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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식당, 생각 & 와인일지

카잔 2013. 9. 15. 21:55


1.

대도식당. 한우 암소 등심으로 유명한 식당. 왕실의 주방 상궁으로부터 요리 솜씨를 전수 받은 창업주. 1964년 개점 이래, 현재까지도 여전히 맛집으로 명성을 떨치는 식당. 의정부 육교식당, 남양주 용마가든과 함께 대한민국 3대 한우 전문점으로 불리는 집. 최근 주인이 바뀐 아픔이 있지만 여전히 성황(?) 리에 운영 중인, 스토리가 있는 맛집.


좋은 분이 좋은 식당으로 초대해 주셨다. 치과 의사인 그는, 나의 어금니가 없다는 말씀을 들으시더니 치과 진료를 받으러 오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나 역시 여러 번 알겠다고 말씀드렸고, 여러 번 미뤄왔다. 아직 치과에는 가지 않았지만, 만나는 데에는 부담이 없다. 그는 여러 번 말하면 잔소리가 된다는 걸 알고 계셨다.

 

(그가 잔소리가 없는 아버지요, 남편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건 나로서는 모를 일이다. 세상의 남자들은 대개 안과 밖에서의 처사가 다르다. 표리부동하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가족을 더 아끼고 사랑한다는 말이다. 아쉬운 것은 사랑이 항상 현명한 방식으로 발휘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분, 내게는 '신사'라는 점이다.)

 

등심구이는 아주 맛났다. 고기를 직접 구워주셔서 편하게 먹기도 했다. 그는 고기 굽는 일을 즐겼다. 그래서 아랫사람이면서도 나는 편안하게 받아 먹었다. 항상 챙겨받는 일에 익숙한 이들은 아랫사람이든 윗사람이든 편히 받아 먹지만, 나는 그런 편이 못 된다. 그러한 내가 편안했다는 사실은 그는 고기 구워서 대접하는 일을 기쁘게 여기실 것이다.

 

귀찮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즐기신다. 내가 생각하기에, 고기 굽는 일을 손수 하시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들보다 본인이 더 잘 구우시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실패작을 바라보는 일에는 인내가 필요하시리라. 위임을 하지 못하는 가장 주요한 원인인데, 그 분은 나의 이런 단상도 아실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고기는 지글지글 잘도 구워졌다. 불판의 고기를 낼름 챙겨오는 손이 민망하여 천천히 먹고 있는데... 그 분은 고기가 타기 전에 얼른 건져서 나의 접시 위에다 올려주신다. 손길은 끊임없다. 고마움을 느꼈다. 헤어지는 길에, "추석 지나고 와인" 하신다. 내가 와인 사 들고 한 번 가겠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이르신 것이다.

 

사실 들고 갈 와인은 진작에 사 두었다. 하지만 언제 방문해야 할지를 몰라 한 달 가까이 연락 드리지 못하고 그냥 지내왔다. 으이그... 이런 소심함! 소심함의 절반은 상대방을 향한 배려다. 그가 어떠할지 혼자 고민하고 배려하느라 실행이 조심스러워지고 조심스러움이 실행을 미루는 것이다. 해결책은 '혼자 고민'이 아니라, '확인하고 고민'함이 필요하다.

 

소심함의 나머지 절반은 자기중심성이다. 내 것만을 챙기는 이기심을 말함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자기중심성은, '자기 욕심'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가까운 개념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라는 생각에 매여있는 상태 말이다. 나는 이것을 자기중심성이라 부른다. 나의 소심삼은 배려 80%, 자기중심성 20% 정도가 아닐까 싶다.  

 

2.

