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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에 대한 부담감과 강사정신

카잔 2010. 1. 7. 08:44


[2010년 1월 6일 강연일지]

강연에 대한 부담감과 강사정신

2010년의 두번째 강연은 <전략적 독서>를 주제로 한 4시간 짜리 기업강연이었다. 강연 날짜가 다가오면서 부담이 느껴졌다. 세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첫째, 나의 요즘 관심이 '강연'이 아니라, '공부' 혹은 '글쓰기'에 쏠려 있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에 읽은 몇 권의 책은 내가 여전히 애송이 지식의 소유자임을 알려 주었다. 내 지식의 얕음에 자괴감을 느꼈다.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는 말은 나를 향하는 것 같았다. 모든 외부 활동을 접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싶다는 결심을 물리치느라 애쓰기도 했다. 물리쳐야 했던 까닭은 이런 류의 결심은 현명하기보다는 즉흥적이고 충동적이기 때문이다. 흥분에 휩싸인 순간은 결심을 하기보다는 시간과 함께 생각해야 할 때가 많다. 2010년에는 와우팀도 하지 말까, 라는 생각을 했을 만큼 지적 갈망을 느꼈었다. 공부 욕심이 와우팀과 강연과는 별도의 분야임을 상기하고 나서야 삶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누군가를 위한' 강연 준비보다는 '나를 위한' 공부나 글쓰기를 하고 싶은 요즘이다.

둘째, 주제에 대한 부담이다. 나는 독서 강연할 때, 퍽 신이 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독서에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 청중과 함께 할 때다. 회사에서 비자발적인 청중과 함께 할 때의 독서 강연은 신바람을 덜 나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다. 나는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온 몸으로 기어가 자신의 길을 흔적으로 남기는 독서를 권하는 편인데, 기업에서는 치타처럼 달려 재빨리 사냥감을 포획하는 '전략적 독서법'을 원한다. 게다가, 오늘 회사는 공대생 분위기를 가진 IT 회사인지라 인사담당자로부터 단단히 언질을 받았다. 필요한 책들을 빨리 읽어내며 책의 핵심을 찾아내는 스킬 위주로 강연을 진행해 달라고. 속도에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강연이었다.

셋째, 인사담당자가 바로 나의 친구라는 점이다. 나는 강연할 때, 친구나 지인들이 앉아 있어도, 회사 동료들이 앉아 있어도 부끄럽거나 부담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예외다. 친구가 인사담당자이고 나는 그가 초대한 강사다. 강연을 잘 하면 본전일 테고, 못하면 친구에게 약간의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이야 장기적이지 않을 테지만, 어쨌든 잘 하지는 못할망정 평균 이하의 강연을 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을 조금은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의 무게를 더해 준 일이 있었다.


강연 전, 나는 친구와 함께 점심 식사를 들었다. 친구는 몇 가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했다. 그는 이 회사로 전근한지 얼마되지 않은 터였다. "희석아, 오늘 잘 해야 한다. 부사장님이 참석하시기도 하고, 너는 내가 여기 와서 처음 초대한 외부강사거든." 친구는 일어나며 덧붙였다. "내가 알기로 너는 부담되면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알면서 왜 그랬담? 하하. 이제는 알겠다. 나보다 녀석이 더 큰 부담을 느꼈다는 것을. 문득, 친구를 모셔(?) 준 것에 대한 신뢰와 우정에 고마움을 느꼈다. 고맙다. 친구야! 허나, 고마움은 강연이 끝나고 나서의 이야기고, 어쨌든 강연 전에 나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다.

 

강연 참가자 수는 처음에는 20명이었는데, 30명으로 불어났고, 최종적으로는 50명이 되었다. 강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서인지, 어떤 불가항력적인 요인 때문에 참여가 늘어난 것인지는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 분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가야한다는 생각에 집중했다.

부담감을 떨쳐내는 방법은 늘 똑같다. 하나, 내가 가진 것들을 주면 된다는 생각에 집중하면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할 것. 가지지 못한 것을 줄 때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잘 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 할 때 엉뚱하거나 불완전한 것을 전하게 된다. 두울, 참 훌륭한 강사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열망을 잠재우고 청중들이 스스로를 '나는 참 좋은 사람이네'라고 느끼도록 돕자는 열망으로 바꿀 것. 잘 해야 한다는 욕심을 진실한 섬김의 마음으로 전환시킬 수 있으면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이 두 가지의 방법은 나에게 무척 효과적이다. 오늘도 역시 그랬다. 나는 즐길 수 있을만한 분량의 부담감으로 강연을 열었다.

오늘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오전 내내 강연 준비를 하며, 치타들을 설득하여 달팽이 독서를 권하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독서는 결국 학습의 중요한 방법 중 하나인데, 학습은 단기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학습조직의 권위자인 피터 센게는 학습을 이렇게 정의했다. "학습은 시간을 두고 진행되며 생각과 행동을 통합시키는 과정"이다. 나는 학습을 오늘 강연의 키워드 중 하나로 설정했다.

