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거북이의 자기경영

이대로 끝이라면 아쉽지

카잔 2015. 3. 6. 16:24

또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하고 말았다. 읽지도 못할 책을 사들이고, 중요한 일들을 내일로 미루고, '언젠가 해야지'라는 생각을 남발하고 있다. 며칠 동안 그랬다. 내 고질병이다. 번개같이 찾아든 후회를 붙잡았다. 목욕재계하고서 '골목길의 오아시스 낙랑파라'에 왔다. 멋진 카페가 넘쳐나는 동네에 산다는 것은 일상의 축복이다. 때로는 환경이 축복을 선사하지만, 진하고 지속적인 축복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법. 나는 이곳에서 삶의 비평 시간을 갖기로 했다. 비평노트를 펼쳤다.

 

3월에 최대한 집중할 일들의 목록을 적었다. 한 페이지를 채우고 나니, 다음과 같은 말들이 파편처럼 노트에 쓰였다. - 매일 2시간은 쓸 것. 거르지 말고 무리도 말고. - 삶은 구본형처럼 쓰고 여행하고. 거기에 치열한 공부를 더할 것. - 벤야민처럼 공부하고 손택처럼 쓰기 - 눈물이 나더라도 상실을 넘어설 것. 안타깝더라도 다시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들 것. - 스스로에 대한 측은지심을 버릴 것. - 영원히 살 것처럼 굴지 말 것! (노트의 한쪽 페이지는 비워 둔다. 실천의 경과들을 기록한 여백이니까.)

 

문득 세 인물이 떠올랐다. 카프카(1883~1924)는 폐결핵으로 마흔 둘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벤야민(1892~1940)은 마흔 아홉의 나이에 스페인 국경을 건너다 자살했다. 카뮈(1913~1960)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여 작가적 삶의 정점에 오를 때 교통사고로 비운의 삶을 마쳤다. 마흔 여덟의 나이였다. 모두 쉰이 되기 전에 삶을 마감했다. 삶이 마감된 사연이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윤리적 측면에서는 중요할 테지만, 호모 사케르의 관점에서는 그저 삶에서의 퇴장일 뿐이다. (아!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친구 P 생각)

 

절친했던 P는 서른 일곱에, 나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을 어머니는 서른 아홉에 세상을 떠났고, 걸출한 저 예술가들과 비평가는 사십 대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삶의 끝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다. 적어도 이렇게 글을 쓸 때만큼은 그렇다. 다만 행하지 못한 일이 아쉬울 뿐! 로버트 노직의 말마따나, 삶의 마지막 순간에 느끼는 아쉬움은 해낼 수 있는 일을 행하지 못한 것에 비례할 것이다. 내가 과대망상에 도취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수 있는데도 행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다. 집필, 여행, 만남... 노력... 삼십 대 후반을 살고 있는 내게 삶이 문득 끝난다면, 나는 무척 아쉬울 것이다.

 

방금 연구원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시간이 되느냐는 말에 3월에 남은 두 개의 저녁 일정 중 하나를 내어주었다. 무엇 때문에 만나는지는 모르지만, 한때 마음을 나누었던 선후배 지간이니 불편함은 전혀 없다. 나는 왜 누군가에게 이렇게 먼저 연락하지 못할까? 아침에 읽은 주철환 PD의 인터뷰 기사가 떠오른다. 그는 강연 말미나 책에 메일 주소를 알려주며 “나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연락하라"고 말한단다. 내게도 사람을 향한 열린 마음은 있지만, 그처럼 적극적인 태도는 부족하다. 그래서 만나고 싶은데도 그러지 못한 사람이 많다.

 

내 모습에 답답해진다. 실행하면 그만인 것을 또 이렇게 글이나 쓰고 있다니! 아니 나를 들볶지 말자. 실행을 위한 예열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달래주자. 이번 문단을 마지막으로 글을 맺으리라. 만나고 싶은 이에게 전화하여 약속을 잡고, 여행 계획을 세워 일정을 비워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부지런히 글을 쓰는 삶! 이것이 무어 그리 어렵다는 말인가. 하나를 덧붙여야지. 노력하는 삶! 나는 공부가 즐겁다. 애로사항이 없는 건 아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기에 진짜 공부꾼에 비하면 늦깍이다. 작가로서 걸작을 쓰고 싶지만 그만한 실력이 못 된다. 내게 노력이 필요한 까닭들이다. 

 

허걱. 문단이 끝났다. 나는 간다. 실행하러.

 

'™ My Story > 거북이의 자기경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기실현의 3단계  (1) 2015.03.17
자기 발견을 위한 꿀팁  (1) 2015.03.09
자기경영의 세 가지 정수  (0) 2015.02.23
리더십의 종합예술, 위임  (2) 2015.02.15
최고의 자기경영 신간들  (0) 2015.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