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10대 뉴스 작성하기>는 누구나 손쉽게 시도하는 방법이지만 결과물의 차이가 큽니다. 뉴스 작성이 ‘연말 이벤트’의 하나에 머물기도 하고 자기인식을 얻는 ‘깨우침의 장’이 되기도 하니까요. 3단계 역사의식을 실천할수록 더 많은 자기인식을 얻으실 겁니다.” (방법론만 읽으시려면 6번 글로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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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포함하여 딱 20일이 남았습니다. 스무 날이 지나면 2019년이 됩니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기 좋은 시절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돌아봐야 할까? 이 질문을 안고 오늘 아침을 보냈습니다. 꼭 돌아보아야 할까, 그냥 지나가면 안 될까? 성찰의 당위성 또는 타당성에 대한 회의를 끌어안고서 며칠 째 생각해서인지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얼마간을 글로 풀어내야 생각의 물꼬를 만날 것 같아 결국 오늘도 무언가를 끼적입니다.


1.
간혹 성찰을 폄하하는 시선을 만납니다. ‘젊은’ 행동파들은 종종 성찰의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성찰이란 행동의 훼방꾼에 불과하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돌아보는 시간을 아까워하더군요. ‘부지런히 달려가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하라니!’ 그들에게 성찰이란 행동이나 질주에 비해 가치가 떨어지는 행위입니다. ‘중년’의 행동파들은 다릅니다. 구슬(경험)도 꿰어야 보배란 걸 깨우쳤거나 생각 없는 행동으로 빚어진 과오를 맛보아서인지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2.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도 성찰을 폄하합니다. 비유컨대 성찰이란 차를 몰고 가다가 잠시 ‘정차’하여 목적지를 확인하는 행위입니다. 연료나 엔진오일이 부족하다면 채우고 갈림길에선 방향을 확인하는 거지요. 후진하거나 주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성찰은 퇴행이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진보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자기이해와 실천이 조화를 이룰수록 성장하겠지요. 자기이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앞으로의 날들을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 “인생은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지만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돌아봐야 한다.” 키에르케고르의 말입니다.


3.
성찰이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커다란 잘못을 저질렀거나 고통스러운 사건을 만났다면 성찰이 두려워집니다. 다시 그 사건의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니까요. 감정의 고통 또한 고스란히, 어쩌면 더 크게 느껴야 하니까요. 이럴 때의 성찰은 용기를 발휘한 결실이겠죠. 앞서 설명한 행동파와 신념파의 성찰 회피는 타고난 ‘성향’과 잘못된 ‘믿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낯설거나 불합리하다는 이유로 성찰을 멀리한 경우겠습니다. 이때에도 성찰을 시도했다면 자기인식이나 합리적인 논리와 가까워진 덕분이지 싶네요. 이상의 내용을 뒤집어 표현하면 이리 됩니다. 깊은 성찰이 드문 이유는 우리의 자기이해와 논리력이 빈약할 뿐만 아니라 용기를 발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겠죠.


4.
자기기만이 성찰을 방해합니다. 외면과 합리화는 대표적인 훼방꾼입니다. 외면 이야기부터 해 보죠. 불미스러운 사건은 자아를 둘로 분리시킵니다. 수치심이나 죄의식을 느끼는 자아 그리고 (삶은 계속되니까) 일상을 살아가는 자아! 두 자아는 삶의 다른 두 영역을 살아갑니다. 내면의 고통을 느끼며 개인적인 시간을 살고 최대한 힘을 발휘하여 대외적인 시간을 삽니다. 이중성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정직과 자기기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죄의식 없이 살려면 또는 자아 분열을 피하려면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첫째, 불미스러운 사건에 눈을 감으면 됩니다. 사건을 덮어버림으로 부조리한 진실을 자각할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거죠. 둘째,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적인 목소리에 재갈을 물려 앞으로의 일상에 몰입하자고 주술을 겁니다. 덮어버림과 재갈 물림 모두 ‘외면’이라는 자기기만입니다. 외면은 성찰 자체를 차단하지요.


