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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을 향한 마음

카잔 2008. 8. 25. 08:54


책 한 권을 써 낸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책.을 써 내야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출간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좋은 책을 쓰고 싶었고 그래서 나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책에 관련한 나의 꿈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연말 언론에서 나의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해 주는 것이다.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이 달의 양서'로 꼽아주는 것도 나의 꿈이다. 시장의 흐름을 포착하여 폭넓은 대상으로 글을 쓰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서고 싶다. 나에게는 책의 출간과 관련한 몇 가지의 꿈이 있었다. 이것은 책을 위한 글쓰기를 할 때, 스스로에게 던지는 다짐이기도 했다.

출간의 목표는 어릴 적 내 꿈의 실현이다

십여 년 전부터 나는 내가 지은 책을 갖고 싶었다. 스무 살이 되어 서점을 내 집처럼 드나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가졌던 꿈이고, 대학 공부를 하면서도, 2년 남짓의 군복무를 하거나 이후의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이 꿈은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낙엽은 세월과 함께 퇴색되나 내 꿈은 세월과 함께 진화했다. 나의 꿈은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는 믿음이 있었고 내 삶에는 그 믿음을 실현할 만한 자연스러운 삶의 모양(꾸준한 독서와 실천, 그리고 글쓰기)이 있었다. 나의 첫 책은 나의 의지라기보다는 그저 살아가는 모습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십년 동안 간절히 바래 왔고, 한 권의 책을 내기 위한 작업에 그 어느 것보다 열심을 내었으니 말이다. 첫 책을 출간함으로 얻고 싶었던 목표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서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인세를 얻어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도 아니다. 오랫동안 가슴 속에 간직해 온, 내가 꼭 하고 싶었던, 간절히 바랐던 내 꿈의 실현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영혼을 기쁘게 만드는 책만을 쓰고 싶다. 그럴 것이다. 내 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나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로 오랫동안 누군가에게 기여하리라

나의 첫 사망보험은 지인의 끊임없는 설득에 의해 이뤄졌다. 그에게 44만원에 달하는 두 건의 계약을 했다. 그 중 30만원은 변역유니버셜(VUL)이었다. 개인적인 신념이 있어 수개월을 거절하다가 결국은 계약을 했다. 그는 오래도록 나의 재정을 관리해 주고 싶어했다.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1년 후 즈음, 매달 날아오는 통지서에는 담당자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가 회사를 관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1년이 지난 즈음, 나는 그 사망보험을 해지했다. 잘 알게 된 재정 컨설턴트 2명이 해지를 적극 권했던 것이다.

아쉬웠다. 나는 그가 나에게 지속적으로 도움을 주기 바랬다. 물론 나의 바람은 이상적이었다. 보험 업계의 일반적 현실을 생각하면 허무맹랑하기까지 했다. 지금은 내가 보험이나 투자를 할 때 가장 먼저(사실은 유일하게) 따지는 것 하나가 그 FP가 이 일을 평생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평생 할 일이라면 다른 몇 가지의 부족한 점은 곧 보완될 것이고 그는 자연스럽고 오랫동안 나의 재정을 잘 관리해 줄 것이다. 나는 평생 내 책에 책임을 지는 저자가 되고 싶었다. 책 한 권 써 봤더니, 이 길은 내 길이 아니더라, 하며 다른 업을 찾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랬다.

다행히도 나는 십년 동안 독서와 글쓰기를 해 왔고 그 일이 별로 싫지 않았다. 독서와 글쓰기에 들이는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들을 사람들을 만나며 얘기를 나누고 함께 삶에 대해 고민했다. 이러한 삶은 내가 이렇게 해야지, 하고 다짐하며 행동한 결과가 아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았을 때 나타난 내 삶의 모습들이었다. 자연스러우면 오래 갈 수 있다. 모든 인위적인 것들은 단명한다. 결국에는 자연이 가장 위대하다.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않고 내 안에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발견해 낸다면 오래 갈 수 있다. 내 책이 그런 자연스러움을 지니기를 바랬다. 그래서 진실되지 못한 대목들, 인위적인 대목들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았다. 내가 진정 가진 것들을 줄 때에 나는 오래 오래 줄 수 있고 행복해할 수 있다. 탈진은 너무 많이 주어서가 아니라, 내게 없는 것을 줄 때에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나는 불청객의 방문 없이 평생 행복하게 글쓰며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 부끄러움 없이 추천하고 싶었다

오늘 현대경제연구원 산하의 Usociety라는 회사에서 정기레터가 왔다. 제목은 내가 강연한 내용에서 따 왔다. 수개월 전, 나는 강연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Usociety에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에 수락한 결과였다. 이미 수년 간 강연을 해 왔고, 난 별다른 부담없이 촬영을 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블로그에 이 글을 쓰는 것도 처음이다.) 말은 어눌했고, 행동은 어색했다. 사투리는 더욱 도드라지고 표정은 굳었다. 옷차림은 꼭 아빠 옷을 빌려 온 것 같았다. 촬영을 하고 난 후, 한동안 괴로웠다.

부끄러웠다. 강연 영상이 엉성해서가 아니라, 나는 촬영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다. 처음 하는 촬영이면서도 무슨 배짱인지, 나는 시나리오도 읽지 않았다. 옷 매무새가 어떤지도 돌아보지 않았고 대본 연습 한 번 하지 않은 채 엉성한 정신 상태였다. 결과가 좋지 않아도 누구를 탓할 순 없었다. 내가 불성실하고 프로의식의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에.

나는 내 책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랬다. 최선을 다하지 못하여, 성실하지 못하여 스스로 부족한 대목을 발견하여 부끄러워지면 마음이 힘들 것 같았다. 책이 나왔을 때, 내 땀의 결실은 안은 농부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다. 다행이다. 책을 받아 든 나는, 그리고 책의 일부분을 읽어 본 나는 기뻤다. 성실과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했다. 좋지 못한 상품이면 유통하기 어려워하는 성향을 가졌다. 다행히 나는 내 책이 마음에 들었다. 부끄럽지 않았고 자랑스러웠다. 내용의 부족함이 있더라도 성실의 부족함은 없었기에 기쁨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글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전문위원 (시간/지식경영 컨설턴트)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