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친밀함을 누리는 비결

카잔 2014. 11. 23. 09:37

 

2009년 1월에 썼던 <보보의 해피레터> 7편을 포스팅합니다. 친밀함에 대한 글입니다. 40년 이상,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들의 삶을 연구한 조지 베일런트 박사는 말합니다. "삶에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당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사회성이야말로 삶을 전반적으로 만족스럽게 만드는 요소라는 것이 그의 견해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외로움을 이해하고 친밀함을 추구하라

 

2년 전, 그는 내게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야기는 꽤 충격적인 것이었기에, 나는 그와 어디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내가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그가 어떤 표정으로 이야기했는지에 대해서도 생생히 기억난다. 우리는 대화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분위기의 어느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살아 있는 느낌이 없다고 했다. 오늘 밤에 잠들면 내일 아침에는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 안에 통제할 수는 있지만 충동적인 자아가 있다고 했다. 그 충동적인 자아는 폭력적이어서 지나가는 사람을 ‘그냥’ 때리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죽이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했다. 그는 내면의 은밀한 이야기를 최대한 많이 드러내려고 각오한 것처럼, 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에게는 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없음을 느꼈고, 그에게 이 사실을 고백했다.

 그 날, 최소한 3가지의 일이 벌어졌다. 첫째, 한 남자가 자기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은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마음도 있었다. 이야기가 끝난 후 예전에 누군가에게 얘기한 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얘기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둘째, 그의 은밀한 내면세계에 대해서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게 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려고 노력하며 그에게 집중했다. 그는 처음 말하는 것이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그의 내면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다. 셋째, 그는 자신을 드러내었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였다. 그 후로, 우리는 조금씩 친밀해져왔다. 그 날은 우리 두 사람에게 친밀함이 처음으로 찾아 든 날이다. 나는 그날의 일을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의 허락을 얻어 이야기의 일부를 쓰고 있다.

 1년 4개월이 지났을 즈음, 한 가지의 일이 더 벌어졌다.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날 역시, 뚜렷이 기억난다. 우리는 늦여름의 어느 날,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북한강에 갔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표정이 무척 밝던 그 날, 그가 말했다. “이제 저도 행복을 느껴요.” 그의 변화가 한없이 기뻤다. 놀랍기도 했다. 행복하다는 말이 항상 즐거운 일만 가득하다거나, 늘 최고의 감정만을 느낀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괴로움과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로 삶에 만족하고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리라. 2년 전에 비하면, 지금의 그는 많이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행복해한다. 이렇게 빨리 행복을 느끼게 될지는 나도 몰랐다. 어떻게 하여 변화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 다만, 말하고 싶은 한 가지의 주제가 있다. 그의 변화를 지켜보며 느낀 점인데, ‘친밀함’ 혹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을 드러내어 친밀함으로 이르는 과정에 대하여 뭔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친밀함을 추구하기

 나는 친밀함을 추구한다. 이것을 온전히 이루고 싶어 와우팀(보보가 진행하는 모임)을 시작하였고, 친밀함에 대한 열망 덕분에 나에 대한 어두운 구석까지 친구에게 정직하게 이야기한다. 나는 친밀함이 행복으로 가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라고 믿는다. 친밀함이란 건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그 모든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멋진 이야기를 만들며 만족하지만, 어떤 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야기로 괴로워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지니고 있고, 그 이야기는 종종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언급된다. 회사에도, 집에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우리의 이야기가 돌아다닌다. 한수만 씨는 회사를 옮겼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이야기는 회사에 남아 있다. “한수만이 누구냐고? 야, 그 친구 얘긴 꺼내지도 마라. 그 자식 말이야...”라고 험담이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뒷담화라고 불린다. 반면, “한수만 씨? 정말 탁월하게 일을 처리했지”라고 오랫동안 칭찬으로 남을 수 있다. 이런 이야기는 ‘사내 전설’이라고 불린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는 사라지지만, 이야기는 남는다. 뒷담화로, 혹은 전설로.

