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전에 주머니 속의 돈을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돈을 벌지 말자는 뜻도 아니고, 돈의 중요성을 폄하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돈을 버는 활동만큼이나 주어진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살뜰한 관리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섣불리 말하기 전에 주어진 시간을 살뜰히 경영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만 인지상정은 어쩔 수 없다. ‘읽을 책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 말이다. 24시간을 들여다보면 낭비하는 시간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 낭비의 틈을 다 메꾼다고 해도 읽고 싶은 책을 다 읽을 수는 없다. 인생의 필멸성과 시간의 유한함이 삶의 본질이니까. 결국 아쉬움을 줄여주는 것은 ‘욕망의 우선순위’와 ‘살뜰한 시간 관리’에 대한 지혜로운 실천이다.

 

이 같은 사유에 다다르면, 강렬한 감정을 느낀다. 시간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아진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진다. 가장 중요한 일에서부터 하나씩 집중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독서 생활도 점검할 수밖에 없다. 아무 책이나 읽을 수가 없다.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책은 나의 장서에서 가장 훌륭한 책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는 책이라면, 내가 이해하는 책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이기를 바란다.

 

나는 한 지성인과 깊이 교감한다. “이왕 신문을 구독할 바엔 왜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신문들을 받아보지 않는가? 유아용 죽 같은 읽을거리를 뜯어먹는 일은 제발 그만 두자. 모든 학회의 보고서가 우리에게 도착하도록 하자. 그래서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자. 왜 우리가 읽을 책의 선정을 유명 출판사나 서점에 맡겨야 하는가?”(소로우, 『월든』)

 

이 말은 시간의 유한함에서 빚어낸 결론이 아니었다. 가벼운 읽을거리만을 읽는 세태를 향한 충언이었다. 소로우는 앞에서 “(가벼운 독서 취향은) 시력의 감퇴, 혈액순환의 장애 그리고 지적 능력의 전반적인 위축 내지는 퇴보만을 가져 온다”고 썼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시한 빵은 “어느 집의 부엌에서나 매일 구워지고 있으면 시장성도 확실하다”고 개탄했다. 유한한 시간 탓이든 시시한 책들이 난무해서든, ‘왜 가장 위대한 책을 읽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가슴에 남는다.

 

지적 생활자로서의 다짐이 또렷해진다. 훌륭한 책만을 읽어야겠다! 세 가지의 분명한 이유가 있다. 첫째, 훌륭한 책은 많지만 읽을 시간이 유한하다(시간의 유한함). 둘째, 세상에는 시시한 책들이 넘쳐나니 자칫하면 훌륭한 책들과 멀어질 수 있다(시시한 책의 무한함). 세번째 이유는 현재적인 가치가 넘쳐난다. 시시한 책들을 읽으며 열불 내거나 아쉬움을 느끼기보다는, 위대한 책들을 읽으며 감탄하고 깨우치는 일이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오늘 나는 책장의 한 칸을 비웠다. 그 칸에다 ‘나에게 필요한 책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내가 가진 장서 중에서 가장 훌륭한 책은 무엇인가?(위대한 책들) 어떤 책이 지금의 고민과 나의 심리적 병통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까?(현재적인 책들) 앞으로의 내게 필요한 지혜, 지식, 기술을 채워줄 책은 무엇인가?(생산적인 책들) 나의 일상을 아름답고 창의적이고 풍요롭게 만들 책은 무엇인가?(낭만적인 책들)


물음에 답하는 스물다섯 권의 책으로 빈 칸을 채웠다.

날마다 시간을 아끼고, 시간을 내어, 계속 읽어가겠다.

나의 내면과 일상을 더욱 잘 가꾸기 위하여. (연지원)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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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12.16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베르텔 2016.12.17 0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 속 책 중에 몇 권을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는 생각했습니다. 2017년에 몇 번 그리 할 수 있겠지요?

  3. 타임트리 2016.12.18 2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연히 들어오게 됐는데 좋은 글이 무척 많네요. 블로그 여기 저기 읽다가 이 글에 꽂혀서 댓글씁니다. 책장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글!!

    25권 목록에 호기심도 생기고 <우울증 거듭나기>라는 책 제목에 눈이 가서 방금 주문했습니다. <상실 수업>이랑 같이요. 사진 속 책들 제목만 봤는데도 보보님의 삶을 향한 의지가 느껴지네요.

    화이팅입니다!!!!!!!!!

    • 보보 2016.12.20 07: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네요. 제가 다시 봐도 의지, 열망과 같은
      단어들이 사진 속에 담겨 있네요. ^^
      ('현재적인 책들'이 많이 찍혀서 그럴 테고요.)

      <상실수업>를 읽는 중인데, 의미 깊은 시간입니다.
      그리고, 타임트리님! 반갑습니다. ^^

  4. 콩이 2017.05.0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국의반지성주의 찾았다가 블로그 글 읽고 댓글을 적어놓습니다. 아직도 나아갈 길이 꽂혀있는 책장에.. 반갑습니다. ^^

    • 보보 2017.05.10 1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몇 편의 글을 읽으셨나 보네요. ^^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책을 읽지 않고 쓴 글이라
      큰 도움이 되진 못했을 거란 예상도 드네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종종 놀러 오셔서 소통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