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선릉역 출구에서 서 있는 나를 앞서 나갔다. 옆 모습만 보았는데도 그녀를 알아 본 것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기억났던 것이다.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했던 프라하에서 만난 배낭 여행객이었다. 한국인 7~8명이서 함께 우르르 체코의 맥주를 즐겼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그녀는 상록회관 근처로 엄마를 만나러 가는 중이랜다. 순간 상록회관 지하에 있는 상록마트에 가서 장이나 볼까, 하다가 관두었다. 세련된 옷차림의 커리어우먼과 청바지 차림의 장보러 가는 남자는 어울리지 않은 듯했기에. 어쨌든 같은 방향을 걸으면서 5분 정도의 대화를 나눴다. 반가움에 어색하진 않았다. 다만, 동네 마실 차림의 내 상태가 부끄러웠을 뿐. "강의를 하신다고 했죠?" 그가 물었다. 기억해 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