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이 변화를 이끈다. 자기 인식 없이는 자기 변화도 없다. 자기 인식은 뒤통수를 치듯이 우리에게 접근한다. 노력과는 별개로 불쑥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자기를 인식하고 나면, 정말 뒤통수를 맞은 듯이 멍해진다. 자기 인식을 하는 순간 우리는 당황스러움, 부끄러움 그리고 얼마간의 절망과 허망을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본인에게만 그렇다. 타자는 아무렇지도 않다. 오늘 인식한 나의 일면을 그들을 이미 쭈욱 알아온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도 아니면 자기 인식은 그야말로 '나만의 인식'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자기 인식은 '뒤늦은 인식'이다. 마치 뒤통수 같다. 뒤통수는 내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타자의 눈에는 아주 잘 보인다. 오히려 뒤에서 마음껏 나의 뒤통수를 관찰한다.
우리는 둘만 모여도 타자에 관해 이야기한다. 뒷담화의 단골 소재는 누군가의 단점이다. 대화는 이렇게 진행되기도 한다. “그 사람은 그걸 모르나 봐.” “그렇겠지. 알면 그러겠어?” 모두가 아는 것을 정작 당사자만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자기 인식의 대표적 케이스다. (또 다른 케이스로는 남들은 모르겠지 하고 착각하고 있다가 남들도 다 알고 있음을 인식하는 경우다.)
자기 인식이 여러 불쾌한 감정을 동반하지만, 그리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느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은 늘 나의 뒤통수를 보아왔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우리의 친구요, 지인으로 남아 주었다. 성숙한 어른이라면 사소한 단점 하나로 절연하지 않고, 단점 없는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그들도 안다. 그러니 자기 인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를 더 인식해야 한다.
다른 이들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를 친구로 대해왔다는 사실을.
(또는 나만 몰랐고 다른 이들은 알고 있었으니 세상은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에겐 보이지 않지만 타인에게는 잘 보이는 뒤통수 같은 면들이 있다. 자기 인식이란 삶이라는 특수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뒤통수를 직시하는 일이다. 내게는 낯설지만 타인에게는 익숙한, 나는 당황스럽지만 타인은 아무렇지 않은, 나로서는 인정하기 싫지만 타인에게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자기를 인식한 날은 행운의 날이다. 자주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의식적으로 노력해도 안 되던 것이 일상 속 사건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불쑥 찾아온다. 또한 기쁨의 날이다. 변화의 계기를 맞은 셈이기 때문이다. 좀 괴롭기는 해도, 타자에게는 당연하고 아무렇지 않음을 인식하여 자기 인식의 기쁨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