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duction/강연 Follow-up

되돌아보고 싶은 어느 강연

카잔 2017. 1. 21. 12:50



1.
어제 ‘그리스인 조르바 특강’은 꽤나 즐겁게 진행했던 강연인데도 만족감은 당일짜리였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아쉬움들이 후두두 쏟아진다. 기분 좋은 느낌을 조금 더 누렸으면 싶은데, 아침에 떠오른 단상을 지켜보며 ‘나는 어쩔 수가 없구나’ 하고 유쾌하게 포기한다. 올해는 ‘어쩔 수도 있음’에 도전하길다짐하면서.


- 쉬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이게 가장 아쉽다. 2시간 10분 동안 내리 달렸다. 청중에게 “좀 쉬었다 갈까요?” 하고 두 번을 여쭈었는데, 그때마다 몇 분들이 고개를 저으셨다. 침묵하는 다수가 계셨을 테고, 몸도 한 번 움직이고, 쉬는 시간에 서로들 인사도 나누실 기회였는데… 나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가 아쉽다.)


- PPT 슬라이드 작성에 좀 더 신경 써야 했는데…(지금까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기! 올해의 목표다. 다른 이들에겐 추상적으로 들리겠지만, 내겐 또렷한 푯대다. 생각 줄이고 행동! 보다 성실한 강연 준비! 출간이 빈번한 인생! PPT 슬라이드를 작성했는데, 강연장에 맞지 않은 텍스트 크기였다. 고작 2시간 남짓 투자했으니 많은 걸 고려하지 못했다.)



2.

“나는 삶의 양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강연의 주요한 주제였다. 내가 가진 영역본은 ‘양식’을 ‘my mode of life’로 표현했지만, Style, Food, Thinking 등 중의적으로 이해해도 커다란 오독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전체 내용에 기반한 합리적 확대 해석이라면.) 소설 속 화자는 살아가는 스타일(樣式), 실제로 먹는 음식(糧食), 자신의 훌륭한 식견(良識)을 모두 바꿔가니까! 괄호 속 한자어는 모두 ‘양식’이라는 음가를 가진 단어다. 이럴 때면 카잔차키스가 선택한 불어와 그리스어 단어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강연의 핵심 키워드가 ‘삶의 모드 바꾸기’인 만큼, 강사로서 나는 삶의 도전과 변화거리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례의 풍성함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역시 삶의 양식을 바꾸고 싶어서였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삶이 점점 더 미뤄질 테니까. ‘모드 전환’은 실존적 문제였고, 절박한 바람이었다. 올해 들어 페이스북을 시작한 일은 흡족하지만, ‘조르바 특강에 관한 안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려야지’ 하는 생각은 끝내 실천하진 못했다. 오늘은 조금 더 달라져 봐야지! 과정을 즐기면서 변화의 길을 계속 걸어가 봐야지!




3.
강연에 대한 호응은 컸다. 감사했고, 신기했다. 골방에서 조용히 강연하다가 광장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 선 느낌이었다. 신선했고 즐겁고 행복했다. 사실 단체나 기업이 불러주어, 수십 명, 수 백 명 앞에 선 경험은 많다. (천명이 넘는 청중 앞에서의 강연도 두어 번 있었다.) 그때와 어제 강연은 무엇이 다를까? 주제가 달랐다. 내가 사랑하는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다. 좋아하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4~5년 동안 작은 모임이나 소수의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지난 해 <라운드 리딩>이라는 독서모임과 <럭셔리 버스>라는 유쾌한 모임에서 문학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즐거웠기에 강연료는 와인, 문화상품권, 책 등으로 받았다. 아쉽지 않았다. 확실히 나는 강연료로부터는 비교적 자유로운 강사다. (의미가 채워져서 아쉬움이 사라졌다는 말이지, 강연료를 많이 주면 당연히 좋아한다는 점도 잊지 마시길!) 이 두 모임의 공통점은 꼭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이다. 지난 해, 리버럴 아츠 수업(20회 정도 되려나), 황금빛 아테네 수업(8회), 고전 읽기 수업(10여회)을 진행하고서 남은 사진은 한 장도 없다. 이걸 지금에서야 인식하네. 한 기수당 한 장 정도는 찍었어도 좋으련만. ^^


나는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사용하는 언어로는 모국어밖에 없음에도 청중들은 문학 수업을 즐거워했다. “열정적인 애호가는 전문가로 성장한다.” 내가 썼던 글의 한 문장인데, 내가 하나의 사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작년이었다. 올해는 광장에서의 소설 읽기 강연을 좀 더 늘려봐야겠다. 여전히 떨리는 마음이다. ‘내가 문학을 알기나 할까?’ 이 마음은 나를 괴롭히기도 하나 공부를 지속시키기도 하니, 벗으로 삼고 평생 동행해야 할 것 같다.



4.  
강연이 어렵다는 평가도 있었다. 개념 정리를 보다 명쾌하게 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으리라. 사실 어려워진 강연이 맞다. 2시간 특강에는 3~4개의 키워드만 담아야 함을 알면서도 다시 또 언제 만날지 모르니 ‘하나만 더 넣자’는 생각으로 6개를 담아낸 지경이 되어 버렸다. ‘내가 이만큼 안다’는 것을 보여주고픈 마음은 없었다. 내 의식이 고양되어서가 아니라, 인정해 주시는 청중들이 있는 모임이었기 때문이다. 기억할 교훈이 있다. ‘선한 욕심’도 최고의 강연을 만드는 데에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내게는 자주 그렇다. 제발, 잊지 말자.


강연이 어렵게 느껴진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강사로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자신의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성장을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 : 모방화. 다른 사람들을 추종하느라 자기를 잃은 단계. 이때는 자기다워지는 것이 곧 변화요, 성장의 비결이다. 자신이 가진 재능, 기질, 열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수록 이 단계의 졸업을 앞당길 수 있다. 졸업은 완전한 극복은 아니다. 누구나 부침을 겪으면서 성장하니까.


2단계 : 고유화. 자기다움을 발견하고 실현해가는 단계다. 점점 차별화가 이뤄진다(이뤄낸 것이 아니라 이뤄진다). 자기다운 색깔이 드러나고, 자신만의 목소리는 낸다. 찬사도 듣지만 이 단계가 끝이 아니다. 소수의 사람들은 고유화의 필연적 약점을 발견한다. 편협한 관점, 공감의 부재, 주관성만 넘치는 메시지, 인식의 한계 등.


3단계 : 타자화. 자신의 고유함에 타인의 탁월함을 입혀가는 단계다. 타자화에 이르려면 자기 생각과 실천의 ‘양적 강화’가 아닌 ‘질적 전환’을 이뤄야 한다. 관점의 전환, 인식의 확장, 필연적인 약점 극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자기다움으로 다른 인생을 창조해낸 이들에게, 타자화는 또 한 번의 도약을 안기는 키워드다.


어제 강연에서는 2단계에서 3단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나름의 방법론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가 보여준 모습은 2단계에서 3단계로의 진화를 꿈꾸는 노력이라고 해석했다. 강연 후의 생각을 이어가시거나 내용 정리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