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철학의 유익

카잔 2010. 2. 20. 00:49

결국, 지갑은 찾지 못했다. 예상했던 바였지만 아쉽다.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근거 없는 낙관으로 이틀을 지내고 나서야
카드사와 은행에 전화를 걸어 카드 분실신고를 했다.
신고를 한 후, 이번 일을 잠시 돌아보았다. 대견한 구석도 있었다.
 
지갑을 잃어버린 것이 기정 사실임을 인정해야 했던 이틀 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하필 그 때였나, 하는 (대상없는) 원망이었다.
지갑 분실은 여러 사건의 절묘한 조합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사건 하나만 빠져도 지갑 분실이라는 사건을 일어나지 않았을 것다.

자리를 뜨기 전 평소처럼 앉았던 자리를 슬쩍 훑어보았더라면 (나는 늘 훑어본다.)
카페에서의 미팅을 마치고 그렇게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집으로 갈까, 카페에 갈까를 고민했던 그 때 카페를 선택했더라면 지갑은 내 수중에 있을 텐데..
이런 식의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할 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좋은 일 역시도 따져 보면 여러 가지 일들의 절묘한 조합으로 일어나는 것이니,
나쁜 일만을 따져가며 하필 그 때 그 일, 이라는 식으로 원망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원망을 멈추고 상실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했다.
상실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상실이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삶에서 상실은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의미없었다.
'상실을 겪을 때,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상실과 사이좋게(^^) 하는가?'가 중요했다.
없었던 일로 치자, 라는 생각은 사건 자체를 지우는 것이니 배울 수 있는 교훈도 날아가버린다.
만회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자, 라는 생각은 평범한 일상의 균형을 잃을 수 있다. 

지난 해, 배낭을 잃어버리고서 배운 것은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외면하지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감정과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이렇게 생각하니 지갑 분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몇 번의 크고 작은 상실로 갖게 된 개똥철학 덕분인 것 같다.

철학은 행복한 시절엔 고상한 장식처럼 보이다가,
불행의 시기에는 지혜로운 안식처가 된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

'™ My Story > 끼적끼적 일상나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구에게 (1)  (17) 2010.02.22
짜증 섞인 하루  (4) 2010.02.21
또 하나의 상실  (0) 2010.02.18
출세  (0) 2010.02.18
친밀한 사랑과 열렬한 사랑  (0) 2010.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