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동안 진행된 독서 프로젝트 하나가 끝났다. 고전 백 권을 읽겠다는 포부로 시작했기에 ‘고백 프로젝트’라 이름 지은 모임이다. 시즌 Ⅰ은 고대 그리스 고전 읽기였다.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6권의 고전을 읽었다. <오딧세이아>, <그리스 비극 걸작선>, <소크라테스의 변명>, <니코마코스 윤리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그리고 <일리아스>!
나는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가.
1.
6개월 과정은 긴 호흡이 필요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참석 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기간의 문제만은 아니겠으나 <시즌 Ⅱ : 르네상스 고전>은 3~4개월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심삼일의 영향도 있겠지만 최초의 열정을 유지해가는 선생으로서의 노력과 노하우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를 테면 나의 교수법이나 시각적 자료 준비 등)
개선점 : 1) 책을 개론하는 수업은 얼개, 맥락, 가치를 보다 체계적이고 시작화된 자료로 전할 것 2) 강독회 수업은 텍스트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룰 것. 정통의 견해를 소개하면서도 창의적인 해석도 덧붙일 것.
2.
고전 읽기의 개인적인 의미는 컸다. 1) <일리아스>의 재발견! 호메로스의 작가적 역량, 아킬레우스가 안겨준 위로, 헥토르가 보여준 인간적인 매력!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책 읽는 기쁨을 만끽했다. 내게는 <오딧세이아>만큼이나 감동적인 책이 되었다.
2) <니코마코스 윤리학>도 재밌게 읽었다. 긍정심리학에서 연구한 행복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비교하여 이해하는 즐거움이 컸다. 그리스 고전 중에서 가장 건조하고 딱딱한 문체를 자랑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 비결 중 하나는 개념 정리를 즐기는 것이리라.
3) 그리스 비극의 가치는 여전했다. 모든 작품들이 하나같이 나를 감동시켰다. <메데이아>를 함께 읽고 공부했던 수업에서 보았던 참가자들의 고무된 표정도 당분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산울림소극장에서 관람한 연극 <아이, 아이, 아이>도 울림이 컸다. (소포클레스의 <아이아스>를 극화한 연극이다.)
3.
나는 왜 그리스 고전들을 좋아할까? 그 이유를 모르지 않았지만 이번에 더욱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마지막 수업 유인물의 일부를 옮겨 둔다.
<아킬레우스는 말했다. "하데스에서 왕 노릇 하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노예가 되리라!" 비극적 운명에 처할 때에도 삶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여전했다. 영웅들은 자기 삶에서 달아나지 않았다. 비극적 운명에 맞서 싸웠다. 헥토르와 사르페돈이 그랬고 아킬레우스가 그랬다. 호메로스의 영웅은 우리네 범인들처럼 괴롭고 슬픈 일을 당한다. 그럴 때마다 아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불평하지 않았다.
아킬레우스의 분노는 명예의 박탈 때문이지 운명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불같은 성격이었지만 자신의 운명만큼은 결연하게 수용했다. 자기 삶을 받아들이는 아모르 파티(운명애)야말로 그리스 정신의 정수다. 『일리아스』의 어디를 펼쳐도 비극적 운명이 펼쳐지지만, 절망이나 우울의 그림자를 찾기가 힘들다. 운명을 온 몸으로 수용하는 강인한 영혼이 그려질 뿐이다. 나는 필멸의 삶에서 무상함을 느끼지 않고 열렬히 살아가는 그 영웅들이 정말이지 좋다.>
[향후 계획]
<시즌 Ⅱ : 르네상스 고전 읽기>는 몽테뉴 『수상록』(손우성 역, 동서문화사),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계획하고 있다. 르네상스에 관한 지식을 쌓기 위해 스티븐 그린블랫의 『1417년 근대의 탄생』을 포함할까 싶다. 서사의 형식을 빌어 르네상스가 과연 어떠한 시대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8번의 수업으로 3권을 일별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고대 그리스의 지성사를 살펴보는 <황금빛 아테네>도 한 번 더 진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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