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Story/즐거운 지식경영

짜증

카잔 2009. 10. 9. 15:20


'아이, 정말 짜증나네.'
읽던 책을 덮었다. 42페이지까지 견디어 낸 나에 대한 자부심보다
짜증내며 읽어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강해지기 시작하자 도리 없었다. 
이미 두 권의 다른 책을 통해 나를 매료시킨 저자의 책이기에
책을 덮을 정도의 짜증을 일으킨 원인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믿는다.
나는 지금 번역 수준에 불만이 생긴 게다. (번역가가 아니라)
저자의 문체에도, 사고 방식에도 익숙해진 터라
나는 책의 첫장을 읽자마자 여백에다 이렇게 적어둘 수 있었다.
"번역이 불안한데..."

불안불안은 견딜 수 있다. 난 독서할 때만큼은 진지한 편이기에.
그러나 짜증을 견디며 끝까지 읽어낼 정도의 인내심이 없다.
책의 제목이 궁금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그건 밝히고 싶지 않다. 두 가지의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나 역시 종종 어떤 이의 가슴을 헤집어
짜증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 예상치 못한 창조력이 불성실로 인한 것이라면 비난 받을 수도 있겠지만
성실하여 성장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면 눈감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이해해 주었을 거란 생각도 들고. 
(혹 그런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나의 깨달음에 기뻐해 주시기를.
당신의 '위대한 침묵'을 감사하고 있음을 전하고 싶다.)
이 첫번째 이유는 어쩌면 동종업에 있는 이를 향한 작은 연민인지 모른다.

다른 하나는 후반부에 대반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42페이지까지 읽었다. 오늘은 짜증으로 덮었지만
내일 (혹은 신이 나면 오늘 저녁에라도) 다시 책을 펼쳐 들 것이다. 
옮긴이의 번역이 후반부에 이르면서 점점 매끄러워질도 모를 일이다. 
'그를 오늘의 그로 보라. 어제의 그로 보지 말라'고 와우팀원들에게 이야기한 것을
나 역시 실천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 책을 번역하기 시작한 첫 날과 마지막 날의 실력차가 엄청나기를 바라며 나는 책을 펼칠 것이다.
이런 사고는 번역을 몰라서 하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나는 번역이 무엇인지 모른다.
허나, 내가 믿는 것 하나, 생각하는 것 하나대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게 믿음 대로, 생각 대로 직접 살아가면서 결과를 나의 두 눈으로 보고 싶다.
효과가 좋은 것들을 이어 가고, 아닌 것들은 나를 조금씩 다듬어가고 싶다. 
 
저자는 앞선 두 권의 책에서 감동을 주었기 때문에 
'번역'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무언가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지만,
이것은 권하고 싶지 않은 생각이다. 이 세상에는 내용도 좋고, 번역도 좋은 책이 많으니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닐 수 있겠지만,
책을 읽을 때의 독자의 태도와 환경이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순 없다.
독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인가의 여부도 독서의 즐거움과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다시 한 번 책을 펼쳐 보았다. 제목을 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챕터를 펼쳤다. 
읽어 보았다. 번역은 별로였지만 내용이 좋았다. 짜증이 조금 풀렸다.
짜증의 원인은 다양할 수 있고, 복합적일수록 짜증이 심해지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무관심한 주제 + 난해한 내용 + 엉성한 번역 +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 + 시끄러운 환경 등)
반면, 어느 한 가지가 만족스러우면 짜증이 덜해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관심 있는 주제 or 즐거운 내용 or 깔끔한 번역 or 책이 주는 깨달음 or 쾌적한 환경 등)  

저녁에는 마지막 장을 읽어보야겠다.
만약... 마지막 장까지 번역 때문에 읽기가 짜증스럽다면 나는 고백할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을 말할 거냐고?
아니다.
번역이 별로면 마지막 장까지 읽을 필요는 없다고
그저 중간 즈음에 그만 두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해야지.
번역 실력이 책 한 권을 번역하며 대나무 자라듯 쑥쑥 자라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그러니 조금 전 오후의 생각을 수정한다고 말이다. 


: 한국리더십센터 이희석 컨설턴트 (자기경영전문가) hslee@ekl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