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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지름신과 타협하기

카잔 2010. 11. 5. 10:50

내가 이렇다. 책 구매금액을 월 10만원으로 제한해 두었는데, 스물스물 선을 넘어버렸다. 그것도 벌써 7월부터 10월까지 연속 4개월 동안 줄곧 나의 원칙을 깨뜨려왔다. 이만하면 원칙이라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지경이다. 2010년 봄, '리뷰 3개 작성시 10만원 도서 구매 허용'이라는 나름의 원칙은 여름 즈음에 허물어졌으니 계절의 변화와 함께 사라진 셈이다. 이래선 안 된다. 책은 그만 사자. 돈 모아야지~! (단순히 10만원 아낀다는 차원이 아님은 글을 읽으며 알게 되시리라.)

뭘 샀나? 7월 구입도서를 살펴 보았다. 사실, 책을 살 때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 아니다. 다른 이들에게 책을 추천할 땐 부담을 느끼며 정선하는 편인데 정작 내가 읽을 책은 쉽게 고른다. 나름의 책 선정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나, 사실 책을 사들이는 제1원인은 욕망이다. 지적 호기심이라 하면 근사하긴 하나, 책을 사는 이유의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표현이고, 전문성을 갖기 위한 목적 지향적 활동이라 하기엔 구입한 책들의 범위가 일관되지 못하다. 결국 책을 사들이게 되는 첫째 이유는 욕망이다. 지식욕! 

저 책은 무얼 담고 있을까?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끌리면 산다. 맛난 음식을 먹어치우듯 책이 담고 있는 '그것'을 먹고 싶다는 욕망이 내 지갑을 연다. 그것의 범주는 넓다. 문학, 역사, 철학의 인문학은 물론이고 사회학이나 예술도 나를 흥분시킨다. 좋은 실용서적도 늘 나를 유혹한다. 자연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가장 약한데, 모르면 안 될 것 같아 사 두고 뒤적이는 정도다. 리처드 도킨스, 데이비드 보더니스, 매트 리들리 등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과학 교양서를 읽는 수준이다. 

아래는 신중하지 않은 나의 책 구입 리스트다. 7월에 산 책들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모두 읽겠다는 생각이니, 그의 책은 틈틈히 산다. 그의 전작을 구입한 듯 하고, 4권인가 5권인가를 읽었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꼼꼼히 탐독하고 싶은 책이다. 최근 그의 신간 『왜 도덕인가』는 아직 구매 전이지만, 지적 자극의 정도가 매우 강렬하다. 최근 도덕주의자들의 시선이 세상을 반쪽만 해석하고 있다고 생각하던 중인데, 샌델 교수는 도덕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를 모두 정리하며 '도덕의 유용성'을 말할 테지, 하고 책을 펼치기 전의 지적 상상을 즐기던 터였다. 

7월 구입도서

『창조적 글쓰기』
『절대지식 세계고전』
『동물원에 가기』 알랭 드 보통
『그리스인 조르바』
『행복의 가설』
『강남몽』 황석영
『불평 없이 살아보기』 윌 보웬
『진심의 탐닉』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조선의 서원』
『터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강남몽은 황석영 선생님의 강연회 참석하면서 구입했다. 빠른 장면 전환이 인상적이었다. 절대지식 세계고전은 제목 그대로 동서고금의 고전을 소개한 책이다. 이런 책이 나오면 내가 읽었던 고전 소개책과 비교하며 눈에 띄는 특징이 있으면 구입한다. 이 책은 어떤 특징 때문에 샀냐고? 책이 예뻤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은 나와 같은 지적 허영심이 가득한 이가 책을 구입할 때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진심의 탐닉은 저자 강연회에 다녀 왔다. 저자는 사람 내음 나는 인터뷰어요 기자였다. 그의 인터뷰 기술도, 그가 만난 사람도 궁금해서 샀다. 조선의 서원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돕는 책 중 하나다. 도산서워, 필암서원, 소수서원 등 서원으로 갈 때마다 펼쳐 본다. 따져 드니 저마다의 구입 원인이 있긴 하네. 허허. 7월 도서 구매에 든 비용, 아니 투자(^^) 금액은 149,950원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한 도서를 비용에서 제외했으니, 위의 목록은 현재 내 방에 있는 책들이다.