강사는 조직이 원하는 것을 주는 동시에 필요한 것들도 줄 수 있어야 한다. 성과를 달성하기 위한 효율적인 독서의 기술을 전하는 동시에 그 조직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찾아내어 알려 주어야 한다. 나는 학습을 완성하는 실천적, 창의적 독서는 속도가 느린 독서임을 알리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강연 후반부에는 '전략적'인 독서의 기술로써 그들 Wants 를 해결해 주면 되겠다 생각했다.

나는 강연 내내 집중할 수 있었고, 아주 몰입하기도 했다. 첫번째 휴식 시간에 친구도, 친구의 상사도 흡족해 하셨다. 강연은 적정한 깊이와 속도감이 있었으며 참가자들도 즐거워했다. 그런데 둘째 시간 후반부터 나의 몰입이 유쾌하고 웃음이 넘치는 몰입이 아니라, 진지하고 내용이 점점 깊어지는 몰입이 되어 버렸다. 친구는 염려했다. 속도감이 떨어지고 내용이 너무 깊어졌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마지막 시간에는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의 Wants 인 효율적이고 전략적인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를 잘 풀어내야지.

그런데 마치는 시간을 착각하여 전략의 기술에 대하여 이야기할 시간은 20분 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시간은 말을 빨리하여 진행해야 했다. 준비한 것을 모두 전하기는 했지만 토론을 하거나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은 채 진행한 것이 마지막 시간의 미흡한 점이다.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 부끄러운 클로징이었다. 

오버타임은 문제는 나의 고질병이다. 오늘은 원래 시간표보다 20분 일찍 시작했고, 강연에 앞서 짧은 레크레이션을 했다는 것을 감안하지 못했다. 친구가 쉬는 시간에 한 번 마치는 시간을 알려 주었음에도 나는 최초의 계획표만 염두에 두었다. 클로징 시간을 충분히 가지지 못하는 점은 집중적으로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점이다. 2010년, 올해는 나의 강연을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그런 차원에서 지금까지 두 번의 강연을 지난 해 보다 훨씬 더 성실하게 준비했다. 여전히 개선점은 많다.

 

마지막 30분은 기존 직원들이 빠져 나가고, 신입 사원들만을 대상으로 한 미니강연 시간이었다. 신입사원 연수 기간에 읽어야 할 3권의 책을 소개하는 강연이다. 회사 측에서 선정한 3권의 책 중에서 두 권은 내가 익히 잘 아는 책이다. 피터 드러커의 책과 데일 카네기의 책이니까. 두 권은 와우팀 필독서이도 했다. 강연 전에 잠깐 질의 응답을 받았는데, 5~6개 정도의 질문을 했고, 모두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성실하게 답변했고, 그에 대해 만족하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시간 관계상 질의응답을 끝내고 책 소개를 했다. 짧은 시간을 잘 활용하여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를 하자는 생각이었고, 나의 목적은 잘 달성된 듯 했다. 그 자리에는 부사장님이 함께 계셨는데 뒷자리에서 이렇게 물으셨다. "강사님, 이번에 3권의 책을 따로 한 번 보신 겁니까?" 진실만을 말하자는 생각에 부끄럽지만 대답했다. "사실 이번에 별도로 보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책의 내용을 잘 소개하시다니 대단하네요. 다른 책도 그렇게 알고 계시겠군요." 얼떨결에 엉거주춤 대답했다. "네." 한 마디를 덧붙였다면 나에 대한 거품을 걷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 선정된 것입니다."라고. 

책소개는 내가 잘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잘 할 수 있었다. 반면, 빨리 책을 읽어내는 것은 내가 관심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강연 내용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아마도 친구는 나보다 더욱 아쉬운가 보다. 시작과 마지막은 좋았지만 중간에 다소 회사의 기대 성과를 채우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에 전략적 독서법으로 빨리 넘어가자는 종용에 나는 알겠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이런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것도 정말 필요한 내용인데.."라고. 나의 페이스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스리는 말이기도 했지만, 내 진심이기도 했다.

 
내가 할 말은 모두 전했지만 참가자 분들이 원했던 이야기를 다소 급하게 진행한 점은 강사로서 부끄럽고, 친구에게 미안하고, 참가자 분들에게 더욱 좋은 강연을 드리지 못해 아쉽다. 돌아오는 길에 가수 김현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옛날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 밴드였을 때 무대에서 외국곡을 불렀다. 밴드 중에 김종진 씨가 이렇게 물었다. 

 
"우리 히트곡도 많고 우리가 만들어드린 곡도 많은 왜 외국곡을 불러요?"
"우리 음악하는 사람들은 자기곡만 너무 내세우는 아집을 버려야 해.
대중이 좋아하는 노래는 뭐든지 불러줄 줄 알아야 한다."
음악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에게 열려 있는 김현식의 모습이 멋져 보였다.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곱씹어 볼 만한 이야기다. 김현식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그대로 강사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강사는 엔터테이너가 아니가 때문이다. (이론과 재론의 여기가 분명 있다. 강사는 교육자인가? 엔터테이너인가? 생각해 볼 문제다.) 더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나의 강사정신을 정리할 기회를 가져야겠다. 정리한 강사정신이 모든 강사들에게 적용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의 재능을 꽃피우고 누군가에게 유익이 될 철학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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