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2012년에 읽은 10권의 책

카잔 2012. 12. 25. 16:58

 

한 해 동안 200권 남짓의 책을 읽었습니다. 읽는 책들은 모두 기록하는 편이라 비교적 정확한 권수를 알 수 있습니다. 200권을 모두 끝까지 읽은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책은 읽다가 관두었고,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빠짐없이 읽은 책은 10권 남짓입니다.

 

끝까지 읽든, 일부를 읽든, 읽은 책들은 내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칩니다. 2012년에 읽은 책들 중에서 내게 영향을 미친 책 10권을 꼽아 보았습니다. ‘가장 큰’ 영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향을 수치화할 객관적인 기준도 없고, 영향력의 존속 기간을 가늠하기에 1년이라는 기간은 다소 짧으니까요.

 

10권은 추천 목록은 아닙니다. 책을 좋아하는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한 해 동안 읽은 책들에 불과합니다. 내게는 재미와 유익을 주었지만, 여러분께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목록일 겁니다.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아마도, 여러분이 읽은 책들의 목록을 살피고 기억에 남아있는 책들에 대해 뭔가를 끼적여보는 것일 테지요. 귀찮더라도 의미 있는 작업일 겁니다.

 

아래, 나의 끼적임이 참고 혹은 자극이 되면 좋겠습니다.

 

 

1.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소설 속의 산티아고는 영웅이다.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영웅. 균형과 중용이 무엇인지 아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나는 현실과 이상, 의지와 감성 사이의 절묘한 균형 지대에 머물 줄 아는 산티아고의 모습에 반했다. 헤밍웨이의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의 힘을 맛본 것은 보너스였고.

 

2. 켄 윌버의 『켄 윌버의 일기』와 『무경계』

자기계발 서적들은 성취 지향의 메시지로 가득하지만, 진정한 자기실현은 존재를 고양시키는 수행이 더해질 때에만 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중, 『켄 윌버의 일기』를 읽으며 그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게 되었다. 켄 윌버는 이론의 대가일 뿐만 아니라 수행의 대가다. 이론과 실천의 균형점에 이르면 『무경계』와 같은 깊이 있는 책을 쓸 수 있나 보다.

 

3.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세계문학 중에는 읽기 힘든 책도 많지만,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도 많다. 『안나 카레니나』는 후자다. 첫 대목부터 흡입력이 있고 스토리를 따라가는 것도 즐겁다. 가장 큰 재미는 작가의 두 분신, 레빈과 안나를 통해 톨스토이의 사상을 찾는 즐거움이다. 150년 전에 쓰인 엄청난 분량의 소설이지만 지금도 읽을 가치가 있다. 시대를 초월한 화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대문호의 생각이 담긴 작품이기에.

 

4. 존 맥스웰의 『사람은 무엇으로 성장하는가』

2012년에 읽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가장 유익한 책이었다.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지는 못했다.) 책에 실린 사람을 성장시키는 15가지의 비결은 하나같이 유익하고 실제적이다. 나는 한 주에 한 챕터씩 힘써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간헐적이지만 끊이지 않고 실천하는 중이다.

 

5.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승옥의 단편 <무진기행>과 <차나 한잔>을 읽었는데, 이 잔상이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증상은 그저 멍해진다는 것. “나는 한동안 김승옥에 대한 질투로 시달려야만 했다. 그의 반짝이는 감수성을, 예리한 분석력을, 천재적인 구성력을, 그리고 정직한 부끄러움을.” <김승옥 소설의 작가의식 연구>로 박사논문을 쓴 서연주의 말이다. 이 말을 통해 내 멍함의 정체 일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질투였다. 하지만 멍함의 대부분은 감탄이었다.

 

6. 박지원의 <연암집>

조선 최고의 문장가이자 소설가인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는 재미는 컸다. 그는 후대의 무명 독서가에게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내 사유의 힘을 키워주었고, 문장의 세계가 얼마나 넓은지 보여주었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연암 선생처럼 쓸 수는 없지만 나답게 쓸 수는 있겠다, 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답게라도) 글을 쓰며 살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7. P. G. 해머튼의 『지적 즐거움』

10년 전에 알게 된 책을 이제야 읽은 것이 후회될 만큼, 지적 생활에 대한 다양하고 구체적인 조언을 얻은 책이다. 나는 책을 읽으며 공부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공부를 즐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비교한 글은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주었으니까.

 

8. 한병철의 『피로사회』

사유가 단단한 사상가의 글은 짧아도 강력하다. 세상을 통찰하는 눈이 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가 그렇다. 주저리주저리 길기만 하고 건질만한 사유가 없는 나의 글과는 차원이 다른 책이다. (비교조차 민망하다.) 긍정이 만연한 현대사회의 병폐에 대한 통찰도 좋았지만, 저자의 논리적인 사고력만으로도 값진 책이었다.

 

9. 고명섭의 『담론의 발견』

한겨레 문화부 기자의 서평집이다. 녹록치 않은 150권의 책에 대한 서평이기에, 다루고 있는 책을 다차원적으로 분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나) 내게는 서평집은 매력적인 장르다. 읽을꺼리를, 동기를 부여하며, 선사해 주기 때문이다. 서평집을 읽고 나면 더욱 공부하고 싶어진다. 어차피 공부란 다른 이들로부터 배운 것에 자신의 노력을 더해가는 일이니, 동기부여와 책 소개만으로도 좋은 길잡이가 된다. 고명섭은 나에게, 일급 길잡이다.

 

10. 이이의 『격몽요결』

조선의 대학자 율곡 선생(1536~1584)이 후학들을 위해 쓴 유학 입문서다. 10개의 장으로 이뤄진 책인데, 첫째 ‘입지(立志)’장에서부터 매혹을 느꼈다. 뜻을 세우고, 아는 것을 분명히 하여, 꾸준히 실천한다면 자신의 최선에 이르러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배웠다.

 

- 새해에도 여전히 읽고 끼적일, 조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