8월에는 20만원 남짓의 도서를 구입했다. 헉! 쓴 리뷰는 하나도 없으면서 무슨 염치로 저리 구입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20대 초반에 한창 지를 때에 비하면 마른 하늘에 먼지 만큼의 책들이지만(좀 과장스럽긴 하나, 라면박스 같은 상자에 책이 담겨 배달되곤 했었던 시절이다), 월 10만원을 넘기지 말자는 원칙을 지켜내고 싶은 것은 단지 돈을 아끼자는 차원이 아니니 자중해야 한다. 왜 책을 안 사려고 하냐고? 책을 수천권 이상 지닌 분들은 알 것이다. 책 사는 데에만 돈이 드는 게 아니라, 책을 보관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이 놈들 때문에 매월 월세 30만원은 더 드는 곳에 살아야 한다. 이사를 미루는 결정적 원인은 5천권이 넘는 책을 옮길 엄두가 안 나서다. 구입을 방해하는 이 모든 악조건을 뚫고, 8월에 우리 집으로 입성한 책들은 다음이다. (양서만 산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한다. 회사 교육 때문에, 단기적인 필요 때문에 구입한 책들이 많다. 아래 모든 책이 추천 목록이 아님을 기억해 주시길.)

8월 구입도서
『세로토닌하라』
『이지 지중해』
『토익 달인 정상의 영어공부법』

『이메일 익스프레션』
『내 영혼을 바꾼 한 권의 책』
『10인 이하의 조직을 잘 이끄는 법』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
『청년독립선언』
『성격으로 알아보는 속시원한 대화법』
『기질로 읽는 내 삶의 프로파일』
『관계』
『위험한 경영학』
『경영학보다는 소설에서 배워라』
『오른쪽 두뇌로 그림 그리기』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위험한 심리학』
『이성적 낙관주의자』 매트 리들리

9월은 반갑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10만원 선에서 구매가 그쳤던 달이다. 김영하 컬렉션이 주목할 만하다. 두어 달 전, 영풍문고 강남점(센트럴시티)을 둘러보다가 문학동네에서 나온 김영하 컬렉션이 참 예뻤다. 김영하의 글빨은 익히 들었던 터였고 『굴비낙시』를 읽으며 직접 맛보기는 했었다. 소설은 『퀴즈쇼』가 처음이었다. 김영하의 초기 작품이나 『검은꽃』, 『빛의 제국』보다는 못하다고 하지만, 내게는 『퀴즈쇼』만으로도 김영하의 팬이 되기에 충분했다. 요즘엔 그의 단편집을 읽고 있다. 『생각의 지혜』는 전형적인 도덕주의자의 책이다. '생각의 힘'에 대하여, 특히 고결하고 선한 생각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제임스 앨런의 책은 최고의 바이블이 될 만한 책이다. 허나 책이 두껍고, 깊이 있게 읽어 내지 못하면 모든 챕터가 비슷한 메시지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독자가 저자의 생각을 얻지 못한 채, 자신이 이해하는 정도로만 가볍게 읽었기 때문이다.)

