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복무 시절도 즐거울 때가 있습니다. 화장실에 앉아서 몰래 챙겨 둔 간식을 먹을 때, 10시 취침 방송이 울릴 때, 애인으로부터 편지가 왔을 때 등입니다. 그리고 나의 경우는 부대에서 강연을 하게 될 때도 즐거웠습니다. 강사 경력이 있다는 이유로 종종 강연 기회가 주어졌던 게지요. 강연을 듣고 난 고참들은 나를 불러 '상담' 비슷한 것을 요청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에도 나는 즐거웠습니다. 장소는 부대 안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의미 있게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상담 일화는 훈련소에서의 일입니다. 동기생 P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애인이 변심할까 봐 노심초사 불안해하던 장병입니다. 삼십 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는데, 나는 그의 말만으로는 애인 걱정을 그리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어 물었습니다. "뭐가 그리 걱정 돼? 괜찮은 아가씨구만. 혹시 내게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어?"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그의 걱정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날까 봐 혹은 자신을 속이고 잠자리를 함께 할까 봐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다.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사이, 나는 P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연인이 아닌 여성과 여러 번 잠자리를 함께 했고, 때로는 이를 감추기 위해 여자친구에게 거짓말도 여러 번 했다는 말을 들려 주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P가 연인을 의심하며 힘겨워하는 것은 자신의 은밀한 말과 행동으로 연인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누구든 자기 삶을 벗어난 해석을 하기는 힘듭니다. 정치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어떤 행동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자신이 그 상황에서 정치적 행동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정치적 목적 이외의 다른 개연성을 상상할 수 없다면, '인간은 거기서 거기'라는 해석에 머무르고 만다면, 낭만주의자들이 인간을 지나치게 선하게 해석하는 것과는 또 다른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본성을 지녔지만,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선한 의지 또한 품고 있으니까요.

P는 자신의 부정직함 때문에 연인을 믿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체험은 해석에 영향을 미칩니다. 산악회에서 불륜에 빠진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산악회 활동을 한다고 하면, 펄쩍 뛰게 됩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조금씩 포기하며 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을 불신하게 되고 인생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입니다. 반면 아름다운 가치를 힘써 실천하며 살면, 마음의 평안을 지켜내는 일과 사람을 신뢰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오늘 나는 '정직'이라는 가치로 그것을 보여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정직은 도덕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적인 가치가 아니라,
우리에게 삶의 평안과 상호 신뢰를 안겨다 주는 실제적인 가치입니다.


정직을 회복하기 위해, 지금에 와서 예전의 부정직에 대하여 이실직고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실을 밝히는 행동이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정직의 실제적인 효용과 가치를 깨달았다고 해도, 고백을 하는 일은 또 다른 지혜가 필요합니다. 나의 고백이 그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해방만을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그 부정직에 대해 침묵하며 앞으로의 삶에서 정직을 지켜가겠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말의 고백보다 침묵이 지혜로운 경우입니다.

우리가 자기 삶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해석자가 되고 싶다면, 다시 말해 사회 현상의 본질을 파악하여 멋진 의견을 개진하고 싶다면, 먼저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문제를 해석할 수 있을 테니까요. 너무 순진할 정도로 긍정적인 해석만 가지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민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이기적 본성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의견을 내놓는 것은 내 관심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 터이니 나는 이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자는 말은 당신께도 적용되는 말이라고. 그것은 우리 마음의 평안과도 관련된 일이니까요. 정직하고 성실하고 사랑을 실천하려는 노력이 행복과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소득의 증가가 행복의 증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재정적인 안정은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이라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더 높은 목표란, 더 잘 사는 것(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입니다. 에우다이모니아에 이를 수 있는 12가지 가치(용기, 관용, 정의, 정직, 온유 등)를 제시했습니다. 긍정심리학자 피터슨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관련요인 연구(2006년)에 의하면, 나이, 수입, 사회계층 등은 낮은 상관도를 보였고 직업만족도, 자존감, 감사 경험 등이 높은 상관도를 보였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은 자존감과 감사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종종 P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계속된 부정직한 생활로 더 많은 의심을 하며 살아갈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멋진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사람이 지닌 위대한 가능성입니다. 드문 일이지만, 사람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부정직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함으로 평안을 만끽하고, 사람들을 신뢰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나 그리고 이 글을 읽은 모든 분들이 말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자기경영지식인 이희석 유니크컨설팅 대표 ceo@younicon.co.kr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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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뜻 2011.11.19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담고 있는 주제가 마음에 와닿아, 읽고 또 읽습니다.
    깊이있는 메시지와 탄탄한 전개에 시선을 뺏겼어요.
    곱씹어봐야 할 글입니다. 유익한 글 고맙습니다. ^ ^

