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강좌가 범람합니다. 강물이 범람하면 강에 있지 말아야 할 것들이 떠다니더군요. 헌 신발, 폐기물, 조각난 목재, 부유하는 쓰레기들! 범람의 시대는 곧 주의를 요하는 시절입니다.
매년 증가하는 출간 종수와 수많은 글쓰기 강좌를 바라보다가 느낀 점 몇 마디를 적어 둡니다. 따옴표로 인용한 아래 문장이 글의 요지가 되겠습니다. ‘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저자의 권위와 희소성이 떨어지는 시대에 출간이란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한 해 8만 종의 책이 출간되는 시대에 저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1.
글쓰기가 열풍입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과 책을 출간하려는 분들을 자주 만나는 요즘이네요. 글을 쓰겠다는 ‘욕망’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글쓰기를 권장하고 싶습니다. 글쓰기에 깃든 치유의 힘으로 자신의 아픔을 위로하고, 억울한 사정을 글로 표현함으로 고통을 달랠 수 있으니까요. 긴 글을 쓰다가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더라도 포기하지 맙시다. 공부하면서 쓰면 되니까요. 새들은 무언가를 '잘 알아서' 노래하는 게 아닐 겁니다. '부르고 싶어서' 지저귀는 게 아닐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일 테죠. 쓰고 싶다면 한껏 즐기거나 공부하면서 쓰면 됩니다.
[Tip] 글쓰기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명저들이 있죠! 세 권이 떠오르지만 오늘은 나탈리 골드버그의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를 권합니다.
2.
수요가 있는 곳에는 공급자들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수요가 많으면 다양한 수준의 공급자들이 참여하고요. 그들 중엔 하이에나 같은 공급자도 섞여 있을 테고요. 글을 쓰려는 욕망(수요)을 간파한 글쓰기 수업(공급)이 난무합니다. 예술가의 영혼이 아닌 장사꾼의 영혼을 지닌 선생들이 많아 보이기도 하고요. 자신의 필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보다는 강좌를 홍보하고 수강생을 모으려는 노력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선생이라면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쟁이의 눈에는 상스러운 수법이 훤히 보이는데 욕망이 간절한 수강생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건가요?)
3.
모든 글쓰기 선생이 예술가(작가)의 영혼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예술가의 영혼을 가진 선생은 소명과 헌신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일반인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지침을 건네거나 두루뭉술하게 조언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어느 수준까지는 장사꾼의 영혼을 지닌 선생이 더 잘 가르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화법이 뛰어나니까요. 수사적인 능력에다 학습력마저 갖춘 선생이라면 유용한 수업을 진행하죠. ‘저기 아래’에서 ‘여기 위’로 올라선 경험이 있고 자신을 오르게 만든 ‘사다리’를 파악하여 전달한다면 탁월한 선생이 될 테고요. 작가의 영혼이냐 장사꾼의 영혼이냐가 관건이 아닙니다. 훌륭한 장사꾼이 아니라 수준 낮은 장사치의 영혼으로 진행되는 수업이 많다는 게 문제입니다.
[Tip] 수강료가 터무니없이 비싸면 일단 의심하면 어떨까요? 책을 출간해 준다고 하면 좀 더 경계하고요. 물론 ‘필력’ 향상이 아니라 ‘출간’이 목표라면 그들의 조언을 따르면 되겠죠.
4.
잠깐 목표를 점검하는 일도 나쁠 건 없겠죠. 목표를 달성해도 예상만큼 기쁘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출간’을 목표로 글쓰기 수업을 찾으신다면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저자’의 권위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10여 년 전 첫 책을 출간했을 때, 우리나라는 한 해 4만 종을 출간하는 ‘출판대국’(한 출판인의 표현)이었습니다. 4만 종을 내던 당시에도 ‘대국’이라 불렀는데 지금은 더 놀랍습니다. 한 해에 8만 종을 출간하는 나라가 됐으니까요(2017년).
독립출판이 늘고 전자책 출간도 쉬워졌습니다. 저자가 되는 문턱이 낮아졌다는 말입니다. 출간 종수가 비약적으로 늘어가는 동안 독서 인구는 꾸준히 줄었습니다. (독서 인구의 감소는 통계가 필요 없습니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체감으로도 느껴지니까요.) 읽지도 못한 채로 지인의 책 출간을 축하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겠죠. 언젠가 한 정치인의 출간기념회에 참석하기로 했던 지인이 행사를 앞두고 가기 싫어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출간기념회 기피 현상이 정치의 세계를 벗어나 좀 더 확산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들이 계속 증가한다면 말이죠.