9월 구입도서
『김영하 컬렉션(전6권)』
『서른 살의 강』
『생각의 지혜』 제임스 앨런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문제의 10월이다. 무려 21권을 샀고, 돈을 얼만큼이나 썼는지는 모르겠다. 그리 많지는 않다. 서점에서 염가행사했던 책을 반값에 사들인 도서도 많고, 인터넷 서점에서 30% 이상의 할인가에 구매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원칙 위반임에는 분명하다. 10월이 되자, 10만원 이내로 첫 구매를 했다. 저렴하게 좋은 책들을 구입하여 기분도 좋았고, 책을 받아 든 느낌도 좋았다. 특히 『율리시스』는 50% 할인가로 내 손에 들렸다. 책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뿌듯함을 누를 정도는 아니었다. 김훈의 에세이 두 권을 샀다. 그의 다른 에세이집 『바다의 기별』이 좋았던 까닭이다. 특이할 만한 도서는 『공산주의 선언』이다. 강유원 선생 덕분에 마르크스주의의 파워에 대해 감탄하여 원작을 사게 되었다.

10월 구입도서
(1)
『위험한 책』
『율리시스』 제임스 조이스
『공산주의 선언』 마르크스
『너무 일찍 나이들어 버린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2』
『밥벌이의 지겨움』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발칙한 유럽 산책』 빌 브라이슨

『사람풍경』 김형경

『CEO 인문학』을 읽다가 한시가 읽고 싶어져서, 『북 by 북』을 읽다가 라로슈푸코에 관심이 가서,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 평이 매우 좋아서 아래의 책들을 구매했다. 4권의 책을 별도로 구매했고, 『고슴도치와 여우』 와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은 별도로 구매했다. 이사야 벌린의 사상을 알고 싶어서 구매했던 책이고, 읽으면서 이사야 벌린은 내가 충분히 소화해야 할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사상을 배우고 싶어졌다.

10월 구입도서 (2)

『정민 선생님이 들려 주는 한시 이야기』

『인간의 본성에 대한 풍자 511』
『빅토리아 시대 명사들』
『늑대를 요리하는 법』
『고슴도치와 여우』
『이사야 벌린의 지적 유산』

이쯤해서 그쳤어도 10월의 리스트인데, 오프라인 서점에 자주 나갔던 10월이어서 아래의 목록이 추가되었다. 참새가 왜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는, 서점에 다녀 온 후 내 손에 들른 책 봉투를 보며 알게 된다. 신간이 없는 까닭은 행사용 도서를 싸게 구입했기 때문이고, 마지막 두 권의 전문서적은 모아 둔 문화상품권으로 구매했으니 아래 목록으로 현금을 지출한 것은 3만원 정도다. 비용적으로는 다행이나, 시간적으로는 먹먹해진다. 도대체 이 책을 언제 다 읽을 수 있으려나? 부지런히 책을 읽긴 하지만, 독서 속도는 도저히 구매 속도를 따를 수가 없다. 결국 이 목록은 평생 독서 계획인 동시에 다다를 수 없는 내 욕망의 리스트다.

10월 구입도서 (3)
『댈러웨이 부인』
『마음』
『영혼의 비행』
『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있어라』 (이상 교보문고 강남점)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습관바꾸기편)』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부자되기편)』
『사회심리학의 이해』 (이상 반디앤루니스 사당점)
『긍정심리학』 (교보문고 잠실점)

11월은 터닝포인트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책 구입을 더욱 신중히 하고, 누군가를 위해 읽는 일은 줄이고 오직 나를 위해 선정된 책을 읽자, 오전에 다른 일들보다 먼저 독서에 시간을 투자하여 마음 편안히 지적 유희를 즐기자, 리뷰 3개를 쓰면 5만원치 책을 사는 것으로 책 구입 기준을 더욱 높이자, 고 다짐하지만 얼마나 지켜갈 수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이틀 전에 구입한 『회의주의자 사전』은 어떡하지? 오늘 배송되어 올 텐데... 어쩌지? 참 나 원! 이 원칙을 얼마나 오래 지켜갈지도 모르면서 시작할 때에는 이리도 신중하게 고심하는 것은 또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책 지름신을 이겨낼 순 없으니, 타협이라도 하자. 
부디, '리뷰 3건 당 5만원'이라는 제 기준을 살펴 주시옵소서!
                                                                                                         2010. 1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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