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자유로운 단상노트

내 글은 곧 나인가?

카잔 2013. 10. 18. 12:16

 

1.

“우리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한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된 것의 귀결로써 세상을 바꾼다.” - 데이비드 호킨스

 

몇몇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일에는 말이나 행동으로도 가능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은 존재만이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호킨스의 저 말이 좋다.

나는 무언가를 바꾸는 일보다 내가 크고 깊은 존재가 되어가기를 바란다.

 

2.

작가는 그의 작품과 동일한가?

 

나는 아직 작가라고 할 만한 책을 내놓지 못했지만, 내가 쓴 글들 중 그나마 양질의 것을 모아 출간하더라도 나는 항상 내 작품들보다 큰 존재이고 싶다. 누군가가 나의 직업적 성과를 내 책만으로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를 알고자 한다면, 와우팀원들의 말을 들어주고, 내 블로그도 읽어주면 좋겠다. 나를 좀 알아주쇼, 하고 애원하는 게 아니다. 작가들 중에는 그의 작품보다 많은 걸 품고 사는 작가가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  뿐이다.

 

작품이 작가를 능가한 경우는 없는가?

 

있다. 그것도 많다. 문학계에서는 미당 선생이 으레 그 불명예의 자리를 차지한다. 미당 선생의 『화사집』은 20세기의 최고의 시집 중 2위에 선정됐다. (문학세계사 선정, 1위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는 뛰어났지만 미당 선생의 삶은 비루했다. 장석주는 시인의 사회 참여를 두고 "생전의 서정주가 취한 어리버리한 정치 행적"이라 표현했다.

 

3.

니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와우의 핵심 테제가 된 명제들 중의 일부는 니체의 글을 읽다가 뽑아낸 것들이다. 그 중의 하나인 "오늘의 그로 보라"도 마찬가지다. 니체의 입문서로 제 격인 『이 사람을 보라』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첫번째 말고도 두번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아니 아마 세 번째 얼굴도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말한다. "나의 작품과 나를 혼돈하지 말라."

 

예술가의 삶과 작품은 분리할 수 있다. 미당 선생의 삶이 작품처럼 빛날 것이라 생각하지도 말고, 니체의 책 한 권을 읽고 니체를 잘 알게 되었다고 여기지도 말아야 한다. 작품이란 어느 순간의 예술 정신이 표현된 것이고, 삶은 그 찰나보다 훨씬 큰 것이다. 허나 드문 일이지만 어떤 작가는 찰나의 순간에 자신의 전 생애를 압축하여 찬란한 작품으로 탄생시킨다. 요컨대, 어떤 이는 작품이 크고, 어떤 이는 삶이 크다.

 

4.

루소가 자신의 아이를 고아원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찌 루소의 작품을 읽겠냐며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견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작가와 작품의 관계라는 본질에 독자의 반응이라는 비본질적 요소를 집어넣은 범주의 오류요, 인간의 변화무쌍한 감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감상적인 태도다.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형편없는 삶의 모습을 보며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작가의 실존에 대하여 진지하게 접근한 것이 아니다. 작가의 삶은 작품과 동일해야 한다는 지나치게 순진한 환상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생각이 깨어질 때마다 다소 감정이 상하여 한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감성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지만, 감상주의는 종종 본질을 흐린다.   

 

5.

결론! 작품과 작가는 동일하지 않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전제와 함께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작품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작가 자신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종종 그 작가를 뛰어넘기도 하고 (미스테리한 일이다), 어떤 작가는 항상 자신의 작품보다 앞서 나간다.

 

명실상부!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내가 꿈꾸는 삶이기도 하다.

나는 뛰어난 글을 쓰고 싶고, 항상 나의 글보다 훌륭한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