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충분한 연대 충분한 독립

카잔 2013. 11. 23. 18:32

 

1.

충분히 연대해야 하고 충분히 독립적이어야 한다.

최인훈의 <광장>은 연대와 독립의 균형을 다룬 소설이다.

작가는 1961년 서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했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이 말이 내게 울림을 준 것은 내가 광장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허나 그가 저 말만으로 그쳤더라면 감동은 이내 시들었을 테다.

광장에서만 살아서는 피상적인 사람이 되기 십상이니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이 두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2.

누구에게나 밀실에서 광장에 이르는 '골목'이 필요하다.

자신의 영혼에 독립이 필요한지, 연대가 필요한지 기민하게 살펴

광장에 이르는 골목, 밀실로 들어가는 골목을 뛰어다니고 싶다.

 

"골목길 접어 들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 뒤의 소녀 때문에 가슴이 뛴 신촌블루스의 싱어처럼,

나도 골목길을 들어설 때마다 내 영혼의 성장을 꿈꾸며 가슴 뛰고 싶다.

광장으로 내달리는 역동성을, 밀실로 걸어드는 고독함을, 모두 취하고 싶다.

 

사유가 결여된 연대는 나를 잃어버리기 쉽고   

세상물정 모르는 독립성은 벗을 놓치기가 쉽다.

 

3.

윤대녕의 단편 <상춘곡> 화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야 알 듯 합니다. 사람이 혼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강해서가 아니라 독해서일 거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모든 사람의 '혼자있음'이 독해서만은 아니리라.

오쇼, 법정 스님의 삶을 독함으로만 해석할 순 없을 테니까. 

하지만 어떤 이의 혼자있음이 강인함 덕분이 아닌 나약함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 나약함을 보이기 싫어 더욱 밀실로 숨어드는 독함일 수도.

 

'와우'라는 연대의 공간이 없었다면 나는 독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렇지는 않으리라. 또 다른 연대의 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거란 생각이다.

나는 내 영혼이 정체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사람은 아니니까.

 

오쇼의 책 <The Book>에서 '홀로있음 Aloneness'에 대해 읽은 게 떠올랐다.

펼쳐보니, 곳곳에 보이는 밑줄과 메모가 당시(2008년)의 내 공부열을 보여준다.

5년 전의 내가 쓴 메모들 속에서 실망과 경탄을 모두 맛본다.

 

당시의 고민을 지금도 여전히 하고 있음을 발견한 것은 실망이다.

지금의 성장이 그때의 고민 덕분임을 발견한 것은 경탄이다.

내 노력에 경탄하고, 내 미진한 성장에 실망한 것.

 

"홀로 있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다.

또한 사랑에 빠진다는 것, 즉 타인과 함께 있다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둘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 관계에 있다.

선택하려고 하지 말라. 선택하려고 애쓴다면 난관에 봉착할 것이다.

둘 다 가질 수 있는데 왜 하나만을 갖는가?" - 오쇼

 

4.

오쇼는 홀로 있는 것을 좀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과 함께 있는 것을 사랑에 빠진다와 동일시한지도.

메일을 주고 받는 친구가 내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듣는다는 건 무엇인지?

 

나는 답했다. 그것은 내게 사랑이라고. 왜냐하면 듣는 일은 힘들다고.

때론 솔루션이라는 명목으로 내 의견을 내놓고 싶고

때론 답답하여 그만 듣고 싶을 때도 있다고. 

 

하지만 조언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는 것만이

그에게 필요할 때가 많아 나는 들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그런 게 아니고 애정을 가진 사람에게만 그렇다고 덧붙였다.

 

5.

광장이 좀 더 편한 사람이 있을 테고

밀실이 좀 더 편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편하지 않은 곳에 있기란 좀 더 힘이 들 터이고.

 

그 힘겨움을 넘어서게 만드는 게 사랑이 아닐까?

밀실에 있는 이에겐 연대와 실천을 향한 사랑이

광장에 선 이들에겐 고독과 사유를 위한 사랑이 필요할 것이다.

 

밀실에 있는 이가 자신에 대한 사랑에 빠졌고

광장에 머문 이가 타자에 대한 사랑에 빠진 것은 아닐 것이다.

밀실에서 애정의 편지를 써서 보낼 수도 있고

광장에서 자기 낭만에 빠져 활동하는 이들도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