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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가 책을 던져버린 이유

카잔 2011. 2. 19. 18:25

보물이 숨겨진 피라미드를 향해 사막을 건너고 있는 청년 산티아고. 그는 양치기였던 시절부터 늘 책 한 권을 들고 다녔다. 지루할 때면 꺼내 읽기도 했고, 책을 베개 삼아 잠을 자곤 했다. 그러나 사막 위의 산티아고에게 책은 무게만 나가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 책 읽기보다는 대상 행렬을 바라보거나 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낙타를 더 잘 알고 싶기도 했다. 그는 책을 던져 버렸다. 여기에는 책만 들여다보는 영국인이 한 몫 거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른 아침에 하늘에서 그 별자리가 빛나는 것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알았다. 이제 여자들과 물과 야자수들과 종려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하게 되리라는 것을. 거의 책만 들여다보고 있던 영국인만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문학동네, p.128

 

파울로 코엘료는 독서의 한계를 말하고자 했다. 독서의 한계를 언급한 작가들은 많지만 굳이 그들의 이름을 들먹일 필요는 없다. (다치바나 다카시, 마르셸 프루스트 등) 나의 삶을 돌아보더라도 독서'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회의 시간만 되면 침묵에 빠지곤 했다.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이 침묵 이상의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멋진 조언을 실천하려고 노력한 건 아니다. 오히려 뭔가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제안하여 상사의 눈에 들고 싶었다. 나의 입술은 속마음을 전혀 모르는 듯 좀처럼 말을 떼지 못했다. 대학생이었을 때 적지 않은 책을 읽었는데, 독서를 하면 말을 잘 하게 된다는데...

 

문제는 최소한 두 가지였다.

1) 나는 '조사'하는 독서를 했다. 회의 안건이 주어지거나 보고서 작성을 할 때면, 책을 뒤적였다. 책에 정답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리 회사와 똑같은 사례가 없었던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있었다. 똑같지 않았기에 그대로 수용하기보다는 회사의 상황을 분석하여 창조적으로 적용해야 했다. 나는 '조사'하는 독서와 함께 '생각'하는 독서를 해야 했다. 책에는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힌트가 있었기에. 즐거움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독서라면 마르셸 프루스트의 말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독서는 우리를 정신적 삶으로 인도하지만 정신적 삶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저자의 '종결'이 독자들의 '종결'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삶의 '자극'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사고'로 이어갈 수 있다면 내가 겪었던 실수를 뛰어넘을 수 있으리라. 퀴즈 프로그램에 출전한 것이라면 책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삶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책에서는 힌트를 얻는다는 태도를 가지는 게 나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독서의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힌트는 아주 구체적이고 통찰을 지닌 것들이 많기에 '굉장한 힌트'라고 부르고 싶다. 그 힌트를 갖고 생각을 펼쳐나가면 된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상황에 대한 생각 말이다. 자신과 조화로운 연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아야 하듯이, 문제를 해결하는 독서를 하려면 자신의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은 나의 두 번째 문제와 연결된다.

 

2) 나는 외부 세계를 관찰하지 못했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법도, 그것이 유익한지도 몰랐다. 지금은 열심히 배워가는 중이다. 코엘료는 그것이 무엇이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산티아고의 입술을 통해 외부 세계를 관찰하는 것이 무슨 유익을 주는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여 준다.

"난 대상 행렬이 사막 건너는 것을 쭉 지켜봤어요. 대상 행렬과 사막은 같은 언어로 이야기해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을 건너갈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이겠지요. 사막은 대상 행렬이 자신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나는 곳마다 끊임없이 시험을 해요. 만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면 대상 행렬은 오아시스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겠지요. 우리들 중 누군가가 아주 대단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러한 사막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여행은 시시각각 엄청난 고난의 연속일 거예요." (『연금술사』 문학동네, p.135)

 

영국인은 산티아고의 말에 마음이 움직인 것 같다. 그가 말한다. "이제부터는 나도 행렬을 좀 더 주의 깊게 지켜봐야겠군." 내가 몇 년 전에 했던 말이기도 하다. 산티아고가 대꾸한다. "나는 선생이 갖고 있는 책들을 읽어야겠어요." 두 사람이 대화가 조화로운 느낌이다.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책을 읽는 것에서도, 삶을 읽는 것에서도 배움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책 읽기와 세상 읽기의 조화를 이루면 된다. 말은 참 쉽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현하기는 어려운 단어들의 목록을 만든다면, '조화'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온갖 가치 있는 단어들이 모두 그렇다. (몹쓸 일로 여겨지기도 하고, 이것이야말로 삶의 모험이요 즐거움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비율로 섞어야 A(책읽기)와 B(세상읽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인가. 이것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드러커의 메시지를 알아 두는 것은 이 문제를 숙고하는데 필수다. "자신이 배우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드러커는 읽으면서 배우는 이, 들으면서 배우는 이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읽으면서 배우는 사람이라면 A의 비율을 높여야 한다. 반면, 독서가들은 종종 현명한 비독서가들을 만난다. 분명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인데, 자신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B의 달인들이다. 물론 코엘료도 조화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연금술사』의 141~142페이지는 A와 B의 조화에 대한 그의 통찰이 기막히게 서술된 장면이다. 산티아고의 독백은 이 글의 주제인 책 읽기와 세상 읽기의 조화에 대한 결론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배우는 거야. 저 사람의 방식과 내 방식이 같을 수는 없어. 하지만 우리는 제각기 자아의 신화를 찾아가는 길이고, 그게 바로 내가 그를 존경하는 이유지.'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문학동네, p.142


- 2009. 10. 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글 : 자기경영지식인/ 와우팀장 이희석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