5.
합리화는 성찰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기기만입니다. 인간은 감정적으로 선택하고선 합리적인 이유를 갖다 붙이는 존재입니다. ‘존재’라는 거창한 단어를 불러들인 이유는 합리화가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 중 하나임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합리화는 불가피합니다.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엄격한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용납과 선처의 대상으로 봐야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합리화를 권장할 순 없습니다. 추구할 목표는 더더욱 아니죠. 합리화를 긍정해야 하는 이유는 합리화가 우리의 행복감을 높이기 때문이라면, 합리화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는 합리화가 우리로부터 지혜를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진실에 주목하지 않는 시선이 지혜로워지기는 힘드니까요. 진실에 눈 먼 시선은 사람들을 외롭게 만들기 십상입니다.


6.
십년 넘게 어른학생들과 인생 공부를 함께하면서 성찰을 강조해 왔습니다. 중요성만 강조해서는 곤란하여 수년 전부터는 성찰의 방법론과 철학을 역설했고요. 성찰의 방법론 하나로는 월말에 ‘이달의 3대 뉴스’를 쓰고 연말에는 ‘올해의 10대 뉴스’를 작성하는 겁니다. 누구나 손쉽게 시도하는 방법이지만 결과물의 질은 저마다 다릅니다. 뉴스 작성이 ‘연말 이벤트’의 하나에 머물기도 하고 자기인식을 얻는 ‘깨우침의 장’이 되기도 하니까요. 깨우침의 장으로 만드는 방법은 3단계의 역사의식을 배워가는 겁니다. 뉴스 하나하나를 작성할 때 적용할 지침입니다.


1단계 : 기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할 것. 더하거나 빼거나 기만하지 말 것. (정직하게 사실을 기술하지 않으면 이것은 자기 ‘역사’가 아니라 자기 ‘픽션’이 됩니다. 성찰은 이야기를 지어내는 공간이 아니라 자기를 직시하는 자리겠지요. 정직하게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체험하면 왜 많은 나라들이 역사를 왜곡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시선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2단계 : 해석. 뉴스마다 인과관계를 파악할 것. 원인과 결과를 합리적으로 따져볼 것. 이것을 어떻게 성취했을까? 왜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까? 왜 그에게 상처를 주었을까? 이런 질문을 품고 이유와 원인을 최대한 다양한 관점에서 찾아낼 것. 합리화를 덜어낼 것. (해석은 이성적인 논리적인 작업입니다. 지인과 친구들의 다양한 관점을 들으면 좋습니다.)


3단계 : 평가. 어떤 한 해를 보냈는지 올해의 가치를 매겨 볼 것. 자신의 가치관과 비전에 견주어 평가할 것. (해석은 객관적일수록 좋지만 상대적으로 평가는 주관적인 작업입니다. 자기 기준이 중요합니다. 자기 삶의 가치와 목표에 비추어 스스로 평가하면 됩니다. 정직한 기술과 논리적인 해석을 바라볼 때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겁니다.)


7.
얼마만큼의 시간 단위가 ‘돌아보기’에 적당할까요? 매 시간을 돌아볼 순 없습니다. ‘한 시간’은 몰입의 대상이지 돌아봄의 주기로는 비현실적입니다. 삶을 전혀 돌아보지 않다가 만년에 ‘평생’을 성찰하려면 수개월의 시간이 걸리겠지요. 많은 기억을 상실했을 테고요. ‘한 시간’과 ‘평생’을 양 끝으로 하는 ‘시간 단위 스펙트럼’에서 저마다에게 적합한 돌아봄의 주기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에겐 매주 그리고 연말이 좋습니다. 삶을 돌아보기에 맞춤한 시절입니다.


돌아봄의 가장 작은 단위는 하루가 아닐까 싶습니다. 하루를 챙기는 형식이 ‘일기’겠고요. 회고록을 작성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찰의 가장 큰 단위는 한 해가 아닐까요? 한 해 이상의 세월을 돌아보는 경우가 드물어서 하는 말입니다.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지금이야말로 ‘성찰’을 실천할 적기입니다.



Posted by 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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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민 2018.12.16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감사합니다. 10대 뉴스를 뽑을 때 기술도 제대로 못했지만 해석과 평가는 더욱 부족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올해는 제대로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