 자신의 이야기는 곧 자신의 인생이다. 보보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정리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말마다 나만의 10대 뉴스를 작성하는 것도 개인사를 스스로 기록해 두지 않으면 잠시 기억 속에 머물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하면 개인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일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 또한 과거 속에서 미래 건설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이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정리하면서 인생을 효과적으로 경영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오늘 글에서는 ‘이야기’에 대해 조금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전하면 친밀함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이 친밀함이다. 나는 어떠했나? 오래 전에는 사람들에게 나를 온전히 드러내지 않았다. 세상과 만나는 지점에서는 ‘거짓 자아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나의 진심을 숨기고 거짓 미소를 지으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 노력했다. 수년 전부터는 몇몇 친구들에게만 나를 온전히 드러내었다. 아주 못된 구석까지 보여주었다. 용기를 발휘한 만큼 그 녀석들과 친밀해졌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우리를 진실하게 만든다. 반대로, 다른 이들에게 진실하게 다가가면 친밀함을 얻을 수도 있다. 친밀함에 이르는 길 중에 하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수년 전 겨울에 있었던 기분 좋은 경험 하나를 소개한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그녀와 나는 반갑게 만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교육 담당자와 강사의 관계로 2년 동안 알고 지내온 사이였다. 교육이 매달 한번씩 진행되었으니 한 달에 한번은 만났다. 가끔 서로 시간이 맞으면 교육 전 점심을 함께 먹는 정도였고, 서로를 존대하며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렇게 지내다가 크리스마스를 3일 앞둔 날에 만난 것이다. 관계가 깊어졌냐고? 하하. 그게 아니라 그녀가 곧 결혼하게 되어 밥 한 번 먹자는 약속이 영원히 미뤄질까 봐 서로 시간을 맞추었던 것이다. 함께 식사를 마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녀의 결혼 얘기가 나왔다. 그녀는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가슴 아프지만 순수한 사랑을 하다가 기적같이 사랑을 이루었고 번개 같은 속도로 결혼에 골인했다. 나는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힘겨웠던 지난 시간들과 결혼으로 이르게 된 과정이 궁금했고,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결혼에 대하여 염려되는 것들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야기를 시작했고, 나는 온 마음으로 경청했다. 이야기는 그녀에게 전화가 와서 한 번 끊어진 것을 제외하면 1시간 40분 동안 진행되었고 나는 “계속 들려주시죠”라는 한 마디만 했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그녀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얘기만을 늘어놓는 무례한 사람이 아니기에, 처음에는 나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그러다가 나의 진심을 파악한 후에는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4년 동안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이야기한 것은 처음이라 했다. 고맙고 기쁜 일이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진심이 있었다. 그녀가 지나간 일들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리게 될 이야기들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나면, 보다 오래 기억할 수 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을 느낄 수도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나눌 때 이것이 소중한 이야기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나는 그녀 스스로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소중히 간직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중년이 될 때까지도.

 우리는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잊는다면, 자신의 인생길을 헤매게 된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우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기억하도록 도와준다. 최근, 하루에 10분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미시간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친밀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다른 노력 없이도 사람의 기억력과 인지능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이 주어졌다. 그녀와 친해진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 우리는 가까워졌다. 정신적인 친밀함이 느껴져서 아주 행복했다. 레스토랑을 나오니, 눈이 내렸다. 아주 로맨틱한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로맨스는 아니지만, 건강한 친밀함을 느꼈다. 며칠 후, 그녀는 자신의 로망과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는 2년 여 동안 사용하던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떼어냈다. 동갑이었기에 ‘친구’라고 부르기로 했다. 친밀한 우정 하나를 얻은 셈이다. 모든 우정이 친밀함을 동반하는 것은 아님을 감안할 때 참 귀한 일이다. 나만의 착각은 아니라고 믿는다. 적대감이 그렇듯이 친밀함 역시도 서로 주고받는 것이기에.

 친밀함에 대하여 정리하자.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우리는 친밀함으로 다가선다. 말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보다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듣는 사람이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준다면 친밀함으로 이르는 속도는 배가 된다. 친밀한 인간관계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기억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한다. 외로움, 이 무슨 뜬금없는 단어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제 외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하려 한다.


외로움을 이해하기

 삶은 외로움과 적응해가는 과정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은 위로와 지혜를 주지만, 어디선가 느껴지는 약간의 허무감과 무력감 때문에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삶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로 채워가는 터전이고 친밀함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가 아닌 자신의 꿈과 열망을 위하여 한바탕 뛰노는 터전이 삶이다. 또한 신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과 친밀해져가는 과정이 삶이다.


