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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찰력이 있으면 천 리 밖도 본다!

카잔 2011. 2. 13. 03:13

십 수년 전, 저는 목사님, 청년회장 그리고 20 여 명의 청년들로 구성된 팀의 일원으로 중국으로 선교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철저히 단체로 움직였습니다. 팀원들 중 어느 누구도 한 나절의 개인 시간이 없었습니다. 같은 사람을 만났고, 같은 음식을 먹었고, 같은 풍광을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매우 비슷한 경험을 하고 돌아온 것입니다. 선교여행을 다녀온 후, 당회에 제출한 보고서와는 별도로 목사님, 청년회장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교회 소식지에 글을 실었습니다. 허나, 그 글의 깊이가 어찌 그리 다르던지요. '나도 그걸 보았는데, 왜 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때,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경험이 인식에 도움을 주지만, 탁월한 인식은 경험 이외의 어떤 것이 필요함을.

같은 직장에서 10년차의 근무 경험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 있더라도, 다 같은 10년차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10년차다운 내공이 느껴지는 분이 있는가 하면, (과장스런 표현이겠지만) 1년차 같은 생활을 10년 동안 반복하신 듯한 분이 있을 수도 있지요. 무엇을 보고 체험하는가도 중요하지만, 보고 체험한 것을 어떻게 해석하는가도 중요하지요. 경험이 중요하지만, 경험을 해석하고 재가공할 수 있는 힘도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 저는 궁금했습니다. 힘의 근원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였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통찰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직관력에서 오는 힘입니다.

말하자면, 아래 글은 경험이 인식에 어떠한 기여를 하는지를 염두에 두고 쓴, 통찰을 다룬 글입니다. 8기 와우팀에 지원하신 어느 분에게 드리는 글이기도 하지요. ^^ 2007년에 쓴 글을 옮겨 와 봅니다.


1.
“1944년 6월, 나는 일본에 대한 연구를 위촉받았다. 일본인이 어떤 국민인가를 규명하기 위해서,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방법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다.”
일본 문화를 알기 위하여 꼭 읽어야 하는 명저 『국화와 칼』을 쓴 루스 베네딕트의 말이다. 미국 국무성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리고 종전 후 일본을 통치하려면 일본 사회와 문화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여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연구를 부탁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46년 결과물이 나왔다. 그 결과물은 탁월하여 일본 문화에 관한 명저가 되었다.

국무성의 위촉을 받은 그녀는 일본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하지만, 두 나라가 교전 중이기에 문화인류학자의 가장 중요한 연구 기술인 현지 조사를 포기해야 했다. 그랬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일본 땅을 밟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저서는 탁월했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일본 문화를 설명한 명저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통찰력이 있으면 먼 곳에서도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음을 베네딕트가 보여 주었다.

2.
갓 결혼을 한 마이크 메이슨이라는 젊은 청년이 제임스 패커(신학자)라는 대학자에게 책을 하나 쓰고 싶은데, 자신의 첫 번째 저서의 주제로'결혼'을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제임스 패커는 단호하게 반대했다. 결혼은 여러 인간관계 중 가장 복잡미묘하고 요구가 많은 관계로서, 결혼을 주제로 글을 지혜롭게 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니 갓 결혼한 처지에서는 잘 쓸 수가 없다는 것이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마이크 메이슨은 『결혼의 신비』라는 책을 썼고, 이 책을 제임스 패커에게 보여 주었다. 노 교수는 감격하였고 이 책의 서문에 기꺼이 추천사를 적어 주었다. 추천사에는, 결혼의 연륜이 짧은 사람은 결혼에 대하여 좋은 책을 쓸 수 없다고 주장한 것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용서를 구했다. 마이크 메이슨의 책을 읽으면, 경험하지 않아도 일가견을 제시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3.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사상가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1805~1859)은 현대 민주주의론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를 썼다. 1831년 5월 9일 미국에 도착한 그는 미국 민주주의의 실체를 눈여겨 보았다. 이 때 얻은 경험과 생각으로 쓰여진 『미국의 민주주의』는 당시 미국이 만들어가고 있던 새로운 정체제도를 정확히 꿰뚫어 봤다는 평가를 받았고, 1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고전이 되었다.

토크빌이 미국에 머무른 기간은 단 9개월이었다. 대작이 만들어지기에는 너무나도 짧은 기간의 방문이었던 것이다. 토크빌은 예리한 시각이 있다면 짧은 기간에도 많은 것을 볼 수 있음을 나타내는 사례가 되었다. 미국사에 대한 16권 짜리 전집을 출간한 강준만 교수도 한 강연을 통해, 짧은 방문 기간에도 많은 것을 보고 정리한 토크빌의 탁월함에 대해 극찬했다.


루스 베네딕트는 통찰력이 있으면 천리 밖에서도 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박경리 여사가 북한 땅을 한 번 밟아보지 않은 채 『토지』라는 대작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한 사례이다. 마이크 메이슨과 토크빌 역시 어떤 것에 대한 경험의 여부만큼 통찰력의 소유하고 있느냐의 여부도 중요함을 보여준다. 문제를 해결하고, 어떤 사안에 대하여 대가가 되기 위하여 경험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경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고, 대가가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탁월한 식견을 갖지 않으면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수 없고 문제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주견을 갖지 않으면 미국에 9개월이 아니라, 9년을 머물러도 토크빌과 같은 책을 쓰지 못할 것이다.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 치열함과 통찰력을 가졌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토크빌은 미국 여행을 마친 후 책을 집필하는 데 5년여의 시간을 투자했다.


사물을 보고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면, 상황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한다. 핵심을 건드리지 못하면 미봉책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 속에 뛰어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치열한 문제의식과 상황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는 능력, 탁월한 통찰력과 올바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 등이 있다면, 경험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짧은 기간만으로도 그 주제에 대하여 탁월한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공부하는 사람이 처음에 얻어야 할 것은 정보가 아니라, 그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 달간 정보를 꾸준히 수집하면 정보통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정보를 해석하여 재가공하지 못하면 지적 생산물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독서의 일차적인 목적도 정보 수집에 있지 않고, 사고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데에 있다. 그래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예리한 관찰력으로 전체를 보아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 그것이 통찰이다. 『국화와 칼』도 『미국의 민주주의』도 『결혼의 신비』도 모두 저자들의 탁월한 통찰력이 만들어 낸 역작인 것이다.

저는 강사 혹은 컨설턴트라는 직함을 달기엔, 어린 나이에 이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젊음의 미숙함이나 오만이 아니고, 열정과 자신감에 의한 결정이라 생각했습니다. 젊음도 심오할 수 있고 통찰력은 경험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으로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증명하지 못하였기에, 이 글을 읽을 때마다 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게 됩니다. 통찰력은 독학과 평생 학습에 대한 제 삶의 푯대이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여기에 분석력을 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위나 자격증을 뛰어넘는 진짜 실력을 갖고 싶은 게지요. 4년 전의 글을 읽으며,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내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