5.
올해(2018) 읽은 최고의 칼럼은 소설가 박민규의 <백 년 동안의 지랄>입니다. “백 년 전의 조상님들은 꿈꿨을 것이다. 양반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들의 후손도 꿈꿨을 것이다. 대졸이 아니어도 살 수 있는 세상을. 그러나 우리가 실지로 행한 일은 모두가 양반이 되고 모두가 대졸자가 되는 길이었다. 정부의 보조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이 똑같은 성격의 일을 스스로, 백년 넘게 대를 이어, 자신의 피땀과 사비를 들여 이룩해 왔다는 사실이다. 정말 미안한 얘기긴 하지만, 나는 이것을 ‘지랄’이란 단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못 찾겠다.”
구한말 시대를 살았던 조상들 대부분이 양반이 되는 가짜 족보를 샀습니다. 그리하여 전체 인구의 99%가 양반인 나라를 만들었죠. 100년 뒤에는 모두가 대학 진학을 부추겨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이뤄냈습니다. (<교육통계연보>에 따르면, 1991년 33.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1년도에 최초로 70%를 넘어섰다가 2008년을 전후로 최고치인 80%를 경신했고 2017년에는 70% 정도까지 내려왔습니다.) 다시 박민규 씨의 글입니다. “양반이고 대졸자인 우리가, 양반인 데다 대학을 나왔는데도 그 어떤 대접도 못 받는 후손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모두가 양반이 되어 아무도 양반이 아닌 세상에서, 다 같이 대졸자가 되어 누구도 대졸자 대접을 못 받게 된 세상에서 말이다.”
[Tip] 저도 질문을 품게 됩니다. ‘저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시대에 출간이란 어떤 가치가 있을까? 한 해 8만 종의 책이 출간되는 시대에 저자가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6.
(공급자든 수요자든) 문제는 욕심에서 발생합니다. ‘욕망’이 아니라 ‘욕심’ 말입니다. 욕망은 하고자 하거나 갖고자 하는 탐심입니다. 욕망이 곧 그의 고유함이겠죠. 저마다 다른 욕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욕망이 우리를 추동합니다. 욕망이 우리는 어딘가로 이끕니다. 욕망에는 역동성, 생산성, 창조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반면 욕심에는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가 없습니다. 욕심은 분수에 넘치도록 탐하는 마음입니다. 날씬해지고자 하는 바람은 욕망이지만, 식사량을 줄이지 않고 몸무게를 줄이겠다는 마음은 욕심입니다. 욕망은 우리를 향상시키지만 욕심은 우리에게 자주 근심과 번뇌를 안깁니다.
[Tip] 3천만 원짜리 과외를 받더라도 날마다 연습하지 않으면 피아니스트가 되기 힘듭니다. 훈련 없이는 뛰어난 실력도 없으니까요. 쉬운 길을 택하면서 고차원의 기술을 익히려는 마음은 욕심이지 싶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제 마음이 욕망인지, 욕심인지 살펴봅니다.
7.
책을 즐겨 읽는 독자로서 출판사의 ‘안목’과 책방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곱씹게 됩니다. 안목 있는 출판사가 출간한 책들은 여전히 훌륭합니다. (바다출판사가 최근 수년 동안 출간한 단행본들과 잡지는 눈부십니다. 글항아리가 펴낸 책들의 깊이는 여전하고요.) 품격 높은 안목을 더욱 가꾸어가는 출판사들의 존재가치는 영원하겠죠. 독립책방의 큐레이션 역할도 중요해졌습니다. 여과기능 없이 분야별로 진열하는 대형서점들과 달리 독립책방이 저마다의 색깔, 깊이, 테마, 취향을 좇아 구성한 큐레이션은 독자들의 문화 수준을 높일 테니까요.
글쟁이로서의 바람도 있습니다. 자신을 표현할 줄 안다는 것은 유익하고 고상한 일입니다. 글쓰기를 배우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 대신 필연적인 훈련과정을 기꺼이 실천하겠다는 ‘욕망’을 품는다면 배움의 결실이 커지겠지요. 만약 제가 청강한다면 전체 글쓰기 강좌 중 상위 10% 안에 들 탁월한 수업을 찾으려 할 겁니다.
[TIP] 은유 작가의 글쓰기 수업이라면 권하고 싶네요. 이것은 직감입니다. 경험하지 못했지만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 아래의 글쓰기 책들은 제가 읽은 명저들이고요.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바버라 애버크롬비 『작가의 시작』
앤 라모트 『쓰기의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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