 외로움은 일평생 동안 우리를 따라다닐 것이다. 외로움의 힘은 명예와 부, 권력보다 강하다. 외로움을 막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방어벽을 만들더라도 외로움은 그 벽을 뚫고 불쑥 나타난다. 나 역시, 2008년 연말에 홀로 있으며 매우 편안했지만 얼마만큼은 외로웠다. 외로울 때 힘이 되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와의 친밀함이다. 나에 대하여 진실로 잘 아는 단 사람이 곁에 있을 때에 외로움을 쫓아낼 수 있다.

 친밀함은 건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라 말했다. 친밀하지 않음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아무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세상에 자신을 진실로 잘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된다. 이것은 외로움을 불러들이는 좋은 방법이다. 이 세상에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사람이 몇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하나님과 소수의 친구들.

 2008년 크리스마스 날, 나는 하루 종일 홀로 집에 있었다.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이날,『88만원 세대』를 읽으며 왈칵 울음을 쏟긴 했는데, 이것은 외로움 때문이 아니라 20대들의 힘겨운 삶이 가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저녁 무렵 갑자기 조금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불청객을 쫓아내려고 음악을 틀어놓고 샤워를 하려는데, 친구가 자기 여자 친구와 함께 집으로 찾아왔다.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고 셋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차 한 잔과 함께한 이 짧은 시간에 셋이서 함께 기도를 하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고 고마웠다. 그냥 친구가 아니라, 친밀한 친구가 찾아왔기 때문이리라. 나의 많은 부분을(은밀한 구석까지도) 아는 친밀한 친구 말이다.

 인생에 외로움이 존재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외로움을 더할 수도 있고, 줄여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친밀함을 선택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외로움과의 적응을 넘어 외로움이 깃들지 않는 삶을 만들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친밀함에는 두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이 나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것은 아직 친해지지 않은 사람들과 노래방에 갔을 때, 한 번도 부르지 않은 노래를 선곡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힘든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Real Live를 들려주기보다는 이미 검증이 끝난 자신의 18번곡을 선택한다. 나는 지금, 안전하게 18번곡을 부르려는 이들에게 노래방에서 한 번도 불러보지 않았던 곡을 시도하라고 권하고 있다. 이것은 위험한 선택이 아님을 말하고 싶다. 단지 두려울 뿐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기

 친밀함으로 가는 길에 직면하는 문제는,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두려워한다. 학창 시절에 받은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친밀해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게 되면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조차 두려워한다. 이러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을 외면하고 기만을 선택한다. 외출하는 순간, 진정한 자아는 집에 남겨 두고 사회적 자아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식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매정하다. 악한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느낌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자신이 정말 두려움의 감정 때문에 어떤 일을 실패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분이 좋을 때 느끼는 감정이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듯, 두려울 때의 감정 역시 그 사람의 가치에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 나는 감정이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을 느끼는 사람들 중에는 대학교수, 유명 연예인 등 사회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많다. 감정은 사실과는 다르다. 감정을 사실로 받아들이면 우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인생길을 걷게 될 것이다. 감정이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실체가 무엇인지 살펴보라. 그것은 어떤 사실 때문이기보다는 막연한 감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두려움은 친밀함에 대한 두려움이다. 구체적으로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느낌’일 뿐이다. 느낌과 실제는 다르다. 용기를 내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면 두려움의 느낌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난다. 놀랍게도 사람들이 자신을 더욱 좋아하게 되거나 호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지혜롭게 드러내지 못하면 퇴보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최근, <2008년 독서 결산>에 관한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보보의 손을 거쳐간 책 : 100권 남짓 (읽다 말거나 완독한 책)
읽다만 책 : 90권 남짓 ('발췌독한 책'이라 적으려다 '읽다만 책'이라고 씀)
완독한 책 : 12권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책)

 2008년 읽다만 책
: '발췌독한 책'이라고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더 있어 보이니깐 ^^)
발췌독이라는 말에 깃든 전략적이고 계획적인 뉘앙스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그저 흥미에 따라 손에 잡은 책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기에.
'읽다만 책'이라 함은 책을 읽다가 다른 책으로 흥미가 옮겨가서 읽기를 잊어버린 책들,
인내심이 없어 끝까지 읽어내지 못한 책들을 말한다.
이것은 책이 안 좋아서라기보다는 나의 끈기 없음 때문이니 부끄러운 대목이다.

