 행동의 조화를 뜻하는 단어가 학습이니, 한자어 하나가 나를 감동시킨다.

김탁환 ②
나는 고전을 하루에 한 권 혹은 일주일에 한 권 씩 독파하는 독서법이 싫다. 작년 한 해 <논어>를 읽었다. 읽고 나서 1년으론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논어>만 그럴까. <장자>도 <자본론>도 <열하일기>도 며칠만에 해치울 책이 아니다.

머물러야 깊이가 생긴다. 드나듦이 빈번하면 깊어질 새가 없다. 온돌 방문을 자주 여닫으면 온기가 빠져나가듯, 머물지 않고 드나들면 깊이가 찾아들 수 없다. 고전은 깊이와 넓이를 담은 책이다. 천천히 사색하며 읽는 것이 최선의 독법이지 싶다. 그렇게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 고전을 읽고 싶다. 또 병이 도졌다. 시간적 여유도 없으면서 책장 기웃거리며 읽을 책 골라보기. 이 때 나는 탐욕스러운 욕심쟁이가 된다. 책상 위에 책이 쌓였다.

『실용주의』, 『에티카』, 『세계철학사』, 『선악의 저편』,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일상의 분주함에 밀려 머지않아 다시 책장 속으로 제자리를 찾아가겠지만, 독서 특히 고전읽기는 분명 나의 욕망에 맞닿아 있다. 잠시 제쳐두는 것은 자기관리의 미숙함으로 빚어진 아쉬움이지만, 영원히 밀쳐내 두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쉬움이 절절한 후회로 변할 테니까.

김탁환 ③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은 물론 좋다. 그런데 너무 많은 책을 너무 빨리 읽히고 독후감을 쓰게 한다. 기억의 속도보다 망각의 속도가 더 빠를 정도로, 천천히 느리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고전도 있음을 어릴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아이에게 고전 목록을 안기는 독서 전문가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나는 불만이 많다. 책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혹은 그들의 사고력과 문장력을 살펴보고 나면, 그들이 진득하게 고전을 읽기나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먼저 천천히 읽기를 가르치고 나서야 고전 읽기를 강요하는 일이 효과를 거둘 것이다. 

단상을 적고 나니 고민이 생겼다. 대가의 문장 옆에 갖다 대니 내 글이 모두 사족이 된 것이다. 그들 사유의 결을 그대로 따라 썼으니 참신하고픈 욕심은 애초부터 없었다. 지워 버리려니 들인 시간이 아까워 그냥 올려 버린다. 역시 대가들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마음에 안 드는 도자기를 구운 것이 아까워 버리지 못하면 최고 수준의 장인이 될 수 없듯이, 쓴 문장이 아까워 가려내지 못하면 좋은 글을 뽑아낼 수 없다. 그래도 글을 올리고 있으니, 참 게으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리더십/ 자기경영전문가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컨설트 ceo@younic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