  2. 보리 2011.11.20 2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보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논지가 명확한 흐름에 감탄할 때가 많아요.
    오늘 글도 막힘없이 진지하게 읽어내려오니 그저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지막 문장..마음 깊이 담고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매번 삶에 대한 열정과 따뜻한 시선..을 일깨울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보보 2011.11.22 11: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결같이 나를 신뢰해 주고 지지해 주어서 나도 감동합니다.
      매번 글을 읽어 주고, 고민해 주어 감사합니다. ^^
      더 좋은 글을 쓰는 것이 제가 보답하는 길이겠지요.

  3. 인디 2011.11.21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가 자기 삶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좋은 해석자가 되고 싶다면,
    먼저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라는 말,
    참으로 기차 찰 정도로 멋집니다.

    멘토/코칭/카운셀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이 무엇인가라는 정의를 새롭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었습니다. 최근에 본 글 중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

    • 보보 2011.11.22 12: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러한 긍정적인 피드백, 고맙습니다. ^^
      필요한 자질에 대하여 공감해 준 것도 기쁘네요.
      종종 '매력적인 글'을 써서 인디님의 댓글을 부르고 싶군요. ^^

  4. 김태종 2011.11.22 0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데이비드 허친스가 쓴
    네안데르탈인의 그림자...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사고 모델...
    우리가 우리 자신과 세상, 조직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에
    적응해가는 방식에 대해 가진 신념, 이미지, 가정....

    팀장님의 글을 읽으면서, 물론 자신의 삶 속에서 아름다운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야 겠다는 생각도 컸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만의 삶의 경험으로... 인식으로...
    만들어진 사고 모델속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기에
    내 삶속에 함께 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고 평안을 만끽하고, 서로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내 자기세계속에서 명확히... 그리고 넓게 그들을.. 세상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사고모델은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를 결정하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를 결정하게 해주기에
    조금 더 다른 사람을 이해할 때, 그리고 무엇인가
    그 사람의 인생에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자 할 때(상담, 코칭등)
    다시 한번 그들의 인생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그들에게 적합하게 다가가 변화를 일으킬수있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보보 2011.11.22 12: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 아름다운 가치 추구.
      자기 삶의 어두운 구석으로 선을 놓치지 않으려면.

      - 세상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관찰.(이기적 본성과 선한 의지)
      그래야 인간의 낭만과 야만 모두를 균형있게 살피니까.

      - 인간의 다양성 대한 이해.
      사람의 다양성을 이해해야 적합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으니.

      - 사회 구조에 대한 지식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으니까.

      좋은 해석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All 은 아니겠지만, A part 는 될 만한 것들입니다.

  5. 김태종 2011.11.22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론 무엇보다 가장 지금 제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정직해지고,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하는 것...
    정직해 질 수 있고, 아름다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김태종임을 믿는 것...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부정직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는
    팀장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습니다.

    좋은 삶이 탁월한 해석을 낳는다.
    자기 체험의 범주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by 이희석.

    • 보보 2011.11.22 12: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 삶이 탁월한 해석을 낳는다.
      자기 체험의 범주로 세상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by 이희석.

      이리 써 놓고 나니, 그럴 듯 한 걸요. ^^

      어제보다 더, 지난 달 보다 더,
      앞으로는 더욱 더 나아질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선한 의지를 선택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악화(^^)될 수 있는 우리들이기도 하니까요.

  6. 맘모스 2011.11.24 2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도 부하직원 앞에선 아무 말 안하고 퇴근길 친한 직원에게 열심히 부하직원에 대한 불평불만을 토로했건만, 생각해보면 그 부하직원에게서 저의 모습을 발견해서 그런 건 아닌지 싶네요. 일명 투사라 하는 거겠죠? 하지만 그녀에게도, 또한 저에게도 분명 가능성이 있기에.. 지금 경험하는 이 어려움들을 지혜롭게 바라보고, 함께 해결할 수 있겠지요?
    정직의 힘을, 신뢰의 힘을 믿습니다.^^

    • 보보 2011.11.25 19: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혜롭게 바라보는 것도, 해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용기를 내어 그녀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면
      그 속도가 빨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특히, 그녀가 사고형이라면 홀로 고민하지 마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