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어떤 날은 3분이면 족하다

카잔 2017. 1. 24. 13:35

아침에 신문을 들고 오는 시간은 3~4분이다. 빈 손으로 나간다. 핸드폰도 필요치 않다. 한 시간 외출에도 핸드폰을 두고 가기도 하니, 잠깐의 외출이야! 책을 들고가는 일도 거의 없다. 시간이라면 찰나까지 아끼고 싶긴 해도 틈새 시간에 할 일들은 많다. 잠시 멍 때리기, 체조하기, 콧노래 부르기, 아무도 몰래 춤 추기, 하루 일정 돌아보기 등. 엘리베이터를 한참 기다린다고 해도 괜찮다. 스트레칭을 길게 할 수 있으니 좋다. 내가 오가는 시간대에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웬일인지 오늘은 책을 들고 나갔다. 조셉 캠벨의 산문집 『신화와 인생』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아무렇게나 펼쳐 한 문단을 읽었다. "우리가 과학적 진리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할 때와 마찬가지로 - 항상 문제가 생기게 마련인데" 머릿속에는 과학적 환원주의와 과학적 연구 결과를 해석할 수 있는 통찰의 중요성이 떠올랐고, 눈은 다음 문장을 따라갔다. "왜냐하면 진리에는 여러 가지 다른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리 자체는 절대성을 품는 단어지만, 인간에 의해 다뤄지는 순간에 진리의 절대성은 사라지고 만다. 서로 다른 관점으로 진리에 접근하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하다.


"윌리엄 제임스는 "진리란 곧 유용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생각이 터졌다. 이 문장은 내 안의 지적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었다.


지난 주에 "저는 진리가 없다고 생각해요"라는 한 지인의 말을 들었다. 어디에서나 절대성이 훼손되지 않는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동의하면서도, 나는 사유 단념을 촉구하는 듯한 뉘앙스여서 "진리란 없다"는 표현을 싫어한다. 인생에 관한 고민을 할 때, 종종 듣게 되는 "정답은 없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단 하나의 정도는 없지만, 나에게만 적용되는 당시로서의 맞춤한 정답은 있다! 먼 훗날, 더 나은 길을 깨닫더라도 당시의 식견과 의지로서는 정답인 것이다.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정답은 없되,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정답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진리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신은 의식하지 못하지만 한두 가지의 가치를 추구하고 있거나 어떤 이념에 경도되어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진리가 없다고 말은 하지만, 삶과 신념 그리고 가치관이 어떤 하나의 진리를 표방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자신의 그 관점 밖의 것들은 보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그에겐 진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진리가 없다는 말은 쉬이 하지 못한다. 누구나 어떠한 가치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진리가 존재한다. 절대 진리가 아니라 변모하는 진리로써.


내게 진리는 '유용성' 또는 '지혜나 중용'이다. 여러 가지로 표현했지만 공통점은 변용성(變容性)이다. 무엇이 유익한가. 사람마다 다르다. 내게는 조언이 유익하고, 누군가에는 공감이 유익하다. 마치 서로가 각기 다른 것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과 같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달리 지혜는 변모한다. 공자가 안회와 자로를 각기 다르게 대했다. 둘의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용도 두 가지 사이에 고정불변의 점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때, 장소, 상황, 사람에 따라 중용은 변화무쌍하게 자신의 중간 지점을 찾아다닌다. 윌리엄 제임스가 이런 뜻으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절대 진리'에 반하는 개념으로 잠시 '상대 진리'를 사유했다. 상대성의 기준이 유용, 지혜, 중용인 셈이다.


다시 책을 들었다. 다음 문장이 반가웠다. "이른바 절대진리의 관념 - 즉 사고하려는 인간 정신의 상대성의 범위 너머에 이른바 절대진리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관념 - 을 나는 '진리 발견의 오류'라고 부른다. 저주 받아 마땅할 저 설교자들 모두의 문제 역시 진리 발견의 오류다." 캬! 대화가 이뤄졌다. 캠벨 선생은 나의 사유를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맞춤한 말로 화답했다. 어디 설교자들 뿐이겠는가. 자기계발 강연이나 정치적 연설에서도, 스포츠 중계 해설자들도 수없이 진리 발견의 오류를 범한다. 그러니 문제(problem)라고 하고 싶진 않다. 우리네 실존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를 인식하고 살면 더욱 지혜로워질 문제(agenda)이긴 하고.


위의 문장을 읽는데 1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나는 책을 덮었다. 더 이상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마음이 차올랐다. 아침 독서는 이로써 끝이다. 점심 식사를 하고서, 다시 펼쳐보았다. 이어지는 문장은 너무 아름다워서 내 생각을 덧붙이면 모조리 사족이 될 정도라고 느껴졌다. "만약 자신이 또는 자기 구루가 이른바 절대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니체의 말마따나 '개념의 간질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어떤 관념을 지니게 됨으로 결국 미쳐 버린 사람이다." 아! 역시, 명료한 니체다.


"진리가 없다"는 말로 진리에 대한 사유를 회피하거나 자기 안에서 추구되고 있는 진리를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명제의 간질병'이려나. "진리가 없다"는 말은 개념이 아니라 문장이니까. 다시 책을 덮는다. 사유의 시간을 제외하면 몇 줄을 읽는 데에는 3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테지만, 한나절짜리 에너지는 되었다. 한 마디를 덧붙여야겠다. 아침에 『신화와 인생』을 들고 나갈 때에는 몇 편의 글만 발췌독했을 걸로 기억했지만, 책을 펼쳐보니 200페이지 가까이 밑줄 쳐 가며 꼼꼼히 읽은 흔적이 있다. 책의 어디를 펼쳐도 밑줄과 별 표시가 보인다. '내가 무슨 독서의 망각병을 앓는 건 아닐 텐데, 읽었다는 사실도 새까맣게 잊고 사는구나.' 아침부터 영감을 얻어 기분이 좋아서일까? 좋은 책을 새롭게 읽을 수 있어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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