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그리스 남자들이 주는 교훈

카잔 2016. 7. 8. 10:27

1.

"나는 그의 겉옷 안을 들여다보고는 불이 붙어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네. 그리고 미소년에 관해 말하며 '새끼 사슴이 사자에게 다가갈 때는 사자의 밥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한 퀴디아스야말로 연애의 대가라는 걸 알았네. 정말이지 나는 그런 야수에게 사로잡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 『카르미데스』의 한 대목이다. 미남이자 멋진 몸매의 소유자인 카르미데스의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몸매를 보고 감탄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다. 감탄보다는 탐닉에 가까운 모습인데, 흥미로운 장면이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세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하나, 소크라테스는 뜨거운 남자였다. 두울, 카르미데스는 대단한 몸매를 소유한 미남이었다. 세엣, 그리스는 육체적 아름다움을 찬미한 민족이다. 카르미데스의 외모는 환상적이라는 점은 문헌에도 여러 차례 언급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욕정에 대해서는 다시 지면을 마련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세번째 사안을 살펴본다.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 그들의 문화적 특성에 나온 것인지는 가려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비율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리스인들에게 육체적 아름다움은 특별한 의미였다. "비주얼한 존재인 그리스 사들은 인간의 영혼은 육체로 구현된다고 믿었다. 육체의 아름다움은 자체로 아레테(덕성)을 의미했다."(이광주, 『교양의 탄생』, p.52) 그리스인들에게 아름다운 육체는 곧 아름다운 영혼의 표상이었다. 그들은 아름다운 몸을 찬양했다. 물질보다 영혼의 세계를 추구했던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비교적 '역사적 소크라테스'를 그려냈다는 초기 대화편 『카르미데스』를 보니 말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걸작, 라오콘상


3.

호메로스가 살았던 당시의 그리스는 신화의 세계였다. 소크라테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그들은 점점 신화의 세계와 결별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연을 관찰하던 선배 철학자들과는 달리 인간의 삶을 탐구했다. 그리스인들은 인간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매혹되기 시작했다.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창조한 그리스 고전기의 시작이었다. 인간에게 주목했고, 인간적인 것들을 탄생시킨 것이야말로 고대 그리스의 진정한 유산이다. 그리스 도처에 세워진 쿠로스 상은 그리스인들의 인간 찬미다.


고대 그리스 젊은 남자들의 나체 입상을 '쿠로스(kouros)'라고 부른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에는 젊은 남성의 누드상이 많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기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옷을 벗는다. 그리스인들이 생각하기에, 신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존재다. 그리스인들에게 누드란 신들의 의복, 영웅들의 옷이었다. 쿠로스, 다시 말해 '아름다운 젊음의 누드'는 신이 되고자 했던 인간의 이상적인 형상(理想像)이었다. 이것은 신화로부터의 해방인가, 인간들의 교만인가?


해방인지, 교만인지 단정하기 쉽지 않으니, 그리스인의 '자유'라고 해 두자. 해방이 될 가능성, 교만이 될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는 개연성을 끌어안자는 의미다. 그리스인들의 경우는 해방과 교만 모두가 해당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자유로운 사유 세계를 열었지만, 투표권은 남성들만의 차지였다. 여성의 몸은 신성하지 못하다고 여성 조각상은 모두 옷을 입혔다. 게다가 그리스 시대 이후의 미술사가 한동안 자연을 경시했던 것도 교만의 결과이리라.


그리스인의 자유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안긴다. 부모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니던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기 머리로 사유하기 시작했다고 하자. 이제는 신을 믿는 대신 인간적인 것들을 찬미하며 산다면, 그것은 해방인가, 교만인가. (여기서, 이성을 섣불리 불신해서도 과신해서도 안 된다. 이성은 세속적인 것이 되기 십상이지만, 20세기 최고의 신학자 존 스토트는 기독교가 지적 자살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세례 받은 이성'의 중요성을 아시리라. 한 신학자는 '불붙은 논리'라는 표현으로 거룩한 이성을 언급했다.)



3.

다시 그리스인에게로 돌아가자. 그리스인들은 부분적 오류를 저질렀다. 아름다운 영혼과 아름다운 육체는 연관되기도 하지만, 별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헬스클럽에서 거울을 보며 땀흘리는 이들 중 일부는 나르시시즘에 젖어있는 사람들이라는 칼럼을 읽은 적이 있다. 그의 지적이 맞다면, 환상적인 몸매를 지닌 남자들 중 일부는 자기 몸과 타인의 시선에 빠져 있는 나르시스트인지도 모른다. 누가 나르시스트인지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건강한 육체가 건강한 영혼을 가꾼다고 믿는 이들도 헬스클럽에 다니기 때문이다.  


나는 40년 가까이 한번도 헬스클럽 이용권을 구매한 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멋진 그리스 조각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내 뱃살을 주무르게 된다. 나는 직관적인 사람이다.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일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믿기 쉬운 성향이라는 말이다. '정신세계가 물질세계보다 중요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대체로 건강관리에 소홀하다. 기계를 다루거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르시스트는 헬스클럽 뿐만 아니라 명상센터에도 존재한다.


매력적이지 못한 내 몸매가 내 머리로 사유하여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내가 태어난 기질대로 믿어온 결과인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기에 그리스인들의 '영혼은 육체로 구현된다'는 생각은 내게 교훈이 된다. 정신세계와 물질세계 모두가 중요함을 상기시켜 주기 때문이다. 물질세계만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모두 세상의 반쪽만을 중시하며 산다는 생각에 이르자, 몸매 좋은 남자들에게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간과하기 쉬운 물질세계(건강, 돈, 지리, 물질, 시스템)의 중요성을, 그리스 남자들이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