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조르바의 인물산책

조르바의 고종석 산책

카잔 2013. 11. 13. 12:00

 

 

조르바의 고종석 산책

- 고종석의 <말들의 풍경>을 읽고

 

어제 오늘, 고종석 선생의 책을 읽었어.

밑줄을 그어가며, 심중에 새겨가면서.

 

오늘은 한 권의 책을 리뷰하기보단 고종석에 대한 두서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어디에선가 한두 번은 이야기했을 테지만, 그는 내 글쓰기의 롤 모델이야.

고종석은 문장가이자 저널리스트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로서

그 모든 글쓰기 장르에서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어.

공만 던져 주면 농구, 축구, 당구, 야구 등 모든 구기운동을 잘하는 운동선수처럼

펜대만 쥐어 주면 에세이, 기사, 칼럼 심지어 소설까지 능히 써내는 프로 글쟁이.

 

아! 아직 그의 소설은 읽지는 못했으니 소설가로서의 역량을 체험하진 못했네.

그의 소설이 문학계의 명문이라 할 만한 창비, 문지, 문학동네 중 문학동네와 문지에서

그리고 출판계의 대기업 민음사에서 출간한 걸 보며 짐작할 수 밖에.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말야.

(내가 한국 문학 출판사의 기형적인 권력에 눈감고 있는 건 아니야.

여기선 그저 그네들의 책이 빛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 뿐이고.)

 

보자, 내가 고종석의 전작(全作)을 읽기로 마음 먹은 게 언제더라.

그의 이름을 알고 그의 책을 접한 것은 10년 남짓 된 것 같아.

치기 어린 도전으로 강준만, 진중권, 김규항과 같은 지성을 쌓겠다고 설치던 시절이었어.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줄기차지 못해 1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이 꼴이 돼 있네.

득도 있지. 세월이 흐르면서 내가 쫓던 이들의 허와 실을 구분해 내게 되고

내 안에 감식안이 생기면서 내가 사표로 삼을 분들을 분별하게 되었으니까. 

 

강준만은 등대야. 사회과학 공부 여정에 여전히 소중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 주셔.

김규항은 추억이야. 추억은 기억보다 아름다워. 내 젊은 시절의 소중한 공부 추억.

진중권은 장미 혹은 가자미야. 매혹적인데 종종 가시가 있어서 잘 발라 먹어야 해.

고종석은 달리 비유할 게 없어. 그저 나의 사표야. 내 글쓰기의 모델.

제2의 고종석, 뭐 이런 평가를 들을 만큼 내가 좋은 글을 쓰기를 바랄 뿐.

 

좋은 글이라 평가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이는 좋은 문장으로 쓰인 글을, 어떤 이는 좋은 생각을 담은 글을 첫째로 치지.

각각 형식주의와 (어색한 표현이지만) 내용주의라고 부를 수 있고.

영화 용어로 말하자면, 형식주의와 사실주의라는 말이 되겠지. 

나? 나는 욕심쟁이야. 내용과 형식을 모두 취하고 싶거든.

 

깊은 생각과 훌륭한 논리 그리고 따뜻한 감성으로 울림이 있는 내용을 담고 싶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써서 글 자체로도 심미적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싶어.

요컨대, 훌륭한 사유의 주인인 동시에 문장가가 되고 싶다는 말인데,

가상이지만, 고종석 선생이 내 글들을 읽는다면 이리 말하겠지.

 

"조르바는 자신의 바람을 이루는 일에 성공했는가?

매번 그 일에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서는 성공한 글들과 실패한 글들을 가려내어 평하시겠지.

고종석은 누군가를 평할 때, 자신의 가치로 재단하지 않아.

극단을 혐오하고 균형을 추구하는 멋진 모습이라고 생각해.

자신의 가치를 거뒀으니 다른 평가의 기준이 필요하겠지.

고종석은 매우 객관적이고 훌륭한 잣대를 가져오지.

그 사람이 말이나 글에서 추구하겠다고 천명해 온 가치와 바람을.

그리고선 자기 기준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잣대로 그를 평가하곤 해. 내가 보기엔 그래.

 

아닐 수도 있어.

과연 고종석이 그러한가를 꼼꼼히 살피지 않고

내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가 잘 구현된 몇 편의 글만을 두고

다소 흥분하여 섣불리 판단내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야.

그렇더라도 앞서 말한 고종석의 균형적인 판단은 내게는 무척 의미 있는 말이야. 

내가 어떤 책을 평가할 때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비평관이거든.

 

"기대할 바를 기대하라. 그리고 그(것)에게 적합한 잣대로 비평하라."

이것이 내가 서평을 쓰고, 무언가를 판단할 때의 황금률이야.

 

이 즈음에서 궁금한 게 있네. 

내가 고종석에 끌리는 이유를 발견했으려나?

적어도 두 가지인데 말야. 하나는 그가 문장가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나의 추구와 그의 비평적 가치가 닮았다는 점이고.

 

물론 고종석의 가치 판단에 대한 불만도 있지.

과연 문인은 아니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철저히 한결같이 지켜가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단 말야.

나는 회의적이거든, 그러니 "항상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라는 그의 언사는 

인간 이해의 결여가 아닐까 싶어. 하하하. 말이 다소 과했구만.

그의 인간 이해를 얕잡아 보는 것은 전혀, 절대, 정말 아니니 말을 고쳐보면, 

인간의 지속성에 관해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과대평가한 듯한 느낌이 든다는 뜻이야.

 

고종석이라면 그럴 만도 해.

그는 자기 기준을 엄정하게 지속적으로 지켜가거든.

한국의 대표 시집 50권을 읽고 서평 형식으로 써낸 글을 묶은 <모국어의 속살>이 그 예야.