 ‘읽다만 책’이라는 표현을 쓸 때, 가벼운 고민이 들기는 했다. 독서 전문가로서 일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신뢰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나의 약점으로 생각되어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나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은 포장된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세상에 공헌할 수 있다는 믿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한 한다는 믿음. 모든 것을 다 갖춘 듯이 행동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낼 때 더 사랑스럽다는 믿음.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나는 유식한 것처럼 행동하며 인정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을 선택했다. 이 때, 나를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것은 가식적인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는 것보다 훨씬 유익한 일이다.

 이런 믿음과 선택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보보의 ‘읽다만 책’ 리스트를 보며 위안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는 분들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다. “솔직하게 남겨 주셔서 저도 큰 용기가 생겼습니다”라고 댓글로 적어 주신 분도 있다. 내가 인정받지 못할까 봐 염려했던 바로 그 점 덕분에 용기를 줄 수 있다니!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면 사람들1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다. 몇 가지의 사례가 더 있지만, 굵은 글자로 정리한 다음의 내용을 이해하셨다면 굳이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만큼의 친밀함을 경험하게 된다. 진짜 모습을 보여주어도 자신의 결점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울질 당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인간이구나, 라는 안도감을 느낄 것이다. 우리 모두 똑같은 두려움을 간직하고 있으니 누구든 한 명은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두려움을 이겨내어 친밀함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바로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의 처음에 소개했던 행복해진 그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맺으려 한다.그는 차마 꺼내기 힘든 부분까지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에게도 온갖 종류의 두려움이 있었을 테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용기였다. 한 사람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이 그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와 내가 친밀해지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친밀함의 정의를 되새겨 보라. 친밀함은 건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과정이라는 단어에 위로를 얻기를 바란다. 보다 나은 자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과정이다. 한 번에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절망하지 말자. 나 역시 쉽지 않지만 가치 있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가식적으로 행동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 버림받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매튜 켈리는 이것이 진정한 자아 존중이라 말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나는 진정으로 존중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두려움을 이겨내되 약간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서두르지 말고 조금씩 드러내라는 말이다.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드러내면 친밀해지지만, 조바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십여 년 전, 나는 별다른 이유도 없이 우리집 강아지를 발로 찬 적이 있다. 깨갱, 하며 저 만치 구석으로 도망간 놈을 한 번 더 찼다. 이 사건(?)의 전후로는 너무나도 아껴주고 예뻐해 주었던 나였으니 그 녀석으로서는 참으로 황당한 사건이리라. 이 사건을 친구나 와우팀에게는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보보의 해피레터에 이 사건을 이야기하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분들이 ‘보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다면, 내가 서둘렀기 때문이리라. (^^) 이 작은 고백이 적당한 속도이길 바란다. 만약, 내가 처음 만난 동물애호가에게 이 사건부터 말하는 것은 분명 과속이다. 나를 드러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지혜롭게’ 드러내는 데에는 완전 실패한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지혜롭고 건강한 방법에 관해서는 또 다른 글을 통해 소개하겠다.)

 

맺으며

  친밀함은 행복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인의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보보의 드림레터 7편(웹진 96호)에서 다뤘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더불어 사는 지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좋은 관계를 맺는 법(외부 세계), 다른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법이다(내면세계).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두 권의 좋은 책을 소개한다. 전자를 위해서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 인간관계론』을, 후자를 위해 매튜 켈리의 『친밀함』을 읽어 보시길.

 자신과 편안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편안한 관계를 만든다. 자신의 내면세계와 화해하고 친해지는 것, 그리하여 세상에 진짜 자신을 보여 주는 것은 어색한 일이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시도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다. 한 발짝 내딛으면 다음 걸음에 대한 용기와 아이디어가 생겨날 얻을 것이다. 가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거나 과정에서의 힘겨움이 느껴져 매력적이지 않아 보인다. 종교적 믿음을 실천하며 사는 길, 소중한 가치를 추구하는 길은 모두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길이다. 그러나 좋은 것을 얻는 길이다. 조금만 걸어간다면 몇 가지의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결실이 진짜란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은 계속 전진한다.
친밀함은 좋은 것이다. 그것도 아주 좋은 것이어서 은밀하게 감춰 두고 싶은 까닭에 오늘 글은 너무 많이 말하여 손해 본 느낌이다. 감춰 두고 싶은 이야기를 꺼냈기에. 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