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3

특별한, 아니 아쉬운 새벽기도회

어젯 밤, 교회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로 다른 부서여서 교회에서 만나지는 않지만 이렇게 종종 연락을 하며 지낸다. 편한 사이라는 말이다. "내가 왜 전화했냐면, 내일 새벽 기도회 나오라고." 이번 주가 특별새벽기도회 주간이니 참석해 보라는 것이다. "오케이" 내가 생각해도 즉각적이고 시원스런 답변이었다. 누나도 한치의 주저함 없는 답변을 들은 것에 기뻐했으리라. 내 속마음은 이랬다. 기도회,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동했다. 그렇잖아도 기도하고 싶은 요즘이었고 말씀에 대한 갈급함이 더해지는 날들이었다. 누나 역시 기도하는 마음으로 권했을 것이고 누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를 긍휼히 여긴 누나의 기도에 하나님이 기뻐 응답하셨는지도. 사실, 오늘은 바쁜 날이다. 정..

벌레를 향한 믿음, 소망, 사랑.

으악! 온 몸이 간지럽다. 벌레가 온 몸을 훑고 지나는 듯한 느낌에 몸 이곳저곳을 긁는다. 벌레가 아님을 확인하며 안심하고 나면 이내 다른 곳이 간지러워진다. 또 긁적긁적. 바닥에서 벌레가 기어올까 봐 나 지금 의자 위에 두 다리를 들어올려 글을 쓰고 있다. 에공. 미치겠다. 나의 1/500 밖에 안 되는 조그만 놈 때문에 쪼그려서 글을 쓰는 모습이라니. 이것은 돈벌레를 나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난 다음의 증상이다. 난 무지막지하게 벌레를 싫어한다. 솔직히 조금 무섭기도 하다. 깬다. 이 말은 7년 전, 여자 후배들이 나를 보며 했던 말이다. 장난으로 내게 벌레를 던졌는데, 내가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던 게다. 내가 봐도 깬다. 그런데 난 정말 머리가 깨질 만큼 벌레들이 싫다. 바퀴벌레, 송충이, 돈벌레...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기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문제이기에 실제적이다. 매일 믿음의 시련이 눈앞에 닥치기에 구체적이다. 책 출간을 내려 놓은 그 다음 날 큐티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소망을 당신 에게만 두기를 거듭 말씀하셨다. 온전히 내려놓음, 그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은 나의 소망을 모두 하나님 안에 두는 것이다. 이것은 곧 기다림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기다림, 이것은 믿음이다. 약속을 했을 때 그가 온다는 믿음이 있기에 기다릴 수 있다. 핸드폰이 없었을 때에는 약속 시간이 지나도 그냥 기다려야 했다. 올 것이라는 믿음의 크기에 비례하여 기다림의 시간도 늘어난다. 하나님을 바란다는 것도 기다림의 믿음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만 소망을 두고 그 나의 소망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