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분노를 다루는 두 가지 근원

카잔 2013. 12. 26. 12:32

 

1. 자기 외로움을 창조하는 자

 

홀로 있다고 해서 외로운 것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친한 사람(이를 테면, 아내, 여자친구, 절친)도

자기를 잘 알지 못하는 자가 외로운 자다.

 

타인을 이해하기란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어서

그들에게 진솔하지 못다면, 그들이 나를 아는 일은 더욱 요원해진다.

우리는,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할 때마다, 조금씩 외로워져간다.

 

 

 

2. 분노를 다루는 두 가지 근원

 

첫째는 자기 안의 가치를 추구함이다.

이를 테면, 인내, 사랑, 관용, 배려와 같은 가치들을.

이들 중에서도 현명한 이들은 또 다른 가치인 '정직'과 '용기'마저 추구하여

분노를 참다가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하거나 내면이 시들어버리는 참사를 피해간다.

 

소금은 물에 녹지만, 흙은 녹지 않고 쌓인다. 

가치 추구자는 용해되지 못할 분노에 대해서는

배려, 정직, 용기를 섞어 자신의 분노를 건강하고 지혜롭게 표현한다.

 

분노를 참는 둘째 근원은 다른 이들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쓰는 것이다.

 

이들은 용해되지 않은 흙과 같은 분노를 마음에 쌓아간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인 자는 그렇게 자신의 내면세계를 파괴해간다.

문제는 그들 내면의 파괴가 종종 다른 이들에게 표현되고 전이된다는 것이다.

 

(분노에 대한) 마음의 용해성을 키워야 한다.

자기 내면에 더욱 많은 것들을 용해시켜

왠만한 일에는 분노가 일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말이다.

 

많이 용해하기를 추구하되,

용해되지 않은 것들은 표현해야 한다. 

표현의 지혜와 기술을 키우는 것이 우리 범인에겐 적합한 일이다.

 

 

3. 사람이 변한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청난 눈발이 세상을 뒤덮을 기세로 내린 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세월의 녹이 끼인 채로 살아가는 우리를 정화시킬 '인생의 눈발'은 없을까?

하지만 눈발은 일종의 기만이다. 최대의 폭설도 뒤덮을 뿐, 변화시키지는 못하니까.

내면의 변화와 성장 없이 외면을 살짝 덮는 자기기만의 기술은 지양하련다.

 

그런데 내면의 변화와 성장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정말 가능하기나 한가?

무지 무지 어렵다면, 그것은 가능과 불가능을 양끝으로 한 스펙트럼에서

불가능 쪽에 훨씬 가까운 지점에 위치한다면, 

자기경영 담론은 변화의 가능성을 너무 나이브하게 낙관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로 그렇다면,

변화와 도약은 '본질의 변화'가 아니라 '위장술'로 이뤄지는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을 속이기 위함이 아니라, 어제의 자기를 속이기 위한 위장술.

자기 연약함을 잊을 정도로 신실하게 강인함을 추구하는 열심!

 

어떤 것을 미워하면서 닮아갈 때가 있다.

어떤 것을 사랑하고 추구하면서도 닮아가지 않을까?

 

비록 내면과 본질은 변하지 않았더라도, 

일년 365일 중에 350일 이상을 사랑하고 추구한 것들을 발현하며 산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간에게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화론이 아닐까? 

눈발이 날마다 내리면 세상이 하얀 색을 벗어던질 틈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