"오빠는 생각이 너무 많아." 연구원 후배가 내게 여러 번 했던 말이다. 그녀는 행동이 앞선다. 그러니 그녀가 보기에만 그런 것 아니냐고 반문하곤 했다. 하지만 요즘엔 내가 생각이 많다는 생각도 든다. 방금 문장에 '생각'이란 단어가 두 번 들어갔듯이, 나는 무얼 하든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깊지는 않을지라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

 

문제가 남는다. '생각'이란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의 범위가 너무 넓다는 점이다. 옮고 그름이나 논증을 밝혀가는 논리적인 사색(논리)도 생각이고,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헤아리는 것(감수성)도 생각이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계획)도 생각이고, 멍하게 자조감(망상)에 빠져 있는 것도 생각이다. 그러니 물어야 한다.

 

'나는 생각을 무엇이라 여기는가?'

 

누군가가 내게 생각이 많다고 할 때, 네 가지 생각 중에 무엇인지를 알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스스로 자기 생각의 정체를 밝혀야 한다. 나는 생각을 '논리'라 여긴다. 묻고 따지고 생각의 얼개를 만들어가는 철학적 사유 말이다. 그런 재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학자들의 수준에 비할 바는 전혀 못 된다. 내가 "생각 별로 안 하는데"라고 대답해 온 까닭이다.

 

논리, 감수성, 계획, 망상 중에 내 생각의 비중은 '감수성'이다. 어불성설이겠지만, 비율로 표현하자면 감수성 50%, 논리 40%, 계획 10% 정도가 아닐까? 나를 아는 분이라도 수치를 기억하여 나를 만나 확인해 보지 마시라. 그저 생각없이 대충 적은 것이니까. 나는 지금 생각없이 사는 연습 중이다. 등심을 먹으면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생각이 너무 많았다.

 

"변화는 곧 실천이다. 실천을 막는 가장 큰 장애는 생각이 많은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으면 실천이 더디고 한번 실천했다 하더라도 끝까지 가지 못한다. 의심하기 때문이다." 구본형 선생님의 말이다. 나는 왜 생각이 많을까, 라고 묻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얼른 다른 주제로 넘어가는 수 밖에, 아니 실행을 시작하는 수 밖에 없다.

 

3.

와인일지를 시작한지 보름이 지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와인 한 두 잔을 마셨고 마실 때마다 무언가를 끼적였다. 요즘엔 독서보다 열심이다. 독서는 하루를 빠졌고 독서후 활동(사색이나 실천)에도 게을렀다. 와인일지일지라고 해 봐야, 사실 별 것은 없다. 테이스팅을 표현할 미각은 형편없고, 언어도 빈약하니까. 고작 이런 식이다.

 

부르고뉴 꼬뜨샬로네즈 부르고뉴 85 섬세하고 풍부하다는 설명이 맞다. 꽃향기도 난다. 향이 맑고 경쾌.

 

원래의 일지에는 생산자와 품종을 적는 칸도 있지만, 블로그 너비에 맞추어 잘라냈다. 부르고뉴는 보르도와 함께 프랑스의 2대 생산지다. 이에 걸맞는 유명한 생산지는 많지만, 와인을 조금만 알아도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가장 먼저 접하게 된다. 그러니 와인에 관심 없더라도 보르도와 부르고뉴만이라도 기억해 두는 건 나쁘지 않다.

 

보르도는 주로 블렌딩을 하여, 그리고 부르고뉴는 주로 단일 품종으로 와인을 만든다. 부르고뉴의 레드와인은 모두 피노누아다. 그러니 부르고뉴 와인병에는 품종 표시가 없다. 화이트면 샤르도네, 레드면 피노 누아니까. 나는 부르고뉴를 알기 전부터 피노 누아를 가장 좋아했다. <바롱 필립 피노 누아>라는 와인을 마시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그렇다.

 

보름 동안 맛보았던 것중 가장 맛난 와인은 <부르고뉴 꼬뜨 샬로네즈>다. 가장 맛난다고 하지만 향과 맛에 대한 표현은 앞서 말한 정도에 불과하다. 피노 누아 100%로 3만~4만원 가격인 테이블 와인이다. 최고의 와인은 좋은 사람과 함께 즐겁게 마시는 와인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부르고뉴 꼬뜨 샬로네즈>를 과대평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