그는 좋은 시에 대한 평가기준을 세워 두고서 철저히 그 기준에 맞춰 평가하고 글을 써.

오직 잣대에 의한 평가를 내릴 뿐, 우왕좌왕하지 않아. 그 지성과 용기가 멋져 보이더라.

왜 용기가 필요하냐고? 문단의 전통적인 평가를 뒤집기도 하거든.

지금껏 격찬 받아왔던 정지용, 황지우에게 아주 박한 평가를 했단 말이지.

해방 이전으로 따지자면 시는 지용, 소설은 태준이라는 말을, 문학 문외한인 나도 아니까.

그러고 보니 고종석은 이태준보다도 최일남의 문장을 더 쳤구만.

두 사람의 세대는 다르지만 말야.

 

시의 우열을 가르는 고종석의 잣대가 뭐냐고?

'모국어의 감각적 울림과 그 깊이에 도달해 있는가 아닌가'야.

그 기준으로 엄정하게 시집을 읽고 글을 써 냈어.

<모국어의 속살>은 한국의 대표시집이 무엇인가 하는 호기심을 해결하기에도,

시를 평가하는 가치 하나를 제대로 맛보기에도 적합한 책이야.

고종석의 잣대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 잣대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게 돼.

하나를 정확하게 알고 우직하게 밀고나가면, 그것이 무엇인지 세상에 보여주게 되니까.

 

그가 높게 꼽은 시인들이 궁금한가.

김소월, 서정주, 백석, 김영랑, 김정환 등이 그 면면이야.

모두 모국어를 감각적으로 쓸 줄 아는 능력이 출중한 시인들이라 봐야겠지.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은 조악한 모국어 실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한 평가를 받는데,

고종석은 조악한 문장을 싫어해. 김윤식 교수의 문학사적 업적을 기리면서도

그의 문장에 대해 쓴소리를 했던 것은 당연지사고.

나 역시 노교수의 문장에 대해 실망한 적이 있었던 터라

고종석 선생의 문장 지적이 내 마음에 포근하게 내려앉더라. 

 

고종석이 모국어에 매달리는 것은

그의 학문적 이력을 보면 쉬이 이해할 수 있어. 

학부에서는 법학을 전공했지만 석박사는 언어학 전공이거든.

그런데 2009년 이후로는 언어학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고 하네. 

그해 한국일보에 '말들의 모험'이란 연재가 허무하게 중단된 게 표면적 이유인 듯 하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지적 여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

 

고종석의 전작을 읽겠다는 결심 덕분에 그에 관한 얕은 정보를 얻어 왔지만,

체계적이지 못하고 깊지 않은 건 여전해.

전작을 읽었다면 내가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고종석론' 정도는 어설프게나마 써야 할 텐데

나는 아직 그의 전작, 아니 전작의 반타작도 못했어.

사실 전작을 읽겠다고 다짐한 해가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네. 

자기 약속을 남발하고 실행에 불민한 내 못남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야.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이제라도 하나 둘 읽어나가려고.

 

일하기에도, 취미 생활을 하기에도 바쁜데, 어떠니? 고종석의 책을 읽고 싶으려나.

모를 일이지만 행여 이 글을 읽으며 마음이 움직였을 수도 있으니 서너 권을 소개해 볼게.

소설을 좋아하면 <해피 패밀리>, 지식인으로서의 그를 만나려면 <고종석의 낭만미래>,

살뜰한 문장과 언어학적 지식을 만나려면 <모국어의 속살>이나 <말들의 풍경>을 권해.

여러 분야의 여성들에 관하여 쓴 일종의 관찰기, 상상기, 대화록인 <여자들>도 재밌어.

사회 비평에도, 한국어에도, 고종석에도 관심이 없는데

그저 교양 차원으로 한 권을 읽자면 2009년 출간한 <어루만지다>가 어떨까 싶네.

인류 보편의 주제인 '사랑'에 관한 말들을 분석하거나 그의 경험을 엮어 쓴 책이니 어때 끌리니?

 

그가 이렇게 책을 많이 썼냐고? 그래, 맞아. 많이 썼지. 장편소설 5편, 에세이만 20권이 넘으니까.

내가 수잔 손택과 고종석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 내 안에 소설 창작의 욕망도 있나 봐.

수잔 손택 역시 소설과 논픽션에서 모두 출중한 역량을 발휘한 미국의 에세이스트거든.

최근, 젊은 날의 그녀 일기가 출간되어 서점을 들락거리면 책을 슬쩍 봤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내가 소설과 논픽션을 넘나들 만한 깜냥이 못 됨을 느끼는 요즘이야. 

그러니 부지런히 대가들의 작품을 읽고, 열심히 이런 잡글을 쓰는 수 밖에.

 

이 글의 제목, 기억나?

'조르바의 고종석 산책'이라고 썼는데 다소 낭만적으로 표현한 거야.

사실은 고종석 '산행'이라고 써야겠지. 유유자적한 산책으로는 그의 실력을 넘볼 수 없을 테니까. 

여유롭게 즐기는 산책도 좋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는 산행도 의미 있잖아.

거기에 오르면 여기서는 가질 수 없는 관점을 얻어, 더 많이 더 멀리 볼 테니까.

나는 지금까지 배워 온 내 지식을 좋아하지만, 앞으로 얻게 될 지식도 사랑해.

그래서인지 러블리 독서 목록의 상위에 있는 고종석 선생의 글이 샤방샤방하게 보여.

사랑에 빠져서인가. 서울 시내 곳곳의 단풍도 아름답게 보이네.

독서의 즐거움도 가을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말고 살자. 안녕.

 

- 고종석 전작주의 임박자,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