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y Story/끼적끼적 일상나눔

다시 시작하기

카잔 2010. 6. 11. 10:13

3개월 전부터 우리 집 한 켠에는 박스 12개가 쌓여 있다.
이사 가려고 미리 짐을 싸 둔 것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저렇게 짐을 방치해 둘지는 몰랐다.

사실, 이삿짐을 옮겼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짐을 옮긴 것은 두 번인데, 내가 있는 곳은 그대로 우리집이다.
하하하. 이렇게 적으면서 웃기고 허탈하네.

종종 문제가 발생한다. 책을 찾기가 힘들어진 게다.
책을 박스에 넣었다가 아직 제대로 풀지 않았다.
필요할 때마다 난감하다. 하하. 그래서 안 필요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연구원 여행을 떠나는데, 여권 사본을 보내란다.
헉! 여권이 어디에 있을까? 도무지 감이 안 잡힌다.

가볍게 한 시간 정도 찾아 본 것이 지난 주말이다.
있을 만한 곳에는 없었다. 사실, 정돈 상태가 모두 바뀌어
물건들이 원래의 자리에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양해를 구하여 목요일까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목요일에는 강연도 없고, 약속도 없어 이삿짐을 헤집어볼 수 있는 날이었다.
수요일 밤, 목요일 오후, 금요일 새벽까지 11시간 정도를 찾았다.

그런데, 없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눈이 벌겋다.
지금에라도 찾으면 정말 기분좋게 샤워하고 하루를 시작하면 되는데,
집은 엉망이고 기분은 찜찜하고 할 일을 밀렸다.

11시간이 무지 아깝기도 하고,
이젠 어떡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이곳 저곳에 전화로 물어보아야겠다.

11시간 동안 줄곧 하나의 물건을 찾느라 시간을 보낸 게 놀랍기도 하다.
이일 저일 하며 산만하게 찾지 않고 오직 찾기만을 했다. 하하.
묘하게도 짜증이 나기보다는 근성이 생겨났다.

두어 시간이 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긴 했다.
'우와 여기에도 없네. 신기하다.'
이런 다음 짜증이 밀려 오거나 포기하고 싶기도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5시간 동안 찾았는데도 없네요. 어떡하죠? 다른 방법이 없나요?"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긴 싫었다.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11시간을 고생했든, 20시간을 고생했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누나, 찾았어요. 늦어서 미안해요.
쬐금 고생하긴 했지만 약속 지켜서 기쁘네요."

아! 그러나 찾지 못했고, 약속한 날이 지나고 낡이 밝았다.
전화를 해서 양해를 구하고 해결책을 생각해야겠다.
결과가 '못 찾았음'이어서 속상할 즈음, 글을 쓰고 나니 괜찮아졌다. ^^

노력했다고 여기서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노력은 그만두기의 조건이 아니다. 일처리가 그만두기의 조건이다.
프로는 "최선을 다했는데요"가 아닌 확실한 끝맺음으로 승부해야 하니까. ^^

그래서 다시 시작한다.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 말이다.
유럽 여행에서 여행일지와 모든 짐이 든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
올해 초 적지 않은 돈을 떼였을 때에 배운 것이다.

다시 시작하기. ^^
그래서 나, 여권